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 단비어린이 동시집
이현영 지음, 정원재 그림 / 단비어린이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 이현영 동시집/ 단비어린이/ 2023
재작년 도서관에서 일반인 동시 수업을 잠깐 했다. 매번 수업 시간마다 새로운 동시 몇 편을 출력해서 가지고 가 읽히고 직접 쓰게도 했는데 사투리 동시라는 타이틀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현영 시인의 「한 알만 먹으면 죽는 약」도 들어가 있었다. 수강생들은 이현영 시인의 이 작품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지방에 살고 다른 지방에 살았던 수강생도 있어서 자신들만의 사투리로 시를 쓰게 했는데 재밌는 작품들도 나왔던 기억이 난다.
개인 작품집으로는 첫 동시집을 낸 이현영 시인은 어린이와 문학에 동시로 에세이 문학에 수필로 등단했고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을 받았으며 인제국제시조 공모전에 시조로 장려상을 받았다. 2022년에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간지원으로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을 펴냈다. 펴낸 동시집으로 『강아지 기차』(공저)가 있다.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에 실린 몇 편을 소개한다.
어린이답게,/ 예쁘고 귀여운 말을/ 표준말로만 써야 합니다//마이크로 몇 번이라 일러 주던/ 심사 위원 할아버지// 예쁜 말도 귀여운 말도 없이/ 끝에는 ‘미안해서 우짜노’로 끝이 난/ 내가 써낸 시// 어린이답게 못 썼는지/ 똑 떨어졌지만// 그래도, 내 시에는/ ‘미안해서 우짜노’가 필요했다// 떨어지면 우짜노,/ 생각은 안 들었다// - 「백일장에서」 전문 (12쪽)
이 동시집을 읽어보면 시인의 색깔이 참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건 그만큼 중요한데 시인은 “볼거리 많은 세상, 여기 기웃 저기 기웃대느라 몹시도 늦어 버렸다.”고 동시집이 늦게 나온 이유를 겸손하게 말했는데 그 보다는 좀 더 완성도가 높은 시, 자신의 시 세계를 만드는데 그만큼 더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늦어진 게 아닌가 싶다. 「백일장에서」를 읽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옛날 옛적에/ 딸 부잣집이 있었는데/ 딸이 넷이어도/ 엄마 일 도와주는 딸이 없었대// 큰딸은 동무 좋아 밖으로만 나가고/ 둘째 딸은 셋째랑 공기놀이 한다고/ 마당에 퍼질러 앉았고/ 넷째 딸은 너무 어렸지 뭐야// 이 방 저 방 쓸고 닦고/ 설거지해서 엎어 놓고/ 줄줄이 벗어던진 빨랫감을/ 방망이로 두드리면서// 내 손이 내 딸이다/ 내 손이 내 딸이다/ 동네 사람 모르는 착한 딸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하더란다// - 「착한 딸 이야기」 전문 (38~39쪽)
딸 넷인 나의 엄마도 착한 딸 이야기를 개울에서 빨래하며 자랑했을까? 윗세대 부모님들의 힘든 시절이 머릿속에 휙 지나가는 시다.
이십 년 넘게 같이 사는/ 선풍기 짝꿍// 고개 못 들어/ ‘안녕하세요?’ 인사만 하는 건 끄덕이/ 고개 못 숙여/ ‘내가 뭐!’ 하며 인사 한 번 안 하는 건 우쭐이// 끄덕이는 겔겔겔겔 아래로 돌고/ 우쭐이는 턱턱턱턱 위로 돌아서//마루에 앉으면 골고루 다 시원한다//
- 「끄덕이와 우쭐이」 전문 (83쪽)
우리 집에도 절대 고개 안 숙이는 우쭐이가 있는데 겔겔이를 들여놔야 하는 건가? 집집마다 오래 사용하다 보면 한 군데씩 고장이 난 선풍이가 있는 걸로 안다. 그 선풍기가 작가의 눈을 통해 공감이 가는 재미난 시로 탄생했다.
아침에 종종 문 걸어 두고/ 아픈 다리 때문에 읍내 병원에 다니는 할머니가/ 주인입니다/ (오전 시간에 가면 헛걸음치기 쉬워요)// 과자, 라면, 아이스크림 말고도/ 공책, 우표, 옷핀, 두통약도 팔아요/ (가게 옆 깻잎은 그냥 따 가라 하기도 해요)// 날짜 지난 빵이나 우유도/ 당당히 한자리 차지하고 있답니다/ (할머니 모르게 살짝 확인하세요)// 덧붙임. 큰 소리로 인사하는 것을 빼먹지 마세요/ (인사 잘한다고 과자 한 봉지 줄 때도 있거든요)//
- 「우리 마을 구멍가게 이용법」 전문 (94~95쪽)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에는 다소 호흡이 긴 동시도 있지만 대부분 재밌게 읽히는 동시들이다. 본문에는 「우리 마을 구멍가게 이용법」인데 책 제목은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이라 독자들이 모르는 전략인가? 아는 분이 작년에 자신의 동네에 편의점이 들어왔다고 이제 문화생활권에 들었다고 이야기해서 웃었는데 「우리 마을 구멍가게 이용법」에는 아직 포스기와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그런 구멍가게다. 대형마트와 편의점에 둘러싸여 있다가 어쩌다 구멍가게를 만나면 참 반갑다. 구멍가게 이용법이 다른 동네에서도 통할지 잘 익혀서 써먹어 봐야겠다.
『우리 동네 구멍가게 이용법』, 유괘한 웃음과 따스한 마음이 교차하는 동시집이다. 많은 분이 읽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