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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는 아이 ㅣ 시 읽는 어린이 91
전병호 지음, 윤순정 그림 / 청개구리 / 2018년 2월
평점 :
봄이다. 땅과 맞닿고 있는 꽃과 나무에서 초록이 꼬물거리고 있다.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오는 개나리, 산수유, 목련, 벚꽃이 앞 다투어 피고 지는 계절이다. 괜히 맘이 하늘에 걸린 구름처럼 둥둥 뜬다.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는데 구청에서 동네 하천에 해마다 심고 가꾸는 유채꽃이 기다려진다. 유채꽃 핀 작은 흙길 사이를 자전거로 달리는 상상 만으로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이런 상상에 딱 맞는 표지를 한 동시조집을 만났다.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동시조집 『자전거 타는 아이』다. 전병호 선생님의 글에 윤순정 선생님이 그림을 그렸다. 청주에서 태어나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동시가 ‘심상’으로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했는데 그동안 『백두산 돌은 따뜻하다』, 『아, 명량대첩!』, 『봄으로 가는 버스』, 『들꽃초등학교』와 같은 동시집을 냈고 세종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해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총5부로 나눈 이 책은 1부에서 3부까지는 일상적인 어린이들의 세계를 4부는 우리나라 곳곳에 다녀보고 나서 쓴 작품, 5부는 북한 땅을 바라보며 쓴 글이다. 시는 1부부터 봄 속으로 내몬다.
자전거 탄 아이가/유채밭을 지나간다//샛노란 꽃물결에/자전거가 폭 묻히고//아이의 파란 모자도/떠가다가 묻혔다//강바람이 부는지/꽃물결이 출렁출렁//그때 튕겨 나왔다/빨간 댕기 새 한 마리//휘파람 길게 불면서/점 되어 날아오른다.//(-p12「자전거 타는 아이」 전문
눈이 환해지는 이 시는 묻어둔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몇 년 전 제주 여행에서 친구들과 함께 거닐던 유채밭을 떠올리게 하고 나른한 봄날 오후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빨간 댕기 새도 아니면서 휘파람 불며 나들이 가고 싶게 만드는 시다.
뒷문을 빼꼼 열고/살짝 들어갔는데//아이들이 아하하하/고개 돌려 보는 선생님//할머니 폐지 수레를/밀어 드리고 왔어요//할머니가 너무나/힘들어 보였어요//조금만 밀어드린다는 게/집까지 다녀왔어요//“너는 참, 사람이 됐다.”/등 두드려 주신 선생님.// -p21「지각」전문
아마도 직접 경험한 일을 시로 쓰신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사랑스러운 제자를 가르치면 얼마나 뿌듯할지. 앞만 보고 가길 원하는 대다수의 학부모와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아이들 간의 충돌을 많이 봐 왔다. 이 시는 속 깊은 아이 직접 만난 것처럼 가슴 뭉클해진다.
밀물에 뜬 노을이/갯벌 가득 밀려오네//(-p40 「저녁 바다」 일부분)
나에게 다가오려고/밤새 뭍을 올랐나 봐//(-p42 「밤바다」 일부분)
깊은 산속/절에서/쇠북이 울리겠다//(-p49 「산꽃이 필 때」 일부분)
바다에 관한 시가 많은 2부는 독자들을 바닷가로 불러 모았다가 깊은 산골로 안내하기도 한다.
쌀, 쌀, 쌀……/소리를 내며/빗방울이 쏟아져요.//(-p53 「가뭄 끝에 비」 일부분),
누굴까 나 여기 있다고/등을 켜는 저 사람은.//(-p57 「하늘 마을」 일부분),
작년에 거둔 것/반도 안 된다 하면서도//참새가 남겨 주었다며/껄껄껄걸 웃는 아빠//(-p62 「참새 먹이」 일부분)
겨우내 가뭄이 심했다. 그러다 입춘 지나고 봄비가 몇 번 내렸다. 그때 내린 빗소리가 논농사 준비하는 농부들에겐 ‘쌀, 쌀, 쌀’로 들리지 않았을까? 농부의 자식으로 지낸 사람도 쌀, 쌀, 쌀로 들리기도 한다. 3부는 자연에 순응하고 사는 시인의 넉넉한 마음과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성모 마리아 두 팔 벌리고/바라보는 북녘 하늘//(-p93「휴전선 낮달」)
그 하늘 아래도 우리처럼 자유가 깃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철조망 아무리 높아도/봄을 막지 못할 거야//(-p98「휴전선 민들레」)
4부에서는 시인의 눈으로 본 백두산, 마이산, 대청댐을 느껴본다. 5부는 분단된 현실이지만 희망을 갖게 하는 시다. 요즘 북한과의 관계가 조금이나마 진정되었다. 철조망 걷어내고 왕래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곧 부활절이다. 모든 신들의 은혜가 저들에게 미쳐 시 읽는 삶이 북녘 사람들에게도 있었으면 한다..
시인의 말에서처럼 값진 정신문화유산인 시조, 또는 동시조가 문자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어른과 어린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노래처럼 전해질 것이라 본다. 「자전거 타는 아이」는 금방 읽히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는다. 봄맞이하기에 좋은 동시조집으로 한껏 봄 속으로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