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이맘때 할 수 있는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바닷가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코로나 방역도 예전만큼 심하지 않고 해변도 오늘 이전보다 오늘 이후 더 활기를 찾게 되지 않을까. 여기는 아직 낮동안은 더워서 반팔이 어울렸다. 해변이 어둠이 이불처럼 깔려도 바람이 없어서 앉아서 맥주를 마시기 좋은 날이다.
앉아서 책을 읽으며 맥주를 홀짝이다 보면 어느새 술이 오른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맥주를 마시면 이만큼이나 마셔야 술이 취하지만 책을 읽으며 맥주를 홀짝이면 이상하게도 요만큼만 마셔도 술이 오른다.
고개를 들어 바닷가를 보면 바닷소리와 사람들의 소리, 마시는 맥주와 안주로 먹는 튀김을 씹는 소리가 어울리다 보면 저 달달한 불란서 식 맥주를 마시는데도 금방 술이 오른다. 술이 오르면 책을 잠시 덮고 밤바다의 정취에 취하거나 풍경을 멍하게 보는 것도 좋다. 바다는 아주 고요한데 파도소리는 의외로 크게 들린다.
등을 보이며 바다를 보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을 본다. 다른 이들보다 오랫동안 앉아서 바다를 보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그리움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움이 많은 사람은
계절의 바다를
당신보다
오래 붙잡아 두려 한다.
이 바닷가에서 신기한 건 여기 바다는 속초의 대포항에서 나는 냄새는 나지 않는다. 강한 바다의 짠 내가 전혀 없다. 대포항에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작은 횟집이 몰려 있는 곳에도, 오징어순대를 파는 곳에도 바다의 짠 내가 있지만 여기는 없다. 보통 바다는 가물면 짠 내가 더 심해지는데 여기 바다는 그런 바다의 냄새가 없다.
몹시 가물거나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도, 유월에 달과 지구가 가까워져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게 나는 날에도 짠 내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여있는 호수에서 나는 물 비린내가 난다. 민물에서 나는 물 비린내가 여기 바다에는 도사리고 있다.
저기 수평선에 오징어 배가 일렬로 죽 떠 있으면 어두워도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보이는데 오늘은 하늘과 바다의 색이 같다. 도화지에 검은 물감으로 채색을 한 것 같다. 저기 옆에서는 오랜만에 버스킹이 한창이다. 일요일이라 일찍 바닷가에 산책을 하러 나온 동네 사람들과 이 바닷가로 온 관광객이 섞여서 노래를 듣는다.
바다를 찾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조급함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조급해하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 영차영차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이 지구 밑에서 지구가 잘 굴러가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제는 라디오에서 토미 페이지의 노래를 들었다. 소년 같은 목소리로 ‘알 비 어 에브리띵’을 오랜만에 들었다. 토미 페이지는 가족 중 누군가가 한국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한국을 좋아한다며 오래전 배철수의 음캠에도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라이브가 엉망이었지만 끝까지 부르려고 했다. 배철수도 그런 태도를 존중했다. 그랬던 토미 페이지는 어디로 갔을까. 프린스는 프레디 머큐리를 만나러 갔고 얼마 전에 보위도 사라졌다.
그들의 음악을 잔뜩 늘어놓고 들었던 기억은 분명 살아있는데 죽은 기억이 되어간다. 바닷가에서 술이 오르면 멍하게 바다를 보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쓸데없는 생각은 쓸데없지만 쓸모없지는 않다. 그런 생각의 바다에서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