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데콧 상 수작작품이라는 표시에 앞 표지에 붙어 있어서 특히나 눈이 갔다. 그림은 얼마나 멋질까? 내용은 더 감동이겠지? 이런 저런 상상을 주공을 못지 않게 하면서 책을 기다렸다. 인형을 무지 좋아한 한 꿈 많은 소녀 둘시의 이야기다. 내 경우에 어릴 때 시골에서만 자라서 인형을 갖고 놀 기회가 없었다. 어쩌다 친척들이 다니러 오면서 가지고 오면 한 두 번 만져본 정도이다. 그래서 인형에 욕심많은 주인공이 좀 지다치는 생각도 하게 됐다. 나의 경우 인형은 아니지만 상상력을 마음껏 뻗을 수 있는 것이 있었는데 시골 생활 전체가 다 내 상상에 의해 만들지기도 하고 허물어지기도 했다. 가끔 개미를 밟아 놓고는 너무 슬퍼서 그 자리에 무덤을 만들고 장사를 지내지도 했었다. 풀밭에서 깡총깡총 뛰는 것도 풀들의 비명 소리가 나는 듯 해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멀찍이서 놀았던 유년이었다. 한참 상상력을 발휘하다가 사춘기가 어느 정도 지나니 거의 사그라진 것 같다. 늘 꿈과 상상에만 매여 산다면 요즘 말로 공주병..이라 할 것이다. 인형 안젤라를 잃어버린 둘시가 그 인형이 너무너무 그리워서 잃어버린 인형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항상 한 가지씩 더 덧붙여 이야길 한다. 눈만 감았다 떴다..하던 인형이 손도 흔들 줄 알고, 스케이트도 타고, 나중에 나이트 가운도 있고 장화도 있고... 나중에 어? 어? 이러다 큰 일 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까지 했다. 둘시의 거짓말이 절정을 치달을 때 그때서나마 마당 근처 벤치에서 흙에 파묻힌 안젤라를 발견하게 되어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때라도 발견되지 않았다면 둘시의 상상속 세계가 어디까지 갔을런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는 일... 참 단순한 것 같지만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이해를 한다. 나의 아들도 가끔 꿈 속에 있었던 일을 꺼내서 '왜 혼냈냐는 둥'의 말을 한다. 꿈인지 현실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저절로 구분을 해내는 것 같아 걱정할 일은 아니다. 이 책에서 처음엔 단순하게 둘시가 인형을 참 좋아하는 소녀구나..했는데 읽어나가면서 작가가 둘시의 내면을 잘 표현하고 있음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둘시라는 소녀에 작가가 완전히 감정 이입된 것 듯 했다. 그림도 흑백이 주를 이루는데 군데군데 포인트처럼 삽입된 색채가 눈에 확 들어온다. 마음에 꿈을 키우는 소녀..둘시 상상에서 키우던 인형을 상상이었음을 인정하는 모습이 이뻤다. 키도 마음도 훌쩍 커버린 둘시를 아마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소녀를 만났을 때, '이상한 아이야, 혹은 거짓말쟁이구나.' 등의 이야기 대신 아이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들어주고 수긍해주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