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꽃 애지시선 32
이종암 지음 / 애지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다
『몸꽃』 , 이종암, 애지, 2010 
 
몸꽃은 청도가 고향인 이종암 작가의 시집 제목이다. 포항문학으로 등단해 고등학교에서 문학과 우리말을 가르치는 작가는 몸꽃 외에도 『 물이 살다 간 자리 』 ,  『 저 쉼표들 』 등의 시집도 낸 바가 있다.  
 
내 고향 인접한 곳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작가의 시집에는 익숙한 지명과 낯설지 않은 말이 자리하고 있어 마치 고향을 만난 듯 반갑다. 거기에 다니기 좋아하는 내가 여기저기 다녀봤던 곳들이 많아 머릿속에서 그곳 풍경을 그리며 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동을 출발해 오어사, 미시령, 감은사지, 선암사, 보경사, 주산지, 기계, 죽장, 상옥, 동피랑, 양동마을, 진평왕릉, 포항 근처 작가가 거주하는 신광까지를 함께 훑어보는 기분이다. 
 
시를 읽다 보면 자간과 행간 사이에 꽃냄새가 난다. 그만큼 꽃이 많이 나온다. 사람꽃, 몸꽃만이 아닌 다른 꽃들도 많이 피고 진다. 매화, 산수유, 벚꽃, 달꽃(p17) 목련(p24), 동백(p29), 과부꽃(p64). 꽃들뿐만 아니라 나무들도 무성한 숲처럼 자라고 있다. 즉, 자연이 함께 하는 시집이라는 말이다.
 
 
아버지는 멋진 책을 잘 만들었다 
 
봄과 여름 사이 오월의 논에 아버지 
 
산골짝 물 들여와 소와 쟁기로 해마다 
 
무논의 책 만든다
 
 
모내기 전의 무논은 밀서密書다 
 
하늘과 땅이 마주보는 밀서 속으로 
 
바람이 오고 구름이 일어나고 
 
꽃향기 새소리도 피어나는 무논의 책 
 
아버지 어머니 책 속으로 걸어가면 
 
연둣빛 어린 모가 따라 들어간다 
 
초록 치마를 펼쳐놓은 책 위로 
 
하늘이 구름 불러 햇볕과 비를 앉히고 
 
한철 또록또록 그 책 다 읽고나면 
 
밥이 나왔다 
 
무논의 책이 나를 키웠다 
 
-p36 「무논의 책」 전문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 역시 부모가 농사지어 나온 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책을 사고 그랬다. 아버지가 만든 무논에서는 쌀과 책, 옷, 돈 등 우리 밑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들이 나왔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무논에서 영영 눌러 앉으셨다. 햇볕과 비를 불러 앉혀놓고 농사지을 때는 시간이 없어 못 듣고 못 느꼈던 햇볕의 따사로움과 빗소리를 듣고 계실지 모르겠다. 밥과 책이 지금도 무논에서 나오는 걸 보면 무논은 정말 힘이 세다. 
 

산악자전거 빌려 타고 
 
동네 뒷산으로 가니 
 
길은 철커덕철커덕 바퀴살 속으로  
 
들어와 측, 측, 죽는다 
 
이렇게 자꾸 베어 먹어도 길은 
 
끝없이 펼쳐진다 
 
포항 지나 기계, 죽장, 상옥의 길들이 
 
자전거 속으로 다 들어오고 서쪽 하늘도 
 
끝까지 버티다 별 수 없이 자전거 
 
속으로 빨려드는데 길은 또 있다 
 
백두대간을 타고 설악과 금강으로 
 
또 바다로 하늘로 길은 끝 없다 
 
그래서 길이다 
 

길은 늘 목마르다 
 
당신은 언제나 길 건너에 서 있다 
 
「길은 목마르다」 전문  -p56~57  
 
 
 
57쪽에 1행만이 뚝 떨어져 있다. “당신은 언제나 길 건너에 서 있다” 이 행을 시각적으로도 부각시키기 위한 편집자의 의도된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의도대로 쓸쓸한 느낌은 있다. 오래전에 기계, 죽장, 상옥까지는 아니지만 기계는 머릿속에  지도처럼 넣고 있었다. 지금은 작은 면소재지도 몇 번의 강산이 변해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고 건물이 생겨나 머릿속의 지도와는 다르다. 산악자전거는 아니지만 자전거로 다닌 경험이 많아 시를 읽으며 머리로 그림을 그려본다. 당신은 언제나 길 건너에 서 있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나 또한 당신 옆이 아닌 길 건너에 있다는 말이 아닐까? 
 
흰 바탕의 표지에 「무논의 책」이 세로로 누워 전문을 다 싣고도 1연을 한 번 더 실었다.
크고 작은 시어들을 번갈아 가며 나열했는데 무논의 모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시각적인 느낌이나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을 각인시켜 주는 느낌이다. 몸꽃에는 위에 나열하지 않은 작은꽃과 나무들이 자간과 행간 사이에 숨어있다. 독자와 숨바꼭질 하듯이.  『몸꽃』을 만나면 자연의 품안인 듯 편안할 것이다. 그 이유는 책을 들고 밑줄을 그으면서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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