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가 참 좋다. 봄날에 꼭 맞게 따스한 햇살이 스멀스멀 창을 넘어 오는 걸 보면...
하지만 "유이화"를 읽는 동안 내 맘은 차디찬 겨울이었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고, 오래전 역사 속에서 그와같은 일들을 겪고 이름만 남기신 분들 앞에서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울분 같은 게 자꾸만 가슴속에서 심장을 더 심하게 방망이질 해댔고 머리속을 낱낱이 헤집어 놓았다.
남자의 관점에서 읽으면 또 어떤 느낌이 올지 모르겠으나 여자의 입장에서, 엄마의 입장에서 본 "유이화"는 같은 여자 입장에서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더라도 그 고통이 상쇄되지 않을 듯 하다.
안철영와 유이화..
히로시와 아시타..
조선에서 남자로 태어나 한 임금을 모시고 나아가 벼슬을 하며 이름을 널리 알리고자 했던 안철영은 자신의 안위보다는 나라를 더 생각하고 걱정하며 죽어가는 자식이 있음에도 의병으로 진주성 싸움에 참가한다. 남편이 약 구하러 간 줄로만 아는 그의 부인은 죽어가는 아들을 간호하다 아들이 죽었음에도 7일 동안이나 더 아들을 품고 있다가 매장했다. 혹여나 남편이 갑자기 오면 아들과 마지막 이별이라도 하게 할 요량으로...
하지만 그 길이 남편과 부인을 영영 이별하게 해놓고야 말았다.
진주성 싸움에서 진 조선은 많은 조선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차마 눈떠고 못 볼 잔인한 행동 앞에 아무런 감각도 없어져 갔다. 그러다 여자들이 먼저 일본으로 끌려가 농노로 팔려가거나 첩이 되거나 하였다. 안철영은 한문을 좀 익힌 관계로 왜장을 아들을 가르치며 편안한 삶을 살지만 아내를 꼭 찾아야 겠다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다.
아내는 아내대로 일본으로 끌려와 굶주림과 핍박을 견뎌가며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었다.
농노로 지내는 주인의 탐욕을 피해 도망가다 자신을 일본으로 데려왔던 히로시를 만나게 된다. 히로시가 주인으로 부터 유이화를 사서는 집으로 데려와 아시타...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내로 삼게 되는데 이 대목에선 일본이라 해서 다 나쁜 사람은 아니구나...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대게가 시대에 편승에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않고 행동하는 사람도 많지만 잠시 주어진 감투에 눈이 멀어 온갖 몹쓸 행위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 유일하게 일본에서 만나 의지가 되어 주는 히로시다.
마음이 따스하고 아시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해주고 싶어하는 인물...잠시나마 히로시로 인해 아시타의 얼굴이 밝아지는 걸 보니 반가웠다.
안철영은 결국 일본에서도 조선인을 모아 구석구석 찾으러 다니지만 찾지 못하고 결국 아내와의 재회는 히로시가 안철영을 강을 건네주고 품삯을 지불했는데 둘이 어떤 관계로 얽혀 있는지를 모르는 이상 히로시는 좀 더 많이 받아 아내와 아이의 배를 곯지 않게 해야 했기 때문에 부당한 삯을 요구했다. 그를 잡아 부당한 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다.
이때 안철영의 직위는 사무라이였다.
자신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일본에선 그에게 사무라이 직위를 내렸고 집안에서 사무라이에 걸맞는 대접을 받았다. 조선의 선비로 한 임금만 모시고자 했었고 늙고 병든 부모와 처자식때문에 난리통에 피난가는 박동구도 다시 칼끝으로 위협해 전쟁통으로 끌고 간 그가, 일본 내에서는 편안한 삶을 살았다.
자신이 찾고자 했으나 찾지 못했고, 그래서 거두지 못해 온갖 죽을 고생을 한 그의 부인은 이미 두 아이의 엄마로, 일본인 히로시의 부인으로 변해 있었다.
온갖 고생의 흔적을 온 몸에 휘감고서 말이다.
안철영은 난세여서 이럴 수 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그 부인은 울며 절규한다.
죽어가는 아이를 안고 남편을 기다릴 때의 마음, 아이를 혼자 멀리멀리 떠나 보낼 때의 마음...
그래서 부인은"나는 어느 나라 사람도 아니고 이 두 아이의 어미다"라고 하는 말이 참 많이 와 닿는다.
부모라면...더구나 엄마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말이 아닌가 한다.
누구를 짚어서 잘했다 잘못했다 거론하긴 좀 그렇지만 솔직히 명분이나 내세워 가족을 나몰라라 한 안철영은 지금 시대엔 남편감으론 좀 아니다.
한평생 살아가는데 무탈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을테지만 유이화의 삶에 더 깊은 골곡이 생긴 건 알지만 그녀의 삶에 더 박수를 보낸다. 엄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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