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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라면입니다 ㅣ 고래책빵 동시집 18
성환희 지음, 손정민 그림 / 고래책빵 / 2021년 7월
평점 :
『행복은 라면입니다』/성환희 시, 손정민 그림/고래책빵/2021
소소한 행복을 주는 동시
어쩔 수 없이 운명처럼 시를 쓴다는 성환희 시인은 거창에서 태어나 2000년 문학세계에 시로 2002년 아동문예에 동시로 등단해 그동안 동시집 『궁금한 길』, 『인기 많은 나』, 『좋겠다 별똥별』, 『놀래 놀래』, 시집 『선물입니다』, 『바람에 찔리다』, 청소년 시집 『내가 읽고 싶은 너라는책』을 펴냈다. 긴 시간 시와 동시를 써 온 만큼 이번 동시집의 시는 순풍에 돛단배처럼 막히는 곳 없이 잘 읽힌다.
학교 신발장에/ 너를 기다리는 배가 두 척// 몇 척은/ 성큼성큼/ 발들은 태우고 출발했다// 빨리 나아서 학교에 오렴// 오늘도 두근두근/ 봄을 기다린다 배 두 척//
- 「봄이 신발」 전문 12쪽
아픈 아이가 벗어놓은 신발이 주인 없이 신발장에 놓여 있나 보다. 유독 빈자리가 눈에 띄듯이 신발도 마찬가지다. 봄이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모아져 봄에는 벗어놓은 배 두 척이 항해를 시작할 수 있기를 많은 독자도 마음을 보탤 것이다.
캄캄한 박스 속에서/ 감자는 오랫동안 너무 심심했어// 감자는 감자가 아닌/ 도깨비가 되기로 결심했어// 어느 날 엄마는 감자를 찾으러 떠났는데/ 허탕을 치고 돌아왔어/ 도깨비 탈을 쓴 감자를 알아보지 못했어// - 「감자」 전문 20쪽
많은 주부들이 감자를 더 이상 감자가 아닌 도깨비 상태로 만들어 집 밖으로 내쫓은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감자는 수확한 다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채소가 아닌가 싶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뿔난 감자를 마주하게 되니 말이다. 옛날에 많았다던 도깨비가 다 박스랑 검은 비닐 안으로 들어갔나 보다.
여긴 모두 녹슬고 있구나!//오늘은 내 이름이 낯설고/ 걷는 법도 잊어가고 있다//몸 아파서 아픈 게 아니다/ 점점 뭘 기다리는 게 전부인 시간이/ 슬퍼서 아픈 것 같다//이번 일요일엔 같이 오너라/ 내 손주들 웃음소릴 끌고라도 오너라// 햇살 같은 웃음소독이라도 해야/ 이 어두운 귓속이/ 좀 환해지지 않겠니?// - 「요양원에서 온 할머니 편지」 전문 31쪽
눈물이 울컥하는 시다. 지금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요양원 면회도 힘들기 때문에 할머니의 마음이 어떨까 싶어 마음이 짠하다. 저렇게 손주들 웃음소독이라도 하고 싶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둘일까.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슬프다.
개미도 일 안 해/ 코로나라서// 개미도 아니면서/ 환이 니가 어째 아노// 길에 개미 한 마리 안 보이잖아/ 봄인데도!// - 「환이 생각」 전문 71쪽
코로나라서 일 안 한다는 발상이 재밌다. 개미가 재택근무할 수도 있는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지금의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는 시다. 봄이면 모든 게 생동감이 넘쳐야 하는데 땅속에서 나와 부지런히 일해야 할 개미가 안 보이니 코로나와 연결시켰다. 그만큼 지금 코로나는 모든 걸 멈추고 지연시키고 있다. 얼른 활기 넘치는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중간중간 들어간 사투리도 재밌게 읽히는 시가 많다. 제목이 라면을 부른다. 라면 한 봉 끓여 먹어가면 읽으면 행복이 두 배가 되는 시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