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정은 오늘도
김양미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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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구가 필요한 다양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작가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실제 삶이 사기와 배신, 왕따 이런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면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고 차분하고 고상하게 살아낼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김양미 소설집 『오순정은 오늘도』를 읽다 보니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눈앞의 현실에 급급해 허덕이고 사는 게 일반적인 모습인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고 아무리 외친들 그 말이 귀에 들어올까만 『오순정은 오늘도』는 읽을수록 독자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몇 집만 건너면 소설 속 주인공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이 내 생활 주변의 일 같아 그만큼 더 실감 나고, 재미있다.
김양미 작가는 2022년 제41회 근로자 문학제에서 「내 애인 이춘배」로 입상, 그해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비정상에 관하여」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해 2023년 단편 소설집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2024년 에세이 『매운 생에서 웃음을 골라먹었다』를 출간했다.
7편의 단편으로 앞에 3편은, 앞에 3편은 오순정, 김종만, 김하나가 각각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이고 「자전거의 기울기 23.5〫」는 할머니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할아버지가 기울어진 자전거에서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손주뻘 아이한테서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이야기다. 「로또」, 「리틀 몬스터」, 「드림 포에버」에서는 유기견, 유기묘 이야기, ADHD 진단을 받은 남자아이를 키우면서 매일 전쟁을 치루는 이야기, 이미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시대를 사는 인간이 드림 포에버 센터에서 그동안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연도별로 살아보다가 가는 내용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 모두 숨구멍이 필요했겠구나 싶었다. 오순정은 부동산을 보러 다니면서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 김종만은 문화센터에 시를 쓰는 다니는 것, 왕따가 되어 괴롭힘을 당하다가 수퍼집 딸 명진을 만나 수다를 떠는 하나. 하나의 가족으로 뭉쳐 살지만 사실 자기 팔 자기가 흔들고 사는 모습이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녀를 믿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리틀 몬스터」 제일 마지막 문장은 “하율이는 강한 아이라는…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이다. 자포자기와 희망이 함께 보여 마음이 아리다. 하율의 엄마 아빠는 저 문장 안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믿어보는 것 이외에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자신들은 또 얼마나 무기력하게 느껴지겠는가.
아프리카 격언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하율이의 과잉행동으로 숨을 헐떡이고 사는 요셉과 마리아 같은 이들이 주변에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많은 이들이 주말에 있는 로또 보권 추첨 시간에 맞춰 지금 이 시간에도 복권 가게를 기웃거리거며 자동으로 혹은 수동으로 로또 복권을 산다.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손바닥보다 작은 용지에 희망을 건다. 재미로 사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이 그것만이 자신의 삶을 인생역전할 기회이자 숨구멍이 되기 때문에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기다린다. 오순정처럼 2등이라도 된다면 삶이 자그마한 빛이라도 들어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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