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철학의 특징 중 하나: 위계와 높이. 범속한 철학자는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안”이 아니라 “밖”에서 평가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비교(秘敎)적인 철학자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높이의 비유. 그러고보니 <차라투스트라>는 차라투스트라가 높은 산에서 아래로 몰락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니체에게 “법 앞의 평등” 같은 말은 김밥 옆구리 터지는 애기일 것이다. 고귀한 사람의 미덕은 범속한 사람의 악덕이며 똑같은 책이 저급한 영혼에게는 독이 되고, 고귀한 영혼에게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범인의 미덕을 고귀한 사람이 받아들일 때에는 그가 타락하여 범인들 앞에서 성자인 척 할 때 뿐이다. 고귀한 영혼을 가진 사람은 소수이며 대중이 좋아하는 것에는 항상 악취가 난다.(그래서, 교회에 가지 말라고 한다 ㅍ ㅎ )
 엘리트주의의 냄새가 물씬 나는 니체의 위계 . 심지어 어떤 영혼의 높이에서는 비극마저 비극이기를 멈춘다. 세계의 고통을 하나로 받아들여도 고귀한 영혼은 동정을 느끼거나 자신의 고통을 배가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나에게 트위터에서 유행했던 빌런 정신과 의사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페이스북이나 유투브로 옮겨간 것 같다.) 아직 그를 지지하는 트위터리안이 있긴 하지만 대체적인 분위기나 트위터상의 동료 정신과의사들의 반응을 보면 그 빌런 의사의 패배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계정정지를 당하기 전까지 그 의사의 반응을 보면 그가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논리나 자신만의 세상에서 산다고나 할까. 어찌보면 그런 강한 멘탈이 부럽기까지 하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무고하고 정당하다고 실제로 생각하는 듯 하다. 반면 그를 비난하는 쪽에서는 그가 병적인 상태이며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 정신과 의사가 높은 영혼의 소유자라서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뿐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이 장에서 니체의 애기는 “내로남불”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높이”에 따라 미덕과 악덕이 바뀐다면 그 의사도 쉽게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지 않을까.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것” 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의 차이- 이건 그냥 레토릭이다. 니체씨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시죠. 제가 이해할 수 있게. 저도 좀 내려다보고 싶거든요.

 

p.s. 높이에 관하여-"어떤 높이에서는 비극조차 비극이기를 멈춘다." 이 문장의 의미. 요즘 어줍잖게 스피노자에 관한 책을 읽는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필연성에 대한 고찰이다. 어떤 사건, 어떤 상황은 결국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자유의지 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 니체가 말한 "비극이 비극이기를 멈추는 높이"라는게 이런 필연성의 인식같은 게 아닐까. 물론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체념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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