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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사이에
하인혜 지음 / 이든북 / 2025년 7월
평점 :
『눈 깜짝할 사이에』/ 하인혜 동시집/ 이든북/ 2025
시간의 소중함을 상기시키는 동시집
하인혜 시인의 신간 『눈 깜짝할 사이에』를 눈 깜짝할 사이에 읽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고, 그때의 어른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요 며칠 도쿄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들이 4박 5일 휴가차 다녀갔다. 그것도 또한 눈 깜짝할 사이였다는 걸 『눈 깜짝할 사이에』가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눈/ 깜짝했을 뿐인데//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새// 시간을/ 먹고 사는/ 새//
- 「어느새」 전문 (-p61)
표제작인 「어느새」는 부사언 “어느새”이기도 하면서 살아있는 한 마리의 ‘새’로 읽히기도 해서 중의적인 표현으로 쓰였다. 부사일 때는 “어느 틈에 벌써. 또는 알지 못한 사이에 이미”라는 뜻으로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고)박완서 작가의 『아주 오래된 농담』에 “시간은 빨리 흐른다. 특히 행복한 시간은 아무도 붙잡을 새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만큼 “시간을 먹고 사는 새, 어느새”는 빠르다.
귀가 먹어 가는지 웅웅거리다/ 이윽고 쉭쉭댄다// 눈도 자주 깜짝거린다/ 손만 대도 시리고/ 밤이면 더 시큰거린다// 살 만큼은 살아보자고/ 오늘 또 수리기사가 와서/ 겨우 명줄을 이어놓고 갔다// - 잘두 버티고 있네 그랴. 웬만하면 새걸로 장만하지/ - 스무 해를 같이 살았는디 그게 쉽겄어유// 늘 먹는 밥에도 체할 때가 있듯이/ 옳은 말도 때론 서운할 때가 있는 법이다// 벙어리 냉가슴에 맺힌/ 무거운 눈물이/ 뚜, 욱/ 뚝/ 뚝//
- 「냉장고 할매」 전문 (-p34~35)
화자가 냉장고다. 냉장고 중에서도 할매다. 스무 해를 같이 살았으면 사람으로 치면 그 집의 돌아가는 사정은 다 꿰차고 있는 냉장고다. 그런 냉장고를 수리기사가 “웬만하면 새걸로 장만하지”하고 주인은 스무 해 동안의 동거를 언급한다. 함께 산 세월은 단칼에 자르는 게 아니란 걸 말한다. 집에서 살림을 좀 살아본 사람은 다 공감할 것이다. 하나씩 고장 날 때 하나라도 좀 더 쓰고 바꾸려고 알뜰살뜰 허리띠 졸라매고 사는 게 우리들의 모습인데 집안의 배경 같은 가전에게도 발언권이 있어 한마디씩 한다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을 이 시를 읽으며 해본다.
비가 오는데/ 아기 신발 한 짝/ 길 위에/ 떨어져 젖고 있다// 이 길을/ 다시 밟아/ 종종걸음으로/ 두리번거리며 다가올/ 엄마가 있겠다// 신발 한 짝 주워/ 젖은 자리/ 비껴/ 바로 저만치에/ 옮겨 놓는다// - 「신발 한 짝」 전문 (-p86)
아기에게 신발 신겨서 다녀보면 한 짝을 잃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신발이 살짝 헐렁해서 잘 벗겨지기도 하고 쑥쑥 자라는 아기한테 너무 꼭 맞는 신발은 얼마 신기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 한 사이즈 큰 걸로 사는데 예전에 아이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두리번거리며 다가올 엄마”가 나인 것만 같아 시선이 한참 머무른 시다. 시인의 따스한 마음이 엿보이는 시다.
글쓴이의 말에서 이 책에 실린 글은 시인 자신의 글이기보다 마음 깊숙이 스며든 말들이 시인의 입을 빌려 건넨 인사에 가깝다고 겸손하게 말을 건네는 하인혜 작가는 <동아일보>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작품집 『분꽃과 어머니』, 『엄마의 엽서』, 『지금이 젤 좋아』 등이 있으며 대산창작기금과 대전일보문학상, 대전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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