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시간이라는 주제로 예전에 작업을 한 번 해본 사진 중에 하나다. 이 사진은 디지털이지만 만약 초현실 사진의 대가 ‘제리 율스만’이라면 필름으로 다중노출을 하여 촬영하여 그 필름에 또 다른 필름을 올리고,, 암튼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초현실 사진을 만들었겠지만 나는 그저 포토샵으로 휙휙 작업을 해서 액자에 맞게 출력을 했다.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을 보면 시계가 녹아내리고 있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늘 우리의 의문점이며 과제이며 당면한 현실이다. 시간의 흐름은 개개인마다 다르고 그 시간이 되었을 때 바라보는 방향 또한 다 다르다. 이 세상에서 순수한 것이 제일 무서운데, 요컨대 자연재해도 순수한 것에 해당이 되고, 아이도 순수해서 깔때기 없이 말을 하니까 무섭다. 하지만 이런 순수한 것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시간이다. 시간이란 과학적으로의 접근은 거의 불가능하니 대체로 철학 또는 예술의 힘을 빌려 시간에 다가서는 노력을 해왔고, 하고 있고, 계속할 것이다.


마블 시리즈 중에 가장 재미가 떨어졌던 이터널스에서도 좋았던 점 하나를 꼽자면 초반에 핑크 플로이드의 ‘타임’이 나온다. 그게 제일 마음에 든다. 노래의 초반에 시계 초침 소리, 시계 종소리가 나오며 둑닥둑닥둑닥 하더니 웅장한 베이스가 디링 하며 시작한다. 이 부분이 가장 소름 돋도록 멋진데 이터널스에서 과감하게 사용했다. https://youtu.be/r8zsNX-vPD0


핑크 플로이드의 ‘타임’이 음악적으로 왜 좋은지 전문가처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은 잡아당기는 흡입력이 굉장하다. 핑크 플로이드를 처음 들었을 때가 학창 시절이었는데 그때는 열심히 헤비 한 음악을 듣고 있을 때였고 누군가를 향해 공격을 하고 싶었던 와중에 들어서 그런지 핑크 플로이드의 연주와 노래는 마치 나에게 하나의 길잡이 같은 존재처럼 여겨졌다. 연주를 듣고 가슴이 벅차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핑크 플로이드는 그 어려운 걸 해내더라고. 요즘은 유튜브로 라이브를 볼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우리나라 말로 도대체 몇 년을 해 먹는 거야? 하지만 더 해 먹었으면 좋겠는데. 전 세계에서 활동을 가장 길게 하는 그룹 중에 단연 꼭대기에 있지 않을까.


고등학교 암실 구석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타임을 들으며 벽에 머리를 대고 노래와, 나와, 학창 시절과 시간에 대해서 한 10초 정도는 고민을 한 것 같다. 시간을 돌리는 영화도 수없이 많이 나왔다. 그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영화는 우디 알렌의 ‘미드나잇 인 파리’다. 작가였던 주인공 길은 자정이 되면 쟁쟁하던 극작가들이 아무렇지 않게 길거리를 다니고 와인을 마시는 곳으로 시간여행을 가게 된다.

파리의 명품을 바라는 이레즈와 빗속의 파리를 걷고 싶어 하는 길은 서로 다르다. 일본의 5분 드라마 ‘오늘의 네코무라 씨’을 보면, 한국이 좋아서 한국에서 산후조리를 했던 코유키가 이런 대사를 한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결혼하는 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좋아해서 결혼한 사람들이 서로를 계속 좋아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지” 여하튼 길과 이레즈는 서로 다른 점 때문에 끌렸지만 그 이유로 헤어지게 된다.


영화 속에는 스콧 피츠 제럴드와 헤밍웨이, 저 위에서 잠시 언급한 살바도르 달리도 막 나온다. 거트루트에, 그녀의 애인이자 뮤즈인 엘리스도 너무 비중 없이(웃음) 아무렇지 않게 휙 나온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시대가 다른 점이 있지만 우디 알렌 감독이 전부 한 곳에 집결시킨다. 왜? 영화잖아? 어려울 것 없잖아? 주인공 길이 과거로 가는 마당에. 이런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부록이랄까. 미술관 가이드 역으로 칼라 브루니가 나오는데 다 알고 있듯 가수, 배우이자 그 남자의 여인이다.

길과 이레즈가 폴 커플과 걸었던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 궁전은 아주 아름답다. 원래 베르사유는 루이 13세가 사냥용 별장으로 지은 건물이지만, 14세로 넘어오면서 건물은 증축을 감행하고 명령에 의해 대정원을 착공하게 된다. 죽기 살기로 거대 정원을 가꿨다. 베르사유 궁에는 많은 방이 있다. 그중에 유명한 방이 ‘거울의 방’이다. 영화 후반부에 길을 미행하던 장인의 끄나풀이 시간이 후퇴한 베르사유 궁으로 가게 되는데, 하필 거울의 방에 떨어져 막 헤매게 된다.


거울의 방이 가장  드러나는 영상은 2011년쯤인가 샤를리즈 테론의 자도르 디올의 광고였다. 티브이판 짧은 버전이 있고 풀버전이 있는데 풀버전을 보면 거울의 방을 통과하면서 그간 디올 사랑했던 세기의 배우들을 그래픽으로 살려낸다. 대역이 아니라 그래픽으로 살려냈다. 그레이스 켈리와 샤를리즈 테론이 살짝 입맞춤을 하고 메릴린 먼로가 자도르 디올의 향수를 들고 기쁨에 젖은 모습도 보인다.


광고 속에는 허리를 강조하고 코르셋처럼 허리끈을 묶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이 크리스천 디올의 특징이었다. 사치의 대명사로 오로지 귀족들만이 소화해 낼 수 있는 주름과 치마의 꽃으로 무장을 했다. 샤넬은 이런 귀족들의 스타일이 싫어서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로 몸을 조이지 않는 옷을 디자인했다. 샤넬은 어릴 때 수녀원에서 자랐기에 수녀들을 엄마, 언니로 생각했다. 디자이너가 되었어도 수녀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무의식 중에 디자인이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샤넬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자. 지금 하는 이야기보다 더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지만. 암튼 귀족들의 사치라고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았지만 크리스천 디올은 꾸준하게 인기를 얻어 간다. 최근(이라 해도 근 10년)에는 모나코에서 왕가의 공식행사 때 샤를린 왕비가 디올의 의상을 입고 있다. 재미있는 건 수영 선수 출신의 샤를린 왕비의 얼굴이 샤를리즈 테론의 얼굴과 닮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광고업계가 준비하는 과정? 노력을 보면 소름 돋지? 샤를리즈와 닮은 샤를린 왕비는 그레이스 켈리와 자주 비교되었다.

https://youtu.be/_SrwvtAhxbE 샤를리즈 테론의 거울의 방에서 촬영한 디올 광고 영상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래서 길이 과거로 가서 콜 포터를 만난다. 맙소사. 콜 포터를 보고 비틀어진 코가 한번 더 비틀어지고(주인공 오웬 윌슨의 코, 다 알죠?)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에게 이끌려 다른 술집으로 간다. 피츠 제럴드의 역작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면 제일 첫 장에 ‘다시 젤다에게’로 포문을 연다. 1920년대에 피츠제럴드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글쟁이였다. 출판사들은 그의 글을 내고 싶어 안달했고, 피츠제럴드는 그런 미국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영화 속에는 우리의 로키 형, 톰 히들스턴이 피츠제럴드다.


피츠제럴드의 실제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무척 잘생겼다. 톰 히들스턴도 그러하고. 육군 소위로 장교복을 입고 있는 피츠제럴드의 외모는 누구나 반할 만큼 멋있었다. 하지만 1차 대전이 끝나고 군복을 벗어버리자 피츠제럴드는 한낱 볼품없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광고 회사를 다니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을 성적 하락으로 중퇴를 하고 광고 문구를 만들면서 꾸준하게 소설을 썼다. 하지만 그의 글은 출판사에서 언제나 퇴짜를 맞았다. 그런 생활을 하던 그의 눈앞에 일생에 한번 사랑에 빠질만한 여자가 나타났으니, 그 여자가 바로 조지아 주와 앨라배마 주에서 가장 미인인 ‘젤다 세이’였다.

젤다는 발랄했고 기가 세고 승부욕이 강했다. 무엇보다 예뻤다. 젤다도 피츠제럴드를 사랑했지만 가난한 남자와 사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그녀는 명문가 집안의 딸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있는 여자였다. 그런 젤다는 가난한 삶을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는 젤다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피츠제럴드가 그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글밖에 없었다. 젤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런 그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 피츠제럴드는 세상이 놀랄만한 글을 써야 했다. 아아 사랑에 목숨을 건 스콧, 그 마음을 조금 이해한다. 오직 글만이 자신을 내보일 수 있었던 스콧 피츠제럴드. 그는 오로지 젤다를 얻기 위해 글을 썼다. 그녀는 피츠제럴드를 사랑했지만 별 볼일 없는 피츠제럴드와 약혼을 파기한다. 그만큼 젤다는 냉정하고 현실에 가까운 여자였다. 피츠제럴드는 마음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고 그녀가 자신의 곁을 떠나는 두려움에 무서웠을 것이다. 그래서 죽어라 글을 썼다.


고통 끝에 펴낸 자신의 첫 소설 ‘디스 사이드 오브 파라다이스’ 덕분에 젤다가 출판 일주일 후에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다. 젤다 역시 글쟁이였다. 당시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제목이 그냥 개츠비였는데 ‘위대한’을 삽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젤다와 출판사의 권유로 ‘위대한’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은 디카프리오가 연기했던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봐도 나온다. 그렇게 펴낸 ‘위대한 개츠비’는 실패에 가까웠다. 팔리지 않았다. 피츠제럴드는 경제적 궁핍 속에 시달려야 했지만 2차 대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군인들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붐이 일었다. 시기가 맞았던 것이다. 바로 군인들 자신의 모습이 개츠비에 투사되었기 때문이었다. 1925년에 2만 부에 거친 책이 군인들 덕분에 15만 부가 넘어 팔리게 되었다. 비평가들은 개츠비에 대해서 호평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50년대의 미국에 있는 고교에서는 필독 도서로 자리를 잡았고 이후 전 세계가 사랑하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의 점화가 바로 ‘위대한 개츠비’가 되었다. 젤다를 완전히 자신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 피츠제럴드는 젤다가 원하는 파티를 매일 열었고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젤다가 원하면 그는 다 들어주었다. 매일 파티를 즐기고 술을 마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젤다가 떠나갈 것이기 때문에 두려웠을 것이다. 젤다와 남편인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로 성공을 거두자 명실상부한 뉴욕의 셀러브리티 커플로 알려진다. 톡톡 튀고 독립심이 강하고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고 무엇보다 예쁘고 아름다운 그녀를 당시의 미디어와 사람들은 추앙했고 사랑했다.


젤다는 그런 삶을 더욱 사랑했고 옆에는 당대 최고의 소설가가 늘 지켜봐 주었다. 도취될 수밖에 없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여자가 늘 웃고 있었다. 부족함이 없었다.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가 빠져 들었고 연일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여 술과 문학과 재즈를 즐겼다. 영원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이 모든 생활이. 파티가 지속되고 개츠비 이후에 개츠비만 한 글이 안 나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피츠제럴드의 절친 헤밍웨이가 파리의 한 파티장에서 피츠제럴드를 찾아간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잔을 한 손에 쥐고 상류층의 복장을 하고 포마드로 단정하게 머리를 넘긴 피츠제럴드를 찾은 헤밍웨이는 “이봐, 자네. 요즘 괜찮은가?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러자 피츠제럴드가 “이보게 친구, 잘 보게. 이것이 삶이라네. 더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자 한잔하고 가게나”라고 상상해서 써봤다. 암튼 이런 장면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잘 나온다. 절친이었던 헤밍웨이가 왔음에도 예전 같지 않았다. 변해있었던 것이다. 헤밍웨이는 후에 그가 이렇게 망가진 것은 그의 옆에 있는 젤다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그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피츠제럴드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주고 싶었다. 피츠제럴드와 젤다는 돈을 물 쓰듯 썼다. 술을 마시면 언제나 만취였고 호텔의 분수에 뛰어들었고 신문의 일 면을 장식했다. 연일 열리는 파티와 파티 사이에 써 내려간 단편은 거액으로 출판사에 팔려 나갔다. 피츠제럴드의 이 모든 행동과 삶은 오로지 젤다를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젤다와 개츠비 속의 데이지를 욕하지만 젤다는 피츠제럴드의 한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의 눈과 촉은 젤다를 향해 있었고 그녀가 움직이면 그의 촉도 같이 따라 움직였다. 그녀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세 시간이 걸리는 곳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녀가 바라는 옷이 있다면 어떻게든 구해서 선물하지 않았을까. 투정을 부리면 받아줬을 것이고 눈물을 흘리면 안아줬을 것이고 매일 밤마다 그녀의 귀에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젤다의 사진을 보면 헤어 스타일이 독특했고 의상도 화려했다. 당시에 가장 핫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부족함 없이 돈을 쓸 수 있었다. 누구나 원하고 바라는 삶일지도 모른다. 부족한 것 없는 집안에서 철없이 자란 여성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하지만 죽을 때까지 철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대로 꽤 멋지고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에서 코유키의 대사처럼 좋아하는 사람끼리 결혼해서 계속 좋아하기는 어렵다. 젤다와 피츠제럴드의 방탕하고 호화로운 생활은 십 년 만에 비극을 맞이한다.


미국은 29년에 대공황을 맞이하게 된다. 피츠제럴드의 소설도 파국을 맞이하며 끝을 맺게 된다. 대신 미국의 문학적인 영웅을 새롭게 맞이하는데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문학의 사조가 바뀌었고 피츠제럴드의 글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헤밍웨이가 글을 통해서 구원을 받지 못했다며 총구멍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한 것에 비해 피츠제럴드는 어두운 곳에서 죽을 때까지 글을 썼다. 설령 말년에 쓴 글이 왕년의 글을 넘어서지 못하더라도 글쟁이의 본분을 잊지 않은 쪽은 피츠제럴드가 아닐까.


젤다는 몰락한 이후 자신의 퇴락해가는 모습에서 우울증에 시달린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더 이상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이 있었고 머리카락은 힘이 없어서 더 이상 이전처럼 예쁘게 말리지 않았다. 늙어가고 힘 빠진 모습에서 우울해지는 여자가 어디 젤다뿐이겠는가. 할머니에게 “곱게 나이를 드셨네요”라든가 “예쁘게 늙었네요”같은 말을 집어치우자. 나이라든가 늙었다는 말을 빼고 하자. 할머니라도 예쁘고 싶고 곱고 싶으니까.


젤다는 자신의 문학 실력을 살려 책도 내려고 했지만 다른 곳만 쳐다보는 출판사들 뿐이었다.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과정을 피츠제럴드가 소설에 그대로 사용을 해버린다. 그 사실로 인해 젤다의 병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깊은 배신을 받았다. 젤다의 일기와 편지들은 피츠제럴드의 소설 속에 그대로 남아있을 뿐 젤다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우울은 너무나 깊고 컸다. 자신을 추앙했던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가면 수군거렸고 손가락질을 했다.


저기 젤다가 지나가, 저 여자 매일 밤새도록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진탕 마시고 담배도 지폐에 불을 붙여 피웠대, 그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 좀 도와주지 말이야, 이젠 볼품없는 얼굴이 되었군, 남편의 글도 이젠 한물갔대나 봐, 남편은 젤다의 퇴락해가는 이야기를 소설에 섰대, 불쌍하구만.


만약이지만 젤다가 피츠제럴드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데이지처럼 톰 뷰캐넌 같은 남편을 만나서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살더라도 수면 위에서 평탄하게 살아갔을까. 1940년에 피츠제럴드가 죽고 정신병원을 오가던 젤다는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정신병원의 화재로 인해 3월의 봄날에 그녀는 남편 곁으로 가버린다. 그런 젤다와 피츠제럴드의 최고 정점의 모습이 영화 속에 나온다.

어디까지 했지? 아 그래, 그래서 주인공 길이 젤다와 피츠제럴드에 이끌려 다른 술집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저기 보이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는, 깃털을 달고 춤을 추는 댄서가 보이는데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춤꾼, 퍼포먼스의 대가 ‘조세핀 베이커’다. 조세핀은 늘 저런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조세핀의 얼굴을 잘 뜯어보면 참 예쁜 얼굴을 가졌다. 웃는 모습도 아기처럼 아주 해맑다. 하지만 그녀는 춤을 추며 퍼포먼스를 위해 얼굴을 늘 변형시키거나 일그러트렸다. 마치 우리나라 춤의 인간문화재 공옥진 여사처럼 말이다.

우디 알렌이 왜 조세핀 베이커를 영화에 넣었을까. 생각을 해보면 조세핀 베이커 역시 빌리 홀리데이만큼 파란만장하고 아픈 삶을 살았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식모살이를 하다 13세에 길거리 댄서로 데뷔를 하면서 2년 후 세인트루이스 합창단 보드빌 쇼의 단원으로 본격적인 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조세핀을 일컫는 호칭은 ‘블랙펄’이다. 헤밍웨이의 극찬을 받으며 조세핀은 애칭대로 블랙펄의 위용을 떨친다. 프랑스로 건너가서 펼진 조세핀의 공연은 예술의 본거지인, 1920년 대의 프랑스에 문화적 충격을 알렸다. 미국 태생인 조세핀이 어떻게 프랑스인들의 추앙을 받게 되었을까.


조세핀도 샤넬처럼 전쟁과 첩보원 역할을 해야 했다. 조세핀이 죽었을 때 프랑스에서 미국인이었던 조세핀에 대해서 국장처럼 장례식이 치러졌다. 모든 프랑스인들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군악대가 동원되었고 그녀는 프랑스인들에게 영원한 블랙펄로 남았다. 조세핀의 일대기를 알아서 인지 영화 속에 잠깐 등장하는 조세핀이지만 감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 멍하게 앉아있는 길은 작가이니 아마도 조세핀을 실제로 보는 것만으로 맙소사, 세상에, 조세핀 베이커잖아? 같은 표정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길의 표정이 그렇다.


길이 입을 벌리고 조세핀의 춤을 본 다음 날, 헤밍웨이와 함께 거트루트 스테인의 집으로 간다. 스테인의 집에서 문이 열리고 헤밍웨이가 안녕! 엘리스!라고 한다. 엘리스는 가벼운 인사로 대답하고 장면이 바뀐다. 아주 잠깐 등장하는 엘리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는 잠시 스쳐가 버린 엘리스는 미국 작가 거트루트 스테인(거츠)의 비서이며 거츠의 동성 애인이기도 하다. 거츠는 평론가로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검토했다. 그중에는 주인공 길의 작품도 검토를 한다. 작품을 검토하면서 자신의 애인이자 작가인 엘리스와 많은 것을 공유했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거츠의 손을 거쳤다. 거츠는 헤밍웨이가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또 헤밍웨이는 당시의 문화를 교류했던 피카소, 모네, 조이스와 에즈라 등 작가들과 영화감독을 존경했다. 그중에서 거츠가 단연 독보적이었다. 거츠의 옆에는 조력자 엘리스가 있었다. 두 사람은 아주 사랑했다.

거츠와 엘리스가 운영했던 토클라스의 문학 살롱에는 많은 작가들이 모여들어 문학적 교류를 나누었다. 그 살롱이 영화 속에 보이는 저 집이다. 여기 살롱을 찾은 작가들로 티에스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이 이 커밍스, 제임스 조이스, 폴 발레리, 마르셀 프루스트, 장 콕도 등이 있다. 이들은 세계문학의 흐름에 대해서 고민하고 고충을 이곳에서 주도했다.


왜 미국 작가들이 파리로 몰려들었을까.라고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지금까지도 너무 길게 적어 버렸다. 도대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디로 막 튀어 가버리는지도 모르게 미친 것처럼 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시계의 초침은 느리게 지나가지만 절대 멈추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멈추거나 쉬는 시간을 가지지만 시간은 그 시간마저 쉬지 않고 이동을 한다. 인간의 심장 역시 쉬지 않고 살아있는 동안 뛴다. 아무튼 쓸데없는 이야기를 너무 했다. 시간 여행을 한 미드나잇 인 파리는 너무 재미있고, 쟈도르 디올 속에 등장한 그레이스 캘리는 너무 예쁘고, 우리는 시간의 문학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완성해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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