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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이 내린다 ㅣ 시인동네 시인선 281
박화남 지음 / 시인동네 / 2026년 7월
평점 :
박화남 시조시인의 신간 『북극곰이 내린다』가 시인동네에서 출간되어 얼른 만나봤다. 제일 처음 출간했던 『황제펭귄』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 있어서 이번 시집도 읽기 전부터 많이 설렜다.
박화남 시조 시인은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고 201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황제펭귄』, 『맨발에게』가 있다. 중앙시조시인인상, 김상옥백자예술상 신인상 등을 수상했다. 2026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수박을 사 왔는데 배꼽부터 살펴본다/ 작고 단단할수록 무늬는 선명할수록/ 잘 익은 놈이라 했다// 당신을 굴려본다// 똑바로 세워놓아도 대답은 기울어져/ 머리부터 가슴까지 검은 줄을 그었다// 똑똑똑 잘 계십니까/ 당신에게 묻는다// 표정은 진지한데 속말은 알 수 없어/ 어깨 툭 건드리자 설렘이 쪼개진다// 서툴고 덜 익은 나에게/ 당신이 들어왔다//
- 「당신을 고르는 법」, (14쪽) 전문
수박이 사용하는 언어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서로 다를 것이다. 서로 겉모습부터 살펴서 상대를 대충 파악해 놓고 본격적으로 대화에 들어간다. “똑똑똑” 하고 물을 때 서로 얼마나 설렐지 두드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서툴고 덜 익었던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그때의 경험이 바로 소환된다. 수박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싶어 역시 시인은 타고 나는 듯 하다.
새들의 외투에는 주머니가 없어요// 먼지 하나 담지 않고/ 물기마저 털어내죠// 오늘을 날기 위해서 뼛속까지 비워요//
- 「비운다는 것」, (57쪽) 전문
닭이나 타조 같은 게 아닌 이상 거의 모든 새는 날아다닌다. 살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기도 하고 먹이활동도 해야 하고, 위험한 동물을 피해 안전한 잠자리도 구해야 한다. 그래서 새는 공중에서 속을 비워낸다. 조금이라도 가벼워야 날기에 적합한 몸을 만드니까. 남들은 한 번도 맞기 힘들다는 새똥을 두 번이나 맞아봤다. 새똥이 은근히 냄새가 많이 나는데 당시에는 굉장히 기분이 별로였는데 시에서도 언급하듯이 “오늘을 날기 위해 뼛속까지 비워요”라는 것처럼 새에게는 본능적인 삶이다.
문을 걸어 잠가도 들락거리는 환청/ 단절된 안부를 안고 폭삭 내려앉았다/ 버려진 시간을 위해/ 스스로를 꺾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은 지붕/ 알을 품은 닭처럼 그림자까지 끌어당겨/ 끝까지 집이 되려고/ 고개가 빳빳했다//
- 「고향집의 부음」, (63쪽) 전문
10여 년 전, 어릴 때 살던 고향집이 철거된 적이 있었다. 집만큼 사람의 손길을 잘 알아차리는 게 또 있을까? 한참만 관리를 안 해도 금방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란 게 표시가 난다. 단절된 안부, 집으로써의 역할을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 폭삭 내려앉을 때까지 기둥과 서까래, 문틀이 집의 형태를 유지하려고 얼마나 버티고 버텼을까. 「고향집의 부음」에는 희미해져 가는 내 고향집 기억을 다시 되살려 준다.
우산을 쓴 북극곰이 소나기로 내려요// 처음엔 정장 입은 남자인 줄 알았죠// 먹이를 찾는다길래/ 죽은 생선을 건넸어요// 알죠? 으르렁대며 얼굴을 할퀴었어요// 그들의 먹이란 게 빙하 말고 어딨겠어요// 우리는 싱싱하지 않죠/ 죽은 걸로 사는 걸요// 그들이 불어날수록 도로는 떠내려가고// 지붕은 비를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어요// 한바탕 곰은 사라졌는데/ 내가 사나워졌어요//
- 「북극곰이 내린다」, (72~73쪽) 전문
「북극곰이 내린다」는 표제작이다. 빙하가 녹고 있다. 얼마 전 티벳에서 빙하호가 녹아 티벳에 큰 재앙이 되었다. 우리 국민도 실종되어 아직 찾지 못한 안타까운 사건이다. 문제는 이런 빙하호가 하나둘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빙하가 이런 식으로 계속 녹아내리면 지구의 해수면이 높아져 바닷물에 잠기게 되는 곳도 많다고 들었다. 지구온난화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자꾸만 녹아내리는 빙하에 북극곰도 살기 힘들어졌다. 자신이 사는 삶의 터전이 위협을 받는다면 예민하지 않을 것이 뭐가 있을까.
박화남 시인의 『북극곰이 내린다』에서는 현대시조를 읽는 재미가 있다. 단순히 읽는 재미만 주는 게 아니라 사람과 같이 살아가야 할 온갖 것과의 공존을 조용히 이야기하는데 그게 박화남 시인이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방식이 아닐까? 벌써 다음 시집이 기대된다. 어떤 대화 주제를 가지고 짠, 하고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시조단에서 주목받는 시인이라고 들었다. 박화남 시인의 행보에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