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소비가 줄어들어 작년 한 해 1인당 쌀 소비가 57킬로그램이라는 기사가 났다. 누군가의 댓글에서 ‘물론 힘을 내는데 탄수화물이 꼭 필요하지만 농경시대였던 과거와 달리 현재 시대에선 그렇게 힘을 써야 할 일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임. 중략. 결론은 옛 말에 하루 세끼 먹어야 건강하다는 말은 농경시대에서나 통용되는 말임’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제 일반 대중의 의식이나 눈높이도 전문가만큼 수준이 높아졌다. 지난번에도 쌀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를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403


농사만 짓던 농경시대에서 곡기로만 배를 채우던 생활을 했는데, 곡기에서 맛이라는 것이 빠져 있으니까 장을 담갔다. 그래서 장에 찍어 먹고 곡기에 올려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국이 등장했고. 그런 구조가 거의 1970년, 80년대까지 내려온다. 사람들이 대체로 몸을 많이 움직였다. 노동의 보상을 밥으로 했고, 평일의 위로를 주말의 회식으로 받았다. 석탄을 캐고 지금의 초고도화 기업들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쌀을 많이 소비할 수밖에 없다.


회식의 기본은 다 같이 둘러앉아서 같이 먹는다. 그리고 회사들은 대부분 ‘가족 같은 회사’라는 분위기를 앞세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도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서로 보기 싫고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 회사에서까지 가족 같은 분위기를 내세워 끊임없이 부려 먹었다. 그 관습이 내려오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목숨을 끊거나 잃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뉴스에서도 한 기업에서 발가벗기고 따돌리고 괴롭혀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밝혀졌다. 가담했던 사람들이 책임을 느끼고 회사에서 물러났다고 하지만 그게 해결책일까. 아직까지 가족처럼 연결되기를 바라는 회사가 얼마나 많을까.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구조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둘러앉아서 식사를 하는 습관이 우리에게 오랜 전통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70년대부터는 전통 한정식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가격은 비싸지만 ‘전통'이 들어가기에 행사 때에는 꼭 가서 한 번 먹어야 하는 음식 또는 음식점처럼 여겨졌다. 똑같은 쌀밥 한 그릇인데 전통이라는 말을 내세워 음식을 파는 식당은 그 한 그릇의 가격 또한 비싸다. 그동안 우리는 전통이라는 말에 매몰되어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우리는 전통 한정식 집으로 어른들을 당연하게도 모시고 갔다. 전통 한정식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음식을 파는 식당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음식이 많이 나온다. 입이 벌어지고 눈이 호강을 한다. 어떤 음식부터 젓가락을 대야 할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다. 물론 일류 요리사가 요리를 내놓은 레스토랑만큼 비싸다.


그렇다면 정말 전통 한정식이 이랬을까. 도대체 전통이라는 건 무엇이며 전통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을 전통이라고 해야 할까. 옛 그림 중에 직자 미상의 ‘선묘조제재경수연도’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3, 4년 정도 지난 후의 그림이라고 한다. 그림의 내용은 전쟁을 치르고 난 후 그들의 부모를 연회에 초청하여 왕이 대접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잘 뜯어보면 음식을 하는 장면도 보이고, 음식을 먹는 장면 또 음식을 나르는, 서빙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음식을 만드는 이들은 궁에서 음식을 만드는 대령숙수들이다. 조선시대 궁중의 남자 조리사를 대령숙수라 하는데 그들이 궁에서 대부분 요리를 했다. 당시 유교문화였던 궁에서는 일 년에 제사가 170회 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 많은 제사를 지내야 할 식재료를 이고 지고 나르고 다듬어야 하는데 이는 여자의 힘으로 불가능했다. 식재료가 어마어마한 것이다. 양도 양이지만 170회마다 그래야 하니 힘이 좋은 대령숙수들이 조리와 요리를 했다. 요즘에도 고기를 나르고 납품하고 배달하는 건 대체로 남자들이 한다. 그러다 보니 수라간에 들어가는 남녀 비율이 16대 1 정도로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대장금에서는 여자들이 궁의 요리를 전담했지만 드라마를 위해서 허구의 요소가 짙었지 싶다.


또 식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겸상이 없다. 모두가 독상이다. 각각 밥상을 따로 받는다. 그림을  보면 그렇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밥상 위에 밥그릇이 세 개나 네 그릇 정도 놓여 있다. 궁에서 내오는 음식이라고 해서 사치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밥을 먹으면 뜨거운 음식은 뜨거울 때 먹을 수 있고 시원한 음식은 시원할 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그릇이 비면 서빙을 보는 사람들이 밥을 먹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비어있는 그릇을 가져가고 다시 음식을 내어 준다. 프랑스의 상차림이 보통 그러하고, 유명한 셰프가 하는 식당에서도 요리는 하나씩 천천히 나온다. 프랑스의 저녁은 대체로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다. 음식을 느끼고 음미하며 길게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이 긴 시간 매일 이야기할 거리가 없으니까 책을 많이 읽고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여봐요, 그건 너무 옛날이잖소.라고 할지도 모른다. 전통이란 그런 것이지만, 그렇다면 가장 최근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을 보자.

대한제국의 고종의 상차림이나 연회 그림을 보면 서양 음식과 한국 음식이 상 위에 같이 놓여 있는 경우도 있고 서양의 음식으로만 채워진 경우도 있다. 아관파천 후 고종은 러시아에서 맛있게 마셨던 와인을 식탁에 자주 올렸다고 한다. 다 같이 모여 있되 상은 1인 독상 체재다. 똑같은 음식이 개인에게 각자 주어졌다. 전통 한정식 식당처럼 상 위에 여러 음식을 올려놓고 한 그릇에 여러 젓가락이 들어가는 경우는 없었다.


코로나 이전 티브이 예능 방송을 보면 전국으로 다니면서 한정식이라며 어마어마한 상차림을 많이 보여줬다. 그건 어떻게 봐도 이상하지만 방송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했다.

이 그림에 가까운 사진은 많이 봤을 텐데, 당시 서민의 밥상이라며 이렇게 먹었다고 알리고 있다. 입이 벌어질 정도의 양이 담긴 밥그릇이지만 아마도 사진 촬영을 위해 큰 그릇을 놓고 연출했지 않았나 싶다. 이는 무엇을 알리려는 것인가 하면 아마도 쌀 문화권의 식탁에서 주인공은 반찬보다는 밥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최초의 얘기로 돌아가서 예전에는 쌀을 많이 먹어도 몸을 많이 움직여서 일을 했기에 살이 찌지 않았다. 쌀 소비가 활발했고 7, 80년대는 또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다. 그런데 현재는 쌀 소비가 엄청 줄었지만 쌀은 또 비싸고 논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돈을 벌지 못해 울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링크를 걸어 놓은 아티카 코마치에 대한 이야기에서 도정을 바로 한 쌀을 먹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도정을 바로 한 후의 쌀을 먹을 수 있는 구조에 놓여있지 않다.


쓸데없는 말이지만 전통이라는 말이 음식에만 붙지 않는다. 전통민속춤이라고 알고 있는 승무는 스님들의 전통 춤이 아니다. 스님이나 비구니에게는 춤이 없다고 한다. 이 춤이 생긴 지가 70년대다. 문화재로 인정을 받아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나 전통적인 춤은 아니다. 그래서 승무를 소개할 때 전통민속춤이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김덕수 사물놀이도 전통놀이로 알고 있지만 이는 김덕수가 만든 사물놀이다. 김덕수가 만든 사물놀이는 국가에서 인정을 받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도 1980년에 김덕수 외 몇 명에 의해서 만들어진 놀이다.


더 쓸데없는 말이지만 예전에 미국의 비건 대표의 닭 한 마리 요리가 한창 뉴스를 장식했다. 아내가 닭 한 마리 요리를 좋아해서 한국에 왔을 때 레시피를 전수받기도 했다면서 한국을 사랑하는 비건 대표, 라는 식으로 비쳤다. 요컨대 파스타를 너무 좋아하는 한국인이 있다고 치자. 파스타를 얼마나 좋아하냐면 매일 파스타를 해 먹었다. 밖에서도 파스타를 사 먹고 집에서마저 파스타를 해 먹었다. 파스타는 이탈리아 현지에서 요리하는 방식에 따라 맛이 천 가지가 넘는다. 면의 모양이나 굵기, 삶는 정도,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 정도로 파스타를 한식보다 좋아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한국인이 이탈리아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파스타를 좋아하는 것이지, 파스타를 좋아해서 먹는다 해서 그 나라까지 꼭 좋아한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폰이 너무 좋아 아이폰 3부터 지금까지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미국을 사랑하냐면 그건 별개의 문제다. 심지어 미국인 남편과 살아가고 있지만 미국을 사랑하느냐라고 묻는다면 네버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에게 쌀이라는 건 생활에 밀접한 것 중에 하나다. 이런 밀접한 것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역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누가 잘못을 한 것인지, 어디에서 잘못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 안다고 해서 뭔가가 바뀔 수 있을까. 이제 곧 명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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