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빈속에 술을 마시는 것이 좋아서 가끔씩 아침도 점심도 그른 채 허기가 질 때 싸구려 술을 위장에 들이붓는다.

세포 하나하나까지 퍼지는 알코올의 향과 타들어가는 것 같은 내장의 뒤틀림의 느낌을 좋아하는 그 사람.

담론이니 이론 같은 틀에서 벗어나 쓸데없는 용기는 난폭한 루머의 파편을 흩뿌리기도 하고 악마의 리얼리즘을 가래와 함께 뱉어낸다고 그 사람은 흐린 눈으로 말했다.

먼지가 가득한 황폐한 곳에서 그 사람은 치열하다. 기억의 언덕을 지나 헐떡거리는 숨을 참으며 그 사람은 절망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 사람은 손톱 끝까지 술이 퍼지는 굉장한 느낌을 좋아한다. 이대로 술이 깨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 사람은 말했었다.

나는 절망적인 나를 위해

나의 절망을 알게 해 준

나보다 더 절망의 당신을 위해

치열하게 나를 황폐하게 만든다.

언젠가 그 사람이 술이 되어 잠들어 있는 테이블 위에 써 놓은 글귀였다. 술은 추억을 반추하고 기억은 반목해서 좋다던 그 사람.

주먹만 한 위장이 술로 채워져 큰 세계가 된다. 온몸이 타들어갈 듯한 이 죽음의 기분 좋음이 좋아서 술잔에 슬픔과 좌절을 담아 그 사람은 빈속에 탈탈 털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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