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 인터뷰 참조
김기영 감독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영화는 [고려장]이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칸느에서 그랑프리를 받았던 영화가 고려장을 표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이장호 감독의 막내로 들어와서 충무로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사무실에 웬 행색이 초라한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오시자마자 이장호 감독이 벌떡 일어나서 구십 도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박찬욱 감독이 아? 이분이 바로? 했던 적이 있었다.
또 당시에 동명이인 감독이 있었다. 젊은 김기영 감독이었는데 이 감독이 만든 영화 포스터에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 위에 [제정신인 김기영 감독]라고 적었다. 그러니까 노인네 김기영 감독은 뭐랄까, 완전 틀에서 벗어난, 돌아이 기질의, 너무나 자유분방한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충무로에서 가장 괴짜로 소문난 감독이었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도저히 한국에서 나온 영화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영화들이었다. 한국적에서 벗어난 기괴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김기영 감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아하는 정신세계다.
김기영 감독하면 스페인의 루이스 부뉴엘의 초현실 주의, 프로이트의 경도[김기영 감독은 프로이트의 세계관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70살이 넘을 때까지 말했다], 그리고 도저한 염세주의가 있었다. 김기영 감독의 세계관에서는 한국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 세상에 대한 비극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파졸리니 감독을 연상시키는 과도한 성묘사 장면과 폭력 장면들, 일본 영화의 영향을 받은 잔혹취미, 개인적으로 마르크스를 존경해서 부르주아 세계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김기영 감독의 영화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었다.
70년대까지는 주류에 속하는 감독이었지만 80년대를 지나면서 비주류로 밀려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김기영 감독은 서울대 의과대학을 나왔다. 대학극으로 시작하여 다큐멘터리를 거쳐 상업영화를 하고 연극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항상 스스로 각본을 쓰는 지적인 감독이었다. 동승, 이어도, 장미희가 벙어리로 나왔던 느미 같은 작품이 좋다. 당시 충무로에서 김기영 감독과 같이 작업을 한 스텝은 그에 대한 에피소드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정도로 괴짜였다고 한다.
예를 들어 콘티를 짜오는데 남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고 작은 종이에 자기만 볼 수 있게 조그마하게 그려 온다거나, 세트촬영 중 레일을 깔아야 하는데 세트장이 협소해서 레일을 깔 수 없다고 하니까 콘크리트 벽을 허물게 해서 촬영을 감행하기도 할 정도로 괴짜였다.
스타를 발굴하는 재능까지 있던 감독이었다. 김지미, 안성기 배우들이 김기영 감독의 영화로 데뷔를 했다. 김기영 감독의 가장 괴짜력은 세계에서도 없을 리메이크 경력이다. 가장 유명한 60년에 나온 [하녀]를 71년에 [화녀]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트를 했고, 82년에 [화녀 82]로 또 리메이크했다.
또 [충녀] 시리즈도 있고, [수녀]도 있다. 충녀는 80년대 [육식동물]로 리메이크했다. 김기영 감독은 엄청난 시나리오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꽂히는 영화는 계속 리메이크를 했다.
하녀 시리즈의 내용은 시골출신 촌뜨기 처녀가 서울의 대중가요 작곡가의 집에 식모로 취업을 하고 거기서 부부와 삼각관계가 이루어지며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 심리 스릴러가 펼쳐지며 결국 주인남자와 식모가 동반자살을 하는 결말로 이어진다. 아주 비극적이고 기괴함이 당시에는 한국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먹히지도 않았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남자는 우유부단하고 여자들에게 휘어 잡혀 어쩔 줄 몰라하는 지질한 인물이다. 남자의 아내는 부르주아 중산층의 여자로 가정을 지키려고 모든 걸 다 바치는, 다른 건 안중에도 없는 그런 인물로 그려진다. 시골에서 올라온 하류계급의 처녀는 동물적이고 본능적은 세계에 사로 잡혀 있다.
이런 서로 다른 세 부류의 주인공들이 얽히고 서로 죽이려 드는 심리물이다. 성착취와 폭력 그리고 정신질환의 문제를 장면장면으로 이어서 보여주는 게 특징이다. 하층계급이라 해서 선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구조를 따지고 보면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김기영 감독의 영화다. 특징이라고 하면 감독이 박자에서 엇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클리셰에서 벗어난다. 이 대목에서 이렇게 나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도 웃음이 터지게 나오는 장면이 많다.
김기영 감독 영화의 대사는 거의 문어체다. 자연스러운 대사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책을 읽는 듯한 대사처리가 특징 중 하나다. 가장 큰 특징은 세트촬영과 조명의 사용이 대가에 속한다. 정일성 촬영감독이 김기영 감독을 두고 최고의 감독이라 칭했다.
세트촬영의 극치를 보여주는 [반금련]을 만들었는데 당시 신군부 시대에서 퇴폐감독으로 낙인찍혀 영화가 난도질 당한채 개봉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