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느 날 아들이 신발 없이 맨발로 집에 걸어 들어온 적이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아들을 추궁했다. 고개를 푹 숙인 아들의 모습은 마치 뜨거운 물에 데쳐진 시금치처럼 아무런 기운을 찾을 수 없었다. 맨발로 뜨거운 도로를 걸어와서 양말 바닥이 다 찢겨서 발바닥에 상처가 나면서도 그대로 집까지 걸어온 것이다. 엄마는 아들에게 신발에 대해서 물었다. 그랬더니 아들은 겨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들의 반에는 아들의 친구는 없다. 만약 나와 친구가 되면 그 친구는 나보다 심한 괴롭힘을 당하고 폭행까지 당한다. 그래서 어떤 아이도 무서워서 나와 친구가 될 수 없다. 아이들의 세계는 잔인하다. 절대 말랑말랑하지 않으며 요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거짓을 말할 줄 모르니 거짓말을 맑은 눈동자로 교묘하게 진실처럼 이야기한다. 아이들 여러 명이서 어른 한 두 명을 속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설령 어떤 일이 들켰다 하더라도 크게 겁먹지 않으며 고개를 숙이고 그저 딱한 표정을 짓고 네, 네, 하는 대답만 잘하면 그대로 넘어간다는 것 역시 아이들은 잘 알고 있다.
경찰을 부를 수도 없다. 학교에 진정서를 넣을 수도 없고 담임도 만날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들이 그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더라도 이대로 학교를 다니는 게 경찰을 부르고 진정서를 넣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후배는 자신이 한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아들이 벌을 받고 있는 거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당연하지만 업무도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공무원의 일이라 집중을 하지 않고 잘못하면 일반 시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 결국 후배는 아들의 일에 신경을 쓰느라 윗선에서 한 소리를 듣고 그 일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러다가 결국 대기발령을 받거나 무급휴가를 받게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서서히 자신의 생활이 어린 시절에 했던 잘못으로 인해 망가져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달려들어 경찰에 알리고 청소년 범죄예방 센터에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아들이 아버지와 말도 하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집을 나가서 다시는 아버지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후배는 어린 시절에 같은 반 아이를 괴롭히고 따돌린 사실이 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또 하나의 사실은 후배가 어른이 된 지금 후배의 아들이 심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들은 후배의 아들이 마땅히 따돌림을 당해도 싸다는 사실이 되었다. 그 사실에 약자인 당사자 또한 그 사실에 수긍을 해버린 것이다. 나는 당해도 싼 인간이야, 나는 그런 인간의 아들이기 때문이야. 같은 생각이 마음을 지배했다.
후배의 아들을 따돌리는 주동자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오래전 후배에게 심한 따돌림을 당하고 이제 그 일이 대물림되어서 후배의 아들에게 옮겨졌다. 그러나 후배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그 아이는 커서 자신의 아들에게 그런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 점은 아들 때문에 후배가 주동자의 아버지, 즉 어릴 때 자신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그 아이를 찾아갔기 때문이다. 거기서 후배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다 잊었는 걸, 어릴 때 따돌림당하는 것쯤 어른이 되면 다 잊게 돼. 아마 지금의 아이들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거겠지. 거기에 대해서 어른들이 나서서 왈가왈부해봐야 친구들끼리 사이만 더 나빠질걸.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이었다. 설령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후배는 친구에게 구걸하다시피 빌었다. 제발 이번 한 번 도와달라고, 아들이 반에서 매일 따돌림을 당하고 신발까지 잊어버리고 집으로 온다고. 그러나 친구는 자신은 아이들의 세계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고, 정 그러면 학교에 가서 담임을 찾는 게 훨씬 나은 편이라고 했다.
정말 무서운 건 후배의 아들이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도 아버지에게 자신이 당하는 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 년, 일 년, 정도만 견디면 된다,라고 하면서 매일 곤죽이 되어서 집에 들어오면서 처절하게 따돌림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데. 후배의 아내는 도대체 아들이 왜 그러는지, 아들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남편은 또 왜 그러는지 답답하기만 하고 이상하기만 하다. 아내가 학교를 찾아가려고 하니 후배가 적극적으로 말했다.
당신은 아들의 일인데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요?
아들을 위해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이게 뭐가 아들을 위한다는 거예요. 아들은 학교에만 가면 만신창이가 되어서 집으로 오는데, 아버지가 되어서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아내와 후배는 결국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얻은 예쁜 아들인데 한 번 틀어진 가족관계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따돌림이란 무엇인가. 따돌림이라는 건 인간이 도래하는 곳에는 항시 인간과 함께 존재했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 중에서 제일 재미있고 가장 지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옆에 두되 없는 사람 취급을 하거나, 대놓고 무시하거나, 깔보는 행위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벌의 침처럼 한 번 찔렸을 때는 괜찮은데 침이 점점 살갗을 파고들어 몸속을 후비고 다니면서 자극을 주고 자극은 고통이 된다. 그리고 점점 상처를 남기고 상처는 흉터가 된다.
후배의 아들은 반 아이들에게 심각한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죄를 묻기 위해서인지 성직처럼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봐야 고작 5학년일 뿐이다. 마치 아버지에게 ‘당신이 저지른 과오가 되돌아온 것이니까요’라고 하는 것만 같다. 아들은 아이들에게 배척당하는 소수에 속하지만 아버지를 배척함으로 다수의 배척하는 아이들 틈에 끼었다고 믿어버렸다. 아들의 그 선택은 겁이 날 만큼 확고했다. 우리는 선택을 마주하면 늘 어렵고 무섭다. 후배의 아들은 이제 고작 5학년의 몸으로 연료를 하루에 다 소진하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다 태우고 남은 숯을 가지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저 버티고 있는 것이리라. 그을음이 되어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냄새를 풍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