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면에도 슬픈 라면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어쩌면 라면은 너무 맛있어서 슬픈 음식일지 모릅니다.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라면은 슬픈 음식입니다. 상우와 은수의 첫날밤의 팡파르는 라면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소주와 몹시 어울리는 라면은 금세 식어버리지만, 또 금방 끓어오릅니다.
상우와 은수는 그 뜨거운 사랑을 합니다. 화분의 꽃이 더디게 피듯 상우의 시간은 차근차근 흘러가지만, 은수의 시간은 라면처럼 빠르게 끓어오릅니다.
후루룩 입으로 빨려 올라오는 라면은 어느 순간 바닥을 보이는 냄비의 허무를 나타냅니다. “라면이나 끓여” 은수의 말에 이제 상우는 고작 라면이나 끓이는 놈이 되어버렸습니다.
누군가와 마주하고 먹으면 더없이 행복한 라면이지만 혼자 먹으면 더 맛있기에 라면은 슬픈 음식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끓이는 라면은 슬픕니다.
결국 상우는 은수에게 “내가 라면으로 보이냐고!” 소리를 지릅니다. 라면은 그렇게 슬픕니다.
라면이 끓어오르면 비로소 외로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스프를 넣고 팔팔 끓일수록 자극은 극에 달합니다. 라면은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젓가락으로 자꾸 휘젓게 됩니다.
몸부림을 바라는 라면은 외로워서 슬픈 음식입니다. 라면의 많아진 종류만큼 슬픔도 전부 제각각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라면을 마주하며 슬픔을 젓가락질합니다.
그대에게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압니다. 그래도 또 편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