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집에서 나오는데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에 한 여자아이가 신나게 그네를 타고 있고 벤치에는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앉아서 그네를 타는 딸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정말 신나게 그네를 탔다. 엄마를 등지고, 엄마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인지 한껏 힘을 주어 그네를 탔다. 이만큼 높이까지 올라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옆을 지나쳐 걸었다.
여성은 나의 모습을 보더니 약간 우물쭈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여성의 모습을 캐치하고 똑바로 앞을 바라보고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지나쳤다. 여성과 아이는 외국인으로 난민이다. 몇 해 전에 내가 사는 동네에 난민 100여 명이 들어왔다. 그 당시 다른 지역에서는 반대에 부딪히고 말도 많았는데 내가 사는 동네의 사람들은 어? 그래? 그렇다면 같이 살지 뭐. 같은 반응들이었다. 모두가 이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았겠지만 반대에 대한 일들을 내가 모르는 것을 보면 큰 불만 없이 그들을 생활반경 속으로 받아들였다.
아이의 엄마는 아파트 주민에게 혹시나 피해가 가지나 않을까 싶어서 나의 눈치를 본 모양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늘 재미있게 놀고 있고, 난민 어린이들도 왕왕 같이 어울려 논다. 역시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그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같은 반응이다.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을 어른이 되면 들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어른이 되기 전에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마음껏 하게 해 주자 같은 분위기가 공원 주위에 맴돌았다. 그런 기운 만으로도 괜스레 가슴이 뿌듯해진다.
난민 아이들은 정말 인형처럼 예쁘다. 엄마들은 대체로 히잡을 두르고 있지만 여자 아이들은 맑고 예쁜 얼굴과 머리를 다 드러내고 있다. 아이는 이역만리 떨어진 나라의 한 도시의 동네에서 엄마가 지켜본다는 안도감을 한껏 지니고 열심히 그네를 탔다. 아이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서 행복감이 묻어났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햇살은 바삭바삭하고 그늘 밑에서는 시원했다. 일주일 전과 너무 다른 날이다. 9월인 것이다. 김명수 시인의 ‘키 큰 떡갈나무 물참나무 아래 지날 때’가 떠오른다.
물참나무 떡갈나무 아래 지날 때
여기 이 산언덕에 햇살도 따사롭게 내려요
가을입니다 9월이네요
도토리를 안았던 도토리깍정이를 주워보았어요
빈 깍쟁이가 포근했어요
무엇이 그 속에 담겨 있나요
나는 9월의 아이가 되고 싶었지요.
김명수 - 키 큰 떡갈나무 물참나무 아래 지날 때, 중에서
아파트 놀이터를 벗어나니 아파트 단지와 저수지 사이의 작은 텃밭에서 나이 든 어르신이 쪼그려 앉아서 밭일을 하고 있다. 잡초를 제거하고, 상추 같은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밭농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잘하면 오늘 저녁 맛있는 된장찌개에 어울리는 상추가 밥 상에 오를지도 모른다. 어르신의 가족은 대접받는 기분으로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할 것이다. 나도 오늘 저녁은 맛있게 먹자. 서울에 살고 있는 작은 이모의 이런저런 일들을 도와줬는데 택배를 보내주었다. 불고기를 보냈으니 맛있게 먹으라는 것이다. 그래 오늘 저녁은 불고기를 구워 먹자.
오전에 커피를 투고하려 다운타운을 걸으니 사람들의 발걸음이 일주일 전에 비해서 명랑해졌다. 해가 쨍쨍하여 덥기는 덥지만 이 정도는 해 볼만 해. 같은 표정들이다. 얼굴에서 명랑함이 뚝뚝 떨어진다. 서른한 가지 아이스크림을 파는 전문점 사장님의 얼굴에도, 막 가게 문을 열고 유리창을 닦는 보세 옷 가게 점원의 얼굴에도, 토요일이라 오전부터 놀기로 작정한 학생들의 얼굴에도 명랑함이 묻어났다.
9월이다. 여전히 따가운 햇살아래에 있으면 까맣게 타들어가지만 바람이 이래도 돼? 할 정도로 시원하다. 조깅을 하는 저녁은 그야말로 시원한 날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주 좋다. 평소에 비해 조깅 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어제는 찬물에 샤워를 하다가 놀라고 말았다. 오늘도 찬물에 샤워를 하려면 땀을 흘려야 한다. 열심히 조깅을 했다. 집으로 들어와서 택배로 온 불고기를 구웠다. 양념이 되어 있다. 생각해 보니 불고기를 밖에서 사 먹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주로 집에서 해 먹었지 밖에서는 사 먹지 않았다. 짬뽕 같은 음식은 오로지 밖에서만 먹었는데 불고기는 주로 집에서만 먹었다.
불고기는 가족 같은 느낌의 음식이다. 친구들끼리 술을 마실 때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러 가지만 불고기를 먹으러 가지는 않는다. 대학교 때에도 친구들과 많이 술을 마시러 다녔지만 - 짜장면, 쫄면, 돼지국밥, 치킨, 삼겹살에 술은 마셨지만 불고기를 애써 먹으러 가지는 않았다. 불고기는 커피로 따지면 카페오레 같은 느낌이다. 너무 맛있지만 잘 먹지 않게 된다. 잘 차려입는 도련님 같아서 어울리기는 하지만 매일 같이 놀 수는 없다. 그래서 가족이 몹시 기분 좋은 날이거나 집에 친척이 놀러 오면 불고기를 해 먹게 된다.
불고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에 서울의 작은 이모 댁에 놀러를 갔을 때다. 작인 이모 댁에도 딸이 두 명 있다. 나에게는 사촌동생들이다. 나의 여동생과 나이가 같다. 꼬꼬마 때 바닷가의 우리 집에 놀러 오면 헤어질 때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꼴사나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여동생과 사촌 동생은 떨어지면 큰일 나는 것처럼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다. 역시 꼬꼬마 때의 일이다. 작은 이모 댁에 우리 가족이 놀러 가면 이모부는 우리 가족을 데리고 방갈로가 있는 고급 불고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여름에 물놀이를 하고 방갈로에 앉아서 불고기를 굽는 냄새가 밤하늘을 덮을 때 불빛을 보고 날아든 큰 나방의 날갯짓이 떠오른다. 불고기는 맛있었겠지. 그러나 나방의 날갯짓만 기억이 생생하다.
작은 이모에게 받은 택배를 뜯어보고 문제라면 일주일 내내 먹어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고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나의 문제점은 족발, 김밥, 치킨, 국밥처럼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호한다는데 있다. 테이블에서 구워 먹고, 부대찌개처럼 다시 끓여 먹고, 발라 먹고 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어떻든 맛있게 고기를 구워서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