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펭귄 - 박화남 시집 책만드는집 시인선 153
박화남 지음 / 책만드는집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제펭귄에게서 아버지를 보다

 

황제펭귄/ 박화남/ 책만드는집/2020

 

박화남 시인의 첫 시집이 나왔다.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다. 시인의 말을 먼저 만나본다. “조금은 사물들에게 경이로운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짧은 말이지만 큰 울림이 되어 독자들 가슴에 가 닿았으리라. 시어와 내용이 깊이를 담고 있어서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동화나 동시, 아니면 소설쯤으로 추축되기도 한다. 제목이 품은 호기심도 만만찮으니까.

박화남 시인은 김천에서 태어나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1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 한국동서문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황제펭귄을 끝까지 읽었을 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버지라는 단어가 많았다는 생각이다.

 

울 엄마

 

둥근 집에 나 홀로 들었을 때

 

달의 젖을 먹였던가 나도 따라 둥글어져

 

내 배꼽 가장자리가

 

뽀얗게 물결 진다

 

달항아리전문, -14

 

 

달항아리는 흰 바탕에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았다해서 달항아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꽤 이름이 난 분의 달항아리를 본 적이 있다. 둥근 모양이 사방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달항아리는 그런 비정형이 멋이라고 한다. 달항아리도 엄마의 배도 보름달을 닮았다. 달항아리의 배꼽 가장자리가 유난히 뽀얗게 보이나 보다.

 

 

무더기 꽃 피워도 해마다 불임이다

 

지성으로 기도해도 아기는 오지 않아

 

고모는 날벼락 맞고 오 년 만에 쫓겨났다

 

친정에 돌아와도 받아주지 않았다

 

상처 있는 가지끼리 서로 만나 보듬더니

 

발그레, 자두 열매가 실하게 익어갔다

 

벼락 맞은 자두나무전문 38

 

 

친척 중에 결혼해서 한 번 유산하고는 아기가 들어서지 않아 이혼하고 친정에 온 사람이 있다. 40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니 뒤늦게 아들을 낳아 알콩달콩 잘살고 있다. 상처 있는 가지끼리 보듬으면 그 상처가 더 빨리 아무는 것인지 세상사는 정말 모를 일이다.

 

 

동박새로 날아와

 

그대가 없는데도 그대 너무 그리워서 만덕산 햇살처럼 구강포 바다를 당겨

 

백련사 고요에 들어 붉은 숨을 내쉰다

 

 

2. ‘丁石을 새기며

 

꺾어 든 그 비수를 바람 속에 던져놓고 초당에 내려앉아 찻물 깊이 끓였을까

 

용오름 역린을 삼켜 명편이 된 한 사람

 

 

3. 천년의 시편

 

그대 푸른 동백나무 하늘로 날아올라 흐르는 구름 위에 한 편 시 적은 오후

 

여태껏 본 적은 없는 길 활짝 열린다

 

 

茶山을 읽다 전문-54

 

201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가 있는 동안 나라와 집안과 가족을 생각하며 한 편 한 편 적었을 시편이 茶山을 읽다에 함축되어 있는 듯 하다. 말을 절제했기에 깔끔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그 깊이와 그윽함이 함께 밀려오는 작품이다.

 

 

스크럼을 짜고 있다 어깨 서로 걸고서

 

새끼를 지키려는 극한의 맨몸 화법

 

그 어떤 소리도 없다

 

아버지도 그랬다

 

황제펭귄전문 56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다 스크럼을 짜고 있지 않을까? 어쩌다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부모라면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기도 하니 말이다. 황제펭귄은 남극에서 가장 큰 펭귄인데 멸종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남극의 혹한에 황제펭귄 수컷은 발등에 알을 올려 65일간 품어 부화시킨다고 한다. 알을 지키기 위해 수컷이 모여 원을 만들어 서로 자리이동해 가며 알을 지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 펭귄의 부성이 눈물겹다.

 

엄마는 큰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자신을 파먹어서 날마다 배고픈 말

 

언니는 그 강을 건너

엄마 되어 웃는다

 

아무리 배불러도 자꾸만 떼를 쓰는

지우고 닦아내도 얼룩으로 남는 밤

 

엄마는 엄마가 그리워

다시, 언니가 된다

 

치매 병동 203전문 -77

 

치매는 한 사람의 역사가 송두리째 지워지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나 자신에게나 다 힘든 병이다. 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엄마가 되어주는 언니.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성치매 역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문제가 덜 생기려면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살아야 하는데 안지랑 골목이든 복현오거리 뒷골목이든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앉아 야들하게 구워진 막창에 익어가는 이야기를 더해 꼭꼭 씹어서 마음까지 순해지는 시간을 자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돌아가신 지 10년 훌쩍 넘은 아버지 생각을 많이 나게 한 시집이다. 황제펭귄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살아계시는 동안 자식 여럿 발등에 올리고 동동거리지 않으셨을까 생각도 든다. 시인의 겉모습처럼 차분하면서도 많은 말 필요 없이 긍정의 끄덕임을 이끌어낸다. 읽어보면 첫 시집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것이다. 다른 독자 역시도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