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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먼 섬으로 나비가 팔랑팔랑 ㅣ 도토리숲 동시조 모음 10
전병호 지음, 김혜원 그림 / 도토리숲 / 2022년 5월
평점 :
재밌고 가볍고 따뜻한 동시조집
『수평선 먼 섬으로 나비가 팔랑팔랑』/전병호/도토리숲/2022
동시조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쓴 시조인데 운율 때문에 동시보다 더 잘 읽힌다. 요즘 동시는 시와 구분이 안 가고 어렵게 읽혀서 난감할 때도 있는데 동시조는 짧으면서도 어린이 독자를 더 배려하는 장르인 것 같아 아이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느낌은 ‘제목이 기네?’였다. 다시 읽어보니 ‘제목에도 리듬이 있네?’ 그리고 또 보니 ‘동시조집 다운 제목이네’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조의 초장이나 중장이 아닐까 하고 본문을 펼쳐보니 중장과 종장의 부분에서 따왔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부분에서 발췌했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전병호 선생님은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비닐우산」이 당선되었고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몽돌」, 「학」이 수록되었다. 2004년 제37회 세종아동문학상, 2011년 제21회 방정환문학상과 2013년 제45회 소천아동문학상을 받았다. 펴낸 동시집으로 『백두산 돌은 따뜻하다』, 『아, 명량 대첩』, 『들꽃 초등학교』 등이 있고 동시조집으로 『자전거 타는 아이』 등이 있다.
몇 편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수국꽃 사이로 쪽빛 바다가 열리고
손을 들어 가리키는 수평선 먼 섬으로
꽃에서 자고 난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간다.
-「섬에 가는 나비」 전문 (51쪽)
돌장승 발등에
내려앉은 벚꽃잎.
바람이 불 때마다
살금살금 간질이나?
씩 웃고 시침 떼는 걸
내가 다 보았다.
-「봄‧돌장승」 전문 (14쪽)
다리 다쳐 깁스하고
목발 짚는 친구 따라
책가방을 두 개 메고
나도 같이 학교 간다.
뚱뚱한 친구 책가방
하나도 안 무겁다.
-「친구」 전문 (33쪽)
지팡이 짚은 할머니는
반도 못 건넜는데
깜빡이는 신호등
허둥대는 발걸음
할머니 뒤를 따라가며
손을 들고 건넜다.
-「횡단보도 건너는 할머니」 전문 (62쪽)
바위산 꼭대기에 올려놓은 저녁해
새빨갛게 달구어진 커다란 쇠공 같다.
또르르 굴러내리면 도시가 불탈 텐데…….
-「저녁 해」 전문 (94쪽)
앞에 소개한 몇 편 외에도 이 동시조집은 따스한 울림이 있다. 얼마 전 선생님의 동시 한 편으로 나오게 된 그림책 『우리 집 하늘』을 보고 한 편의 시가 담아내는 세계는 참 넓고 깊다는 걸 새삼 느끼면서 펼쳐보고는 시가 뿜어내는 따스함에 위로를 받았는데 이 동시조집 역시도 따뜻한 마음을 바탕에 깐 동시가 많다. 저녁 해처럼 감각적인 동시조도 많이 눈에 들어온다. 동시조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곁에 두고 꾸준히 공부하면 좋겠다. 끝으로 전병호 선생님은 시인의 말에서 마음속에 숨어 있는 우리 가락을 찾아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고 있는데 이 동시집이 그 마중물 역할을 톡톡하게 해내리라고 본다. 이 동시조집은 동시조에 관심이 있는 독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읽어도 지친 현대인의 삶에 따스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