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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속을 헤엄치네, 고래 ㅣ 서정시학 서정시 156
김석 지음 / 서정시학 / 2024년 10월
평점 :
소일거리로 약간의 텃밭 농사를 짓고 시간 날 때 사찰에는 한 번씩 가는 걸로 알고 있는 김석 시인이 사행시집 『바위 속을 헤엄치네, 고래』를 출간했다. 내용이 길다고 전달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다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짧다고 할 말 다 못하는 것도 아니란 걸 이 시집을 보니 알겠다. 명쾌하면서 가끔은 정곡을 찌르기도 하고, 웃음을 주기도 하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김석 시인은 2004년 《시인정신》으로 시, 《문학청춘》으로 시조 등단했다. 시집 『거꾸로 사는 삶』, 『침묵이라는 말을 갖고 싶다』, 『괜찮다는 말 참 슬프다』 등이 있고 대구예술상, 『대구문학』 올해의 작품상을 수상했다.
세월 지난 그 자리엔 암각화만 남아있고/ 애기 없는 어촌처럼 울음소리 사라졌네/ 저 고래, 바다가 아닌/ 바위 속을 헤엄치네//
- 「암각화」 전문_ (82쪽)
표제작인 「암각화」를 비롯해 몇 편을 소개한다.
반구대 암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바위를 별 다른 장치를 하지 않고도 여운을 주는 구나 싶어 시인의 내공이 느껴진다.
피면서 지고, 지면서 피는 꽃/ 꽃잎 밟으며 꽃놀이 나온 사람들/ 나무 위 쳐다보지만/ 발 아래는 못. 본. 척//
- 「시선」 전문_ (15쪽)
봄 내내 이러고 다녔을 내 모습이다.
상추, 쑥갓, 파, 부추, 감자, 고추, 배추, 무, 계절마다 텃밭에/ 점 하나로 그림을 바꾸는/
너, 호미다!/ 날카로운 붓//
- 「텃밭 풍경화」 전문_ (24쪽)
텃밭 농사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시 한 편으로 농사는 좀 덜 됐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짧은 시가, 시인이 쥔 작은 호미가, 시인의 마음이, 시인의 시심이 만들어 낸 텃밭 풍경화는 어떤 그림보다 아름답다.
잔소리 안 해도 알아서 청소하는/ 로보락 보며 웃고 있는/ 나를 보며/ 그놈이 아들보다 낫다는 아들놈//
- 「로봇 청소기」 전문_ (30쪽)
식기세척기를 주방 이모라고 부르는 걸 들었다. 로봇 청소기도 한몫을 톡톡히 하는 필수품이다. 이 둘만 있어도 집안일이 한결 수월해지니 도맡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웃음이 날밖에 없다. 집안일 도와주지 않는 다른 식구들 입장에서는 본인들보다 낫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반려견도 반려묘도 없지만/ 눈 없고 귀 큰 동그란 수석 하나/ 내 얘기 듣고, 또 듣고/ 말 없이 웃고 있는//
- 「반려석」 전문_ (50쪽)
요즘 반려동물, 반려식물로 스스로 집사 노릇을 자처하는 사람이 많은데 시인은 그중 제일 손이 덜 가는 수석의 집사 노릇을 하고 있나 보다. 말없이 서로 바라보는 사이, 얘기를 듣고, 또 들어주는 반려석. 이미 도를 통한 건지. 반려동물이든, 식물이든, 반려석이든 온전히 마음을 줄 대상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요양원 침대 위 엄마 눈 맞추며/ 내 누군지 알겠나, 큰 아들 이름 머꼬?/ 엄마는 어디 있능교?/ 큰 아 이름 ‘석’이다//
- 「그것도 모를까봐」 전문_ (84쪽)
나이 들어 병원에 입원해 계신 분들한테 자주 하는 질문인데 어르신들은 생각보다 온전한 정신으로 잘하는 말이 “그것도 모를까봐”다. 예전에 엄마한테도 무심코 툭 질문을 던지면 종종 하던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렇게 물어볼 엄마가 안 계시지만, 세상 모든 어머니가 건강하게 자식들 곁에 오래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데 마음을 보탠다.
김석 시인의 사행시집은 쉽게 읽히면서도 전하는 메시지는 또렷하면서 때로는 묵직하다. 가을 나들이 떠날 때 반려책으로 함께 동행하는 것도 좋겠다. 함께 가는 동행자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 책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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