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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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일은 산산이 부서져버린  접시와 같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본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본문에 인용된 <해변의 카프카>의 구절처럼 자나간 인생이야기가 회한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것을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물며 그 인생이야기가 사회의 모든 정체성을 포기하고 “증발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증발>은 매년  일본에서 발생하는 수 만명의 가출사건을 다룬 르포이다. 프랑스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일본인 아내를 둔 친구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고, 5년간의 취재 끝에 사회에서의 정체성을 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현대사회의 인간은 평생을 어떤 울타리 안에서 격리된 채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가정이라는, 성장기에는 학교라는, 사회라는 울타리에 진입하면 회사와 조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격리된다. 각각의 울타리는 이해관계가 없는 한 마주칠 일이 없고, 그 구성원은 다른 울타리의 로직을 알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저널리스트는재밌는 직업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울타리를 가로지르고, 울타리 사이의 빈 공간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직, 빛, 빈곤, 불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울타리를 포기했다. 즉,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회적 정체성을 포기한 것이다. 가족끼리 야반도주해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야반도주를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야반도주자도 있다. 그들은 일용직 노동을 하며 산야나 가마 같은 일본 내의 슬럼가로 모여든다. 그리고, 이 곳은 우리가 아는 일본과 전혀 다른 세계이고, 야쿠자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저자는 가출을 결심한 이들에게 도덕적 판단을 하는 대신, 지하철 안을 메운 평범한 일본 시민을 보며 이렇게 묻는다.
“삶이 이렇게 피곤할 수 있을까?”
저자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알 수 없는 규칙으로 이루어진, 들어갈 열쇠구멍이 없는 철통같은 문화를 가진 나라다. 가출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수치심과 무력감을 토로한다. 일본 특유의 서열문화와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실패는 곧 자기책임과 자기비하로 이어진다.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차라리 자기 자신을 삭제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회적 척도, 예를 들면 출신 지역, 나이, 직장, 학력 등을 (책에서는 “신분증”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포기한다는게 어떤 의미일까. 산야에서 만난, 병든 어머니를 버리고 도주한 청년은 이렇게 말한다. 사회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는 한 번 죽은 것이라고.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며 산야에서의 삶은 서서히 자살해가는 삶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직 압력솥 위에서 그럭저럭 버티며 증발자들을 패배자로 간주하는 라인 이쪽의 사람들의 시선일 수 있다. 책의 말미에 사회학자 볼프는 증발자들이 획일적인 기준으로 승진과 성공이라는 허상의 사다리에 매달리는 일본 사회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게임의 규칙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거나 시스템을 빠져나오거나 인 것이다. 거칠고 삐딱한 가마의 일용노동자는 상처투성이의 인생을 안고, 이빨이 빠진 채로 끝까지 자신의 두 다리와 두 팔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힘이 다했을 때, 고통 속에서 이름없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과장하면 이런 삶에서 숭고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우아한 문체와 구성 덕에 문학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무거운 주제에 뭣한 표현이지만 재미있다. 저자는 몇 개의 문장으로 가출자들의 인생역정을 묘사했지만, 그건 일종의 캘리그라피일 것이다. 실제 일어난 일은 그것보다 몇 배는 방대하고, 다양한 울림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두세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도서관 대출용이라기 보다 곁에 두고 읽는 책이다.
p.s: 커버의 문구는 “일본의 가장 슬프고 비참한 얼굴을 만나다” 이다. 왠지 웃기다. 미국보다 20년 뒤지고 일본보다 10년 뒤진게 한국이라는 말을 어릴 때에 들었었다. 대한민국 헬조선은 오죽할까. 일본인들은 증발이라도 하지 한반도는 땅덩어리가 작아서 그러지도 못한다. 증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살율 1위를 기록하거나 닭장 안의 닭들처럼 서로를 쪼아댄다. 재벌집 회장님 부인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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