돈키호테, 햄릿, 파우스트 - 인간 의식 진화의 세 단계 로버트 존슨 융심리학 6
로버트 A. 존슨 지음, 이주엽 옮김 / 동연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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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심리학이 주는 위안이 있다. <반지의 제왕>을 읽는 듯한, 종교에서 느낄 수 있는 경건함, 따듯함, 피안을 보는 경계를 초월하는 듯한 신비감, 엄숙함이다. 결국 현실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모두가 은연 중에 알기 때문 아닐까. 융심리학 류의 책은 인간의 원형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나는 나>(캐럴 피어슨, 연금술사) 저자가 택한 모델은 돈키호테, 햄릿, 파우스트이다. 돈키호테는 에덴동산 추방 전의 인간, 초등학교 입학 전의 아이 같은 이미지다. 키워드는 본능믿음이다. 내면의 세계에서만 사는 인간이다.(라캉의 상상계?) 반면 햄릿은 낀세대. 개와늑대의 시간, 이미 선악을 알아버려서 에덴동산에서 추방됐지만 아직 구원은 얻지 못했다. 자의식 강하고 고독하고 공허감에 시달리면서 우유부단한 인간이다. 저자는 의식의 진화라는 표현을 쓰는데 돈키호테가 비리비리한 먹물 스타일의 햄릿으로 성장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커리어에서 성공했지만 공허감에 시달리는 4,50. 사다리 끝에 고생해서 올라갔지만 잘못된 벽에 사다리를 세웠다는 것을 깨달은 중년의 위기남들이다. 여기서 햄릿이 우유부단한 이유를 저자는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버트 존슨이라는 이름을 꿈해석을 하는 고혜경씨를 통해 알게 됐는데 이 분의 주요 콘텐츠가 그림자, 내면작업, 여성성 등이다. 그림자는 문명화과정에서 의식에서 배제된, 자신의 어두운 면이다. (라캉의 팔루스와 비슷하다.) 저자는 우리가 인간답게 살 에너지를 전해주는 것은 그림자라고 한다. 이후 저자는 자신의 주요 키워드로 파우스트를 해석한다. 메피스토텔레스는 그림자, 파우스트가 회춘해서 벌이는 소동은 내면작업, 헬레네를 다시 만나는 것은 여성성으로의 회귀로 설명하는 식이다. 저자가 의식의 최종심급으로 생각하는 파우스트는 에고를 죽이고 더 큰 자기가 된 인간이다.(마이클 싱어의 <될일은 된다>와 비슷한 느낌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묘사한다면 소년기의 에너지와 모든 것이 시들해지는 중년의 위기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쳇바퀴 돌리듯 되풀이하지 말고 시와 음악, 새로운 느낌으로 달리기, 샘솟는 철학적 탐구, 심오한 종교적 통찰 등 ‘4차원 의식이라는 전언이다.

내가 돈키호테, 햄릿, 파우스트에 정통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저자의 주장이 진지한 것인지,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하나의 비교대상은 찾을 수 있었는데 라캉은 햄릿이 우유부단한 이유를 오이디푸스 논리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저자처럼 그림자와의 분열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검증불가능한 신화이며 유통기한이 지난 화석이라는 비판이 박혀있어서인지 저자의 주장에 얼룩이 보인다. 저자가 말한 것은 신뢰도를 검증할 수 있는 모형이 아니라 하나의 스케치, 이미지 뿐인 것 아닐까? 읽으면 지혜롭고 무게가 있는 것 같은데 위안은 되겠지만 삶에 구체적인 함의는 무엇일까? 그림자를 통합하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인지? 물론 저자의 책은 시리즈로 있다. (<내면작업> 등등)

삐딱하게 보면 중년의 위기를 겪는 4,50대라면 융이론 말고 한겨레21의 안광복 칼럼이 더 실용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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