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돌이들이 있다. 김생민처럼 돈을 아껴서 부자가 되자는 게 아니고 돈이 필요없다는 사람들이다. 아니 주변의 에너지를 아끼다 보니 돈은 저절로 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환경 문제같은 거대한 명제에 누가 신경을 쓸까 생각했었다. 인간이란 동물은 상상력은 부족한 데다 이기적이라 당장 자기 실생활에 영향이 없으면 신경을 끄기 마련이다. 중동의 내전에 진정으로 마음 아파하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이제는 6.25가 발발했을 때 이탈리아나 프랑스 사람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 그냥 무관심이다. 하지만, 몇 번의 미세먼지 대란을 겪고 나니 열어놓은 창문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고맙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여름에 창문을 열어놓지 못했으니 말이다. 물을 사먹는다는 것,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을 할 수 없다는 것 등 점점 상상속의 디스토피아가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어쩌고 하는데 아마 죽기 전에 더한 꼴을 볼까 걱정이다. <노 임팩트 맨> 콜린 베번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10여년 전 이 사람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정말 신선했다. 아마 그 때까지는 우리가 전기나 기타 문명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고, 그것 없이 산다는 생각은 아예 아웃오브안중이었던 까닭이다. 콜린 베번은 몇 권의 책을 저술한 저술가이고 그의 아내 미셸 콘린은 <비즈니스위크> 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딸 이사벨라,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한 프랭키와 말 그대로 일 년 동안 지구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고 살아가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콜린의 통찰은 기후 변화 같은 거대 주제 앞에서 우리가 무기력을 가장한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일상의 조그만 것들을 바꾸기 시작하면 그 영향은 과연 어느 정도 일까? 네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느냐는 질문에 콜린은 정답을 내놓았다.( “올바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 곧 성공입니다. 실패는 당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을 때, 그때 있는 거예요.”:반다나 시바가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 중) 우리가 영화에서 곧잘 보던 평범한 뉴요커가 갑자기 세련된 뉴요커답지 않은 짓을 시작하니, 주변의 관심이 상당했나 보다. 대안 운송, 로컬 푸드, 티비 없애기,밤에 전등 끄기 등 지금은 그나마 익숙한 행동들이 여기 처음 등장한다. 따지고 보면 <노 임팩트>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딘가에서 그 옛날 아메리칸 인디언이 얼마나 반환경적이었는지 지적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콜린 베번도 세탁기 사용만은 살짝 여기서 제껴놓았다. 콜린 베번의 퍼포먼스가 현실적이라기 보다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마크 보일의 말마따나 <프리스킬링>을 하려고 이 책을 몇 번 읽었는데 이상하게 기억에 남지 않는다. 10여년 전 뉴욕이 배경이라 우리의 실생활과 차이가 나기 때문인 것 같다.(플라스틱 안 쓰는 인터그랄 요가 같은 상점이 한국에 있나?) 이 책은 완결된 답을 제시하기 보다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쓰레기를 만들어 내며 소비하고 있을까? 편리함을 통해 우리 삶은 과연 풍요로워졌을까? 우리는 그냥 군비경쟁하듯이 경제성장의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삶을 파괴하고 있는 것 아닐까? 콜린 베번은 환경보호의 차원을  삶의 통찰로 연결시킨다. 뭐 나는 뉴요커가 아니니 모르겠다만, 자기가 아는 돈 잘 버는 여피 친구들은 전부 불행하다나 뭐라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실험을 하면서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따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한다. 지금까지 평범한 뉴욕시민이었던 저자가 느낀 두려움이, 목장 안에 사는 양떼처럼 무사태평하게 사는 나에게 똑같이 느껴졌다. 이 사람의 근황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이제는 자기계발강사 비슷한 것으로 변신한 것 같다. 물론 여기서도 주제는 ‘진보적인’ 내용이긴 하다. 아쉬운 것은 아내 콘린과도 관계가 변한 것 같다. 동명의 다큐에서 티격태격하면서도 같이 난관을 극복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강신주 박사의 말: “여행할 때 짝이 있으면 좋은데...”) 이제는 헤어진 것 같다. 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도배해도 아내 사진은 딱 한 장 뿐이다. 한명의 배우자와 같이 오래 산다는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더불어 책의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국내의 환경단체 사이트를 방문해 보니 썰렁해서 씁쓸하다. 환경은 아직 이 나라의 주제가 아닌가. 환경보호라는 주제는 최종적으로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까지 이 나라 사람들은 그런 면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좀 더 하드코어한 쪽이라면 마크 보일의 <돈 한푼 안쓰고 일년 살기>가 있다. 이 사람은 뉴욕에 산 게 아니라 아예 브리스톨 근교 시골농장의 이동주택으로 이사해 살았다. 콜린 베번처럼 로컬 푸드를 돈 주고 산 게 아니라 로컬 푸드를 재배해 먹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환경파괴를 목도하고 전향을 했다고 한다. 자급자족하는 기술을 <프리스킬링>이라는 것을 통해서 배웠다는데 <노 임팩트 맨>기간 동안 화장지 없이 살았다는 콜린 베번도 뜨악하지만, 이 사람의 돈 없는 1년도 무한도전에 가깝다. 예를 들면, 겨울에 바닷물에 뛰어들어 목욕하기. 겨울에 이불이 얼어붙어도 그냥 버티기, 버섯으로 종이하고 잉크 만들기 등등....글자그대로 완벽한 자급자족이다.(인프라는 무시하기로 한다.)  콜린 베번의 화장지 안 쓰기도 나에게는 넘사벽이지만, 마크 보일은 오늘도 내가 마음껏 쓴 수세식 화장실에 엄청난 적개심을 드러낸다. 그에게는 도시라는 것 자체가 태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현대문명의 근본은 전부 석유로 만들어진 ,언젠가 망할 문명이다. 이건 나도 알지만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다. 입는 것, 자는 것, 먹는 것 까지 석유가 쓰이지 않은 것이 없다. 석유가 없으면 나는, 우리는, 전부 X된다. 마크 보일은 <프리스킬링>이라는 커뮤니티를 구성해 공짜식량 구하는 법, 로켓스토브 만드는 법, 퇴비 화장실 만드는 법 등등의 기술을 익힌다. 나 역시 이 책에서 프리스킬링을 좀 배워볼까 하고 훏어봤지만, 콜린 베번의 경우처럼 남는 건 없었다. 비누풀로 비누 만드는 법이니 개암 채집하는 법이니 해 봐야 10여년 전 영국이 배경이니 현재의 실공간과 맞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는 버튼 하나로 해결했을 일을 마크 보일은 꾸준한 인내심을 가지고 해 낸다. 그런 마크 보일에게 한순간 한순간이 자신의 삶을 위한 시간이 되어 버린다. 워라벨이라는 말이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 이건 회사원과 자영업자의 차이점같은 거겠지. 좀 과장하자면 자영업자에게는 모든 시간이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하이데마리 슈베르머, 다니엘 수엘로 같은 동류 짠돌이들의 이름도 등장하는데, 아직 국내에 번역된 책은 없다. 콜린 베번이 따 당할까 봐 두려워 한 것처럼 마크 보일도 여친과 헤어진다. 외로움을 달래지 못해 공개 애인구함 광고까지 냈다는데 음, 남의 일 같지 않다. 더 무서운 건 지금도 독신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돈에 대한 철학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대체로 동서양의 현자들이 말하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안 중 하나가 ,공동체와 연대의 윤리다. 돈과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곳에서 자원을 확보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게 공동체이고 거기서 필요한 덕목이 회사로 대표되는 기존의 권력구조가 아니라 연대라는 윤리인 것이다. 우치다 타츠루의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고미숙의 <호모 코뮤니타스> 등등. 이러한 공동체에서는 시장의 원리인 교환이 아니라 상대방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무상증여가 바탕이 된다. 마크 보일의 생각도 이런 맥락인데, 저자는 우리가 하는 쇼핑이라는 행위자체에 이미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소비하는 대상과 그 소비자가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쁘게 포장된 스테이크는 한 때는 살아있는 생물이었다. 그리고, 그런 쇼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돈인 것이다. 만약 교환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해 무언가를 제공한다면 돈이 필요할까? 약간 <시크릿>류의 우주의 법칙이지만 저자는 선의를 베풀면 반드시 그 선의는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가장 확실한 노후대책은 저축이 아니라 공동체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애기다. 저자의 비젼은 대도시가 아닌 수백명 정도의 자급자족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책을 저술할 당시에는 인터넷으로 <프리이코노미>라는 이름 아래 이런 작업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게 streetbank 라는 다른 브랜드와 합쳐진 것 같다. 저자의 최근 근황은 지금 아일랜드에서 월든 같은 생활을 하며 자신의 생활을 <The Way Home>이라는 책으로 낸 것이다. 솔직히 저자의 공동체 비전이 성공했는지 저간의 사정이 궁금하다. 사랑보다 돈을 외치는 냉소적인 사람들은 아마 실패를 원할 테지.난 하루키의 소설 1Q84가 먼저 떠올랐지만.

 

앞의 두 짠돌이는 약간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콜린 베번이나 마크 보일 모두 약간 이벤트성이 있었다. 둘 다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일정기간 동안만 이런 생활을 한 거다.(마크 보일은 이후 3년간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런 극한 작업을 하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그들이 특별한 위인처럼 보이거나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에게 죄책감이 들 법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나가키 에미코가 오히려 친근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같은 동양인이니 생활방식도 비슷해 짠돌이 기술도 어느 정도 실전투입이 가능할 것 같다. 게다가 거창한 포부나 비전보다 “저는 원래 이럴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정도 까지 와 버렸어요. 그런데, 정말 좋아요., 당신도 한번 해 보세요. 정말이라니까요”라는 식으로 애기한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후쿠시마 원전사태를 보며 처음 절전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걸 실천하는 동안 예전에는 결핍이라고 느꼈던 순간에서 다른 풍요함을 발견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무엇 없이도 충분히 사는, 아니 더 풍요롭게 사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더 많은 자유를 만끽하게 되었다는 애기다. (결국 회사까지 그만두는데 그건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에 나온다). 노 임팩트도 아니고 노 머니도 아니지만, 지속가능성은 훨씬 뛰어나고 발전 가능성도 있다. 물론 누군가에는 이것도 미친 짓일 것이다. 냉난방 없이, 냉장고 없이 사는 삶이니 말이다. 결국 우리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삶의 조건”을 어느 수준까지 설정하느냐의 문제 같다. 누군가는 결핍의 하한선이 자동차나 멋진 집이겠지만, 이런 짠돌이에게는 그런 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삶의 조건인 것이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겨울의 추위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삶의 조건으로 생각하고 ,결국 추위와 같이 공존하기로 결정한다. 대신 추위가 주는 삶의 묘미를 음미하는 쪽을 택한다. 콜린 베번은 이사벨라가 구토로 시트를 더럽히자 결국 세탁기를 사용한다. 그에게는 그 순간이 결핍이 비참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과연 어디까지 삶의 한계점을 내릴 수 있을까. 내 생각으론 인간은 자신이 견뎌야 한다고 작정하면 웬만한 건 견딘다는 것이다. 인간은 나치수용소에서도 중동의 내전에서도 어쨌든 살아남는다. 이 짠돌이들이 내세우는 팁은 한계점을 내릴수록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콜린 베번과 이나가키 에미코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편리함이 우리가 삶을 음미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다. 일이 바빠 테이크 아웃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은, 우리가 왜 일하는가 하는 이유를 아리송하게 한다. 세탁기로 빨래를 돌리는 것에는 빨래라는 일이 기본적으로 재미없고 무가치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정말 우리가 입을 옷을 시간을 들여 손으로 빠는 일이 무가치하고 재미없기만 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좋아한다 싫어한다라는 느낌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환경에 따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일과 거절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우리가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좋아한다”라고 나중에 합리화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나가키 에미코의 어린 시절은 한창 일본 경제에 버블이 치솟던 시절이었다. 그 때에는 더 큰 집, 더 맛있는 음식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지만, 장기불황의 일본에서 이나가키 에미코는 소박한 음식에서 더 큰 행복을 찾는다.

 

바야흐로 –적어도 나에게는- 삶의 기준점이 변해야 하는 시기 같다. 예전같으면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행복의 기준, 행복의 가치관을 이들 짠돌이들은 의심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찾으라고, 이제 남들처럼 살지 말라고, 네가 알고 있는 행복의 가치관은 유통기한이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지점에서 헷갈리는 사람들을 위해 콜린 베번은 발빠르게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내놓았다.(자기 말로는 상호 계발이라고 한다.) 사이트를 흘긋 봤는데 음, 꽤 비싼 걸, 하긴 노 임팩트 맨도 계속 살아가긴 해야 하니까.

 

ps 조금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례로는 <봉고차 월든> (켄 일구나스, 문학동네)이 있다. 학자금대출에 허덕이며 정규직에 목매던 Y세대가 고통의 시대에서도 어떻게든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간 사례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의 저자에게도 “구리다”고 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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