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할머니가 바늘을 꺼내 들었다
백민주 지음, 윤봉선 그림 / 책내음 / 2020년 11월
평점 :
『할머니가 바늘을 꺼내 들었다』/백민주/책내음/2020
정겨운 동시집을 만났다. 제목부터가 『할머니가 바늘을 꺼내 들었다』이다. 표지화에서 등장하는 할머니 모습이 오래전 방에서 바느질하던 할머니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그런지 친근감이 생긴다.
백민주 선생님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로서 2015년 시와 소금으로 등단했고 그해 글벗문학상을 2019년에는 한국 안데르센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낸 동시집으로 『달 도둑놈, 『첫눈에 대한 보고서, 『구름버스 타기와 청소년 시집으로 『보름달 편지』가 있다.
B가 내려요.
그 B 먹고
C가 자라요.
C가 자라 열매 맺으면
그 열매 먹고
새들이 R을 낳아요.
그 새 소리 듣고
I들이 자라요.
새가 날고 I들이 웃는 세상에
또
B가 내려요.
- 「영어 공부, 자연 공부」 전문 14쪽
재밌는 시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영어 공부와 자연 공부를 시키면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시를 읽으면서 미소 짓게 된다. 재밌고 미소 짓게 하는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 시를 보자.
몇 점 받았니?
몇 등 했니?
몇 시간 공부했니?
이런 질문만 하는 우리 엄마
창의적인 엄마가 되기는 다 틀렸다.
- 「좋은 질문」 전문 24쪽
뜨끔하다. 아마도 책을 어른 독자 상당수가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창의적인 엄마에서 낙제를 받는 나 역시 이 시를 읽고 살짝 반성 모드에 돌입했다.
할머니네 동네에 평생학교가 생겼다.
평생, 학교라고는 못 가 볼 줄 알았는데
평생학교에 평생학생이 된 할머니들
평생, 평생학교 결석 안 할 거라고
평생, 안 해 본 약속들을 했다.
- 「평생학교」 전문 53쪽
요즘은 교육열이 지구상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우리나라지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그 당시를 살아온 분들은 교육보다 먹고 사는 일이 더 바빴다. 살아계신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세대 중에는 교육을 못 받은 분들이 계신데 뒤늦게 평생학교에 등교해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신다. 늦게 공부한다고 꾀부리는 일 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서 지금이라도 배움의 기회를 갖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평생학교에서 한 약속이 오래오래 가기를 빈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들썩이는 어깨와 등을 쓸었다.
가스러운 그 손이 너무 따듯해서
펑펑 울었다.
니 어릴 적에 심한 장난하다가
바지에 구멍 나고 양말에 구멍 나면
감쪽같이 꿰매 주던 것 기억 안 나나?
할매가 니 구멍 나난 마음 하나
못 꿰맬 줄 아나?
걱정 마라.
새것같이 꿰매 줄끼다.
- 「할머니가 바늘을 꺼내 들었다」 전문 56쪽
표제작이다. 손주들의 영원한 지지자 할머니, 그 품이 그리워지는 시다. 옷과 마음, 다 같이 어루만져 주는 손길에서 많은 독자의 눈이 머물지 않을까. 이렇게 백민주 시인의 시에는 독자를 따스하게 어루만져 주는 힘이 있다. 위로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