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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재니? ㅣ 스콜라 동시집 2
유미희 지음, 조미자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재작년까지 우리 집엔 사과밭이 있었다. 재작년 초에 사과나무를 다 뽑아내고 지금은 다른 동네 사람이 소에게 줄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다. 그래서 사과밭 일은 꽤 익숙하게 할 수 있다. 가끔 다른 집에서 봄에 적과할 때 일손이 모자라 도와달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럼 봄에 가서 적과를 해주고 가을에 사과로 품삯을 받을 때가 있다. 이 동시집 『뭘 그렇게 재니?』의 시인의 말을 읽는데 어릴 때 새가 쪼아 먹는 사과, 익다가 꼭지 부분이 갈라진 사과, 떨어져 흠이 있는 사과를 참 많이 먹을 기억이 떠올라 그 속에 시의 씨앗이 뭐 였더라?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 동시집은 대학에서 출판 및 홍보를 공부해 기업체에서 오랫동안 사보 편집 일을 한 유미희 작가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금을 받아 낸 동시집이다. 2000년 아동문예에 동시 부분으로 등단해 연필시 문학상, 오늘의 동시문학상,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우시나라 좋은 동시 문학상을 수상했다. 펴낸 동시집으로는 『오빤, 닭머리다!』, 『내 맘도 모르는 게』, 『고시랑 거리는 개구리』, 『짝꿍이 다 봤대요』. 등이 있고 지금은 도서관과 학교 미술관 등에서 시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동시집 한 권에는 갯벌이 펼쳐지는 바다와 바다를 끼고 자라는 온갖 식물들이 다 등장한다.
“분홍 큰 귀를 쫑긋 세우고 뭐 하냐고?/촤르르촤르르 밀물이 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있지/낮에 개미가 귓속에 들어가/간질간질 귓잡 청소해 주고 갔거든//” 「갯매꽃」 전문
마음의 고향이 어디인가에 따라 시 속에 담기는 언어가 많이 다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메꽃을 많이 보는데 내륙에 사는 사람들은 “밀물이 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기 위해 쫑긋 피어있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시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글 한 줄이 가져다주는 시청각 효과가 이런건가 보다.
“이것저것/뭘 그렇게 재니?//어제도/오늘도/만나는 것마다//넌/그게 참 문제야//달개비는 달개비로/떡갈나무는 떡갈나무로//그냥 있는 그대로 봐 줄 수 없니?//그러자/자벌레가 내게 물었다//넌/그럴 때/없어?// 「자벌레에게 묻다」 전문
어른들은 꼭 개구리 같다. 올챙이적 생각 못 하는. 자신이 학생이었을 때는 생각 못 하고 아이 보고 공부, 공부 하는 어른. 아이가 공부는 좀 못 하더라도 다른 장점을 있는대로 봐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 시를 읽으면서 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 봐 주기” 이 시를 조금 더 발전시킨 게 2부의 「흠」이 아닐까 싶다.
“무조건/비교 먼저 하시는데//그게/바로/아ᄈᆞ의 흠인 거 아실까?// 「흠」 일부분
꼬집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아이들도 안다. 무얼 잘 하고 무얼 못 하는지 다만 그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을 뿐이지. 때가 되면 그런 것도 다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을까? 어른들도 말만 하고 실천이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가랑가랑 가랑비 왔다 가면서/옆집 할아버지네 개똥참외밭에 불 켜 놓았다//노란 꼬마꽃전구 아래서/방아깨비네 세 식구 오물오물 저녁밥 먹는다// 「개똥참외꽃」 전문
방아깨비네 세 식구 저녁 시간이 비록 만찬은 아니더라도 더없이 따뜻하다. 「딴짓 하는 까닭」
, 「우진네 닭」, 「절집 식구」도 비슷한 분위가가 난다. 평화로우면서도 안정된 분위기가 마치 작가를 대하는 것 같다.
“할매,/작년에 깜박하고 못 심은 시금치씨/그렇게 지금 심어도/파릇파릇 싹이 나와요?//그렇당께/니도, 철 놓쳐 맴속에 갖고만 댕기는/묵은 씨 있으면/시방 뿌려도 늦지 않는당께.// 「문은 씨」 전문
씨를 심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다 때가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요즘 공부를 놓친 할머니들이 한글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농산물이 비닐하우스에 사계절 재배되기도 한다. 그래서 굳이 때를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때에 온 정성과 마음을 기울여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 시집도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쓴 게 보인다. 바다 향기가 그리운 사람, 따스하고 편안한 이웃의 사는 이야기가 그리운 사람은 『뭘 그렇게 재니?』를 읽어 보기를 권한다. 그리움을 어느 정도 잠재워 주는 동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