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일상 속 화창한 하늘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샛길에 쓰레기가 늘었다. 썼다가 버린 마스크, 마신 음료, 각종 종이와 비닐봉지 같은 것들이 일주일 새 부쩍 늘었다. 내가 주차장으로 가는 시간에는 거의 이동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 샛길로 사람들은 많이 다니는 모양이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차별이 있듯이 쓰레기 역시 꼭 있는 것 같다. 그 누구도 저는 아닌데요?라고 하지만 쓰레기는 치우는 사람이 없으면 늘어만 간다. 아마도 용역에 고용되는 어르신들이 폭염 때문에 회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이 더위에 까딱 잘못 청소를 하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인 것이다.


내가 일하는 건물에도 화장실이 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화장실을 너무 더럽게 사용을 하는 바람에 비밀번호를 달았다. 왜 그렇게까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밀번호를 달고 나니 거짓말처럼 화장실이 너무 깨끗해졌다. 공중 화장실이 아닌데 사람들은 공중 화장실이라고 생각하고, 공중 화장실은 그렇게 사용해도 된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비밀번호를 달기 전에 화장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못하겠다고 도망을 가버렸다. 어떤 사람은 큰 볼일을 보고 신발을 양변기에 빠트려 놓아서 손을 댈 수도 없게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양변기 엉덩이 대는 부분에 자신의 배설물을 싸놓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이도 일어났다. 여자화장실에서는 쓰레기통에 버리면 될 패드를 바닥에, 또는.


아무튼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은 그때 대체로 조선족 아주머니들이었는데 어지간하면 청소를 할 텐데 세 번이나 교체가 되었지만 결국 다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자기 것이 아니면 기를 쓰고 더럽히고 망가트리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좋게 발현하면 경쟁에서 상대방을 이기는 계기가 되고 안 좋은 쪽으로 가면 결국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때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헷갈리는 것 같다. 개인주의는 미국적 또는 유럽적 사고방식일지도 모른다.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면 내 건 내가 먹고, 너껀 네가 먹고. 감자튀김을 같은 곳에 부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내 거, 네 거 지키는 것. 이기주의는 같이 먹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먹고 싶은 대로 먹는 것을 말하겠지.


어제오늘 이곳은 대기의 가스층이 걷혀서 하늘이 아주 맑다. 습도가 없다. 그래서 쨍하고 맑은 날이다. 하지만 해가 있는 곳은 무덥다. 대신 그늘은 시원하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또 비 소식 때문인지 바람이 불어온다. 꼭 가을이 되기 전의 날 같다. 아이폰 4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여름이 다 지나갔다고 느끼면 바닷가에 있는 목욕탕을 찾았다. 동네 목욕탕은 아니었다. 소박한 목욕탕은 아니었다. 탕 안에 몸을 담그고 대형 통유리로 밖의 바다를 볼 수 있는 그런 목욕탕이다. 때를 민다는 것보다 그저 탕 안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몸이 뜨거워지면 다시 나와서 냉탕이 들어가고. 따지고 보면 온탕에 앉아서 흘리는 땀이 고스란히 탕에 스며들었다. 탕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전부 얼굴에 흘리는 땀을 그대로 탕에서 씻었다.


그때는 당연하던 것들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너무나 바뀌었다. 동네 목욕탕도 운치가 있었지만 바닷가에 있던 그 목욕탕이 좋았다. 여름에 가면 일단 로비가 시원해서 목욕을 하고 나오면 로비에 배치된 덱체어 같은 곳에 앉아 있으면 졸음이 솔솔 왔다. 바나나우유에 꽂은 빨대를 쪽쪽 빨며 졸음과 음료의 그 간극을 느끼며 조는 그 순간이 좋았다. 그때 한창 일큐팔사 1권이 대한민국에 나왔을 때였다. 나는 그 책을 들고 열심히 읽었다. 1권 속에는 하루키의 모든 소설 저변에 깔려 있는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와 리틀피플이 나타나는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로웠다. 리틀피플은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덱체어에 앉아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바나나우유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나의 바나나우유를 가져가 버렸다. 이렇게 보니 1미터 정도 되는 인간이 나의 바나나우유를 맛있게도 쪽쪽 빨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황당해서 야!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손으로 입을 만져보니 입이 없어졌다. 나는 리틀피플이야 히히히. 하며 그 작은 인간은 가버렸다. 나는 그 리틀피플을 잡으려고 일어나다가 그만 덱체어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 일큐팔사를 지금도 읽고 있다. 지금 읽으면 아마도 7번째? 뭐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목욕탕들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동네 목욕탕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더니 코로나로 인해 원흉처럼 되어버린 사우나 시설과 목욕탕은 입지가 더 좁아지더니 이제는 굴뚝 있는 목욕탕은 거의 사라졌다. 목욕탕은 지금 변신을 하고 있다. 나는 코로나가 오기 훨씬 이전부터 목욕탕에 발을 끊었다. 그 전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목욕탕을 좋아했다. 조깅을 하고 집에서 샤워를 하기보다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집으로 와서 바로 잠들기도 했고, 여자 친구와 함께 목욕탕에 가서 – 따로 각자 여탕, 남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나와서 같이 선지 해장국 한 그릇을 먹는 게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칼로 두부를 싹둑 자르듯 목욕탕의 발길을 끊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느 날 목욕을 하다가 문득 목욕탕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회귀성이 강한 나 같은 경우는 한 번 갔던 목욕탕에 계속 가다 보니 좀 멀어도 거기에 가서 탕에 들어앉아야 뭔가 기분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오가고 하는 시간이 어림잡아 한 시간은 넘어 걸렸고, 목욕탕에 머무르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때를 미는 시간은 금방 끝나는데 온탕 냉탕, 거기에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탕에 들어 등과 허벅지에 기초 마사지를 받으며 멍하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도 삼사십 분이나 되었다.


목욕을 하고 나오면 몸을 말리고 바로 옷을 주섬주섬 입지 않고 폰을 만지작 거린다던가, 양말만 신고 아기마냥 잠든 아저씨들을 한 번 보고, 티브이를 본다던가. 또 목욕탕에는 이발소도 딸려 있었는데 이발사와 홀딱 벗은 채 머리를 맡긴 아버님들의 대화를 엿듣는다던가. 목욕탕에서의 목욕은 할 때보다 목욕이 끝난 다음 전해오는 개운함과 시원함을 느끼는 게 좋아서 내내 그 기분을 만끽했다. 그렇게 목욕을 하고 나오면 두 시간 가까이 지나가 버렸다. 그런 시간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가 문득 목욕탕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는 정 없는 시어머니처럼 단 한 번도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코로나가 왔고 오늘에 이르러 목욕탕이라는 곳은 이제 나의 문화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목욕탕 주인 입장에서는 자본을 많이 들여 목욕탕을 지었는데 이제 사람들이 찾지 않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매일 와글와글해야 들어간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텐데 이젠 그런 영광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특히 도심지에서 사무실이 많은 곳에 위치한 건물의 3층이나 4층에 대출을 왕창 받아 목욕탕, 사우나 시설을 만들어 놓은 곳은 나갈 때 철거까지 해야 한다. 밀린 월세에 대출에, 이어받을 사람이 없으니 원래대로 다시 되돌려 놓아야 하는 비용까지 낭패인 것이다. 실로 개인에게는 막대한 좌절을 안겨준다.


목욕탕은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어제도 라디오에 목욕탕에 대한 사연들이 나왔다. 그 옛날 물 튀기며 논다고 할머니에게 혼났는데, 탕에 나와서 떠든다고 또 그 할머니에게 혼났다는 이야기, 혼나고 그 할머니가 요구르트 준 이야기. 탕 안에서 바가지 두 개를 가지고 수영을 했다는 이야기, 모르는 사람이라도 등을 밀어줬다는 이야기. 아주머니에게 등을 맡기며 아아 아파요,라고 하면 이 정도는 참아야지 으이그 이때 좀 봐라, 라며 있는 힘껏 때를 밀어줬던 이야기. 동네마다 목욕탕이 있었던 르네상스 시절이 있었다.


하찮은 일상이 지나간다. 형태가 있는 것이든, 형태가 없는 것이든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일그러진다. 하찮은 일상 속에 쓰레기가 주차장 가는 샛길에 늘어난다. 이 무더위가 조금 지나면 하찮은 일상 속 쓰레기들이 깨끗하게 치워질 것이다. 앞으로 먼 미래의 하찮은 일상 속에서 예전의 일상 속에는 목욕탕의 추억이 있었지 하며 회상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찮은 일상이 구름처럼 흘러간다. 단지 구름은 매일 하늘에 떠 있지만 같은 구름은 없다. 하찮은 일상이라도 늘 다르게 흘러간다.


같은 모양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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