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간이 커가는 속도만큼 지나가는 것에 미련은 없지만 또 한 계절이 죽어가는 시기가 되면 마음의 한 부분은 불안이 습도를 머금고 있다가 서서히 뿌리기 시작하는 거 같아. 확장된 봄이 깨져간다는 이 알 수 없는 기분. 이런 기분은 여름의 점령자 매미들의 초호화 울음이 절정을 향할 때 그 소리가 무화되는 되는 것 같은 애매한 기분과 비슷해.
나는 여름을 아주 좋아해. 태양이 있는 힘을 다해 이글거리는 여름 말이야.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에겐 무엇보다 뜨거운 여름이 있어. 타오르듯 태양은 떠올라 아스콘을 녹일 듯 열을 쏘아대는 여름이면 바다로 달려가지.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어깨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게 눈에 보이는 여름 말이야.
바다 이야기 하나 해 줄까. 집 앞이 바다야. 바닷가가 바로 있어. 바다는 언제나 그곳에 있고 그곳에 가면 바다가 있지. 어떤 이에게 바다는 회상으로, 어떤 이에게는 추억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생채기로 다가올지도 몰라. 어떤 것으로의 귀결이든 여름날의 바다는 뜨거운 태양이 있고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 들어가고 바다는 사람들에게 냉철한 차가움을 전해주지.
사람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바다라는 하나의 매개에 이끌려 오는지도 몰라. 제각각 바다로 와서 각양각색으로 그 시간을 즐겨. 오해와 모순으로 얼룩진 삶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바다에 와서 그런 병약한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낮에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달에게 하루를 반납하고 해가 사라지면 짠 내 나는 바람이 부는 밤바다의 정취에 취하기도 해.
폭넓은 사회 속에서 복잡한 인간관계에 들어가게 되면 오해와 변명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지만 바다에서는 해명 따위는 할 필요가 없어. 뜨거운 태양은 도시 숲에서나 인상을 쓰게 만들지만 바다의 한가운데 뜨겁게 떠 있는 태양은 삶이며 자연이야. 단편적인 사랑에 슬퍼할 이유도 없고 증후군이나 나르시시즘이나 좌익이니 우익을 따지고 들지 않아도 돼. 바다는 그런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