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동안 비가 오기도 했고 해가 쨍하게 뜨기도 했고 바람이 많이 불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체로 고요하고 조용하게 흘러갔다. 오징어 게임도 두 번이나 볼 수 있었고 보면서 놀랐고 재미있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가 많이 떠올랐고 황동혁 감독도 카이지 외 여러 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명절 기간에 성룡 영화가 하긴 했다. 케이블에서 뱅가드를 했는데 감독인 당계례의 영화는 황당한 장면이 많기로 유명하다. 요컨대 전투 장면에서 엑스트라가 뒤에서 혼자 막 군무를 하는 모습을 그대로 영화에 담기도 한다. 성룡도 그걸 알면서 왜 이런 감독과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재미는 없었다.


영화를 보고 먹고 마시다가 저녁에는 또 조깅을 좀 했다. 조깅을 하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이 늘 있고 또 그 풍경의 달리지는 모습을 계절에 맞게 볼 수 있고 그 모습을 폰 카메라에 담아 본다.

구름 속에 숨은 달이 얼굴을 보이기 위해 살며시 빛을 발하고 있다. 가만히 서서 이 신비의 장면을 바라보았다.

달이 구름 위로 모습을 살며시 드러냈다. 아마 달 위에 떠 있는 별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달은 별을 만나기 위해 구름 속에 편안하게 있기를 거부하고 위로 위로 얼굴이 나오는 것이다.

드디어 달이 별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별은 그 자리에 그대로여서 움직일 수 없으니 달이 별을 만나기 위해 위로 위로 날아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도 이 자리에 두 발로 버티고 서서 저 신비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매일 같은 곳인데 매일 모습이 다르다. 인간과 똑같다. 인간도 매일 마음이 다르다. 남이 볼 때는 늘 비슷하게 보일지 몰라도.

바람이 없고 달빛이 강한 날에는 반영이 좋다. 좋은 카메라가 있었다면 반영 샷에 열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반영 샷은 하늘의 모습을 수면으로 다시 볼 수 있어서 또 다른 모습이다.



또 하루가 지났다. 저 멀리 보름달이 보인다. 달의 그림자가 강물 위로 늘어진다. 그 위로 비행기가 추석맞이 비행을 한다. 모두 명절 잘 보내세요,라고 하는 것처럼. 고요하고 멋진 풍광이다.

15센티미터 정도의 물고기를 낚아 올리기에 무슨 고기냐고 물어봤다. 숭어 새끼야, 라며 바늘을 꺼내자마자 강으로 보내줬다. 어찌나 쿨하고 멋지게 보이던지. 15 센티미터면 보통 그대로 들고 가서 먹을 텐데. 아저씨는 그랬다, 이렇게 풀어주면 나중에 30센티미터가 될 게야. 아아 정말 그 한 마디가 너무 멋졌다. 짝짝짝.

또 다음 날이다. 평소에 달리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그래서 노을의 모습을 마주하고 달리게 되었다. 붉은 오렌지 빛의 향연이다. 저건 그래서 태양이다. 태양이 힘을 잃고 빛이 조금 연할 때, 이때 인물의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면 몹시 드라마틱하게 나온다. 빛이 머리를 타고 어깨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잡아낼 수 있다. 영화로 치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황정민이 초반에 석양을 등지고 촬영한 장면이 있다. 굉장히 드라마틱하며 광고 같은 아주 멋진 장면이 이 시간대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이 시간에 촬영을 끝내지 못하면 다음 날 이 시간에 다시 촬영을 해야 한다. 자연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계속 달려 강 상류로 올라가면 낚시는 금지이기 때문에 물고기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게다가 물고기들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도 않는다. 오글오글 모여서 오히려 사람을 구경하는 것 같다.

도로가로 나와서 달리는데 삼만 원을 주웠다. 사진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어두운 곳으로 만 원짜리가 일렬로 한 장씩 떨어져 있었고 자동차들이 계속 밟고 지나가서 돈의 면이 오돌토돌하다. 아마도 자동차들이 밟아서 도로 바닥에 밀착되어서 날아가지도 않고 있다가 나에게 발견되었는지도 모른다. 암튼 이 돈으로 편의점에서 와인을 사 먹었다.

다시 다음 날이 되었다. 저 아웃포커싱이 된 부분은 저수지다. 그러니까 나는 바다와 강, 저수지 등을 주로 다니는 모양이다. 이곳의 산쓰장은 아주 잘 되어 있어서 몸을 풀고 있는데 무당당이가 꾸물꾸물 기어가기에 사진을 하나 찍고 이대로 두면 사람들에게 밟혀서 찍 눌려 죽을 것 같아서 저기 숲으로 보냈다.

저 끝이 바다다. 동네 자랑이다. 바닷가에 살면 바다는 매일 본다. 어쩌다 보는 바다보다 매일 봐야 바다의 재미를 알 수 있다.

너무 잘 먹은 탓에 달리는 게 힘들어서 걷는 중이다. 지는 해를 등지고 있어서 다리가 키다리 아저씨 같네. 또는 공포 영화 속 젓가락 귀신같기도 하네.

와, 이 그러데이션을 보라. 하늘이라도, 파란색이라도 이렇게나 층을 두고 여러 색이 있다. 재스민 블루, 옐로 블루, 퍼머낸트오랜지블루, 딥 스카이 블루.

그리고 뒤를 돌면 석양이 지고 있다. 태양이 마지막 힘을 짜내 그림자를 까맣게 까맣게 태운다. 그림자가 다 타고나면 우리는 밤의 세계를 맞이한다.

조깅을 하고 오면서 자주 들리는 카센터에는 아직 어린이인 백구 녀석이 있어서 늘 사람을 기다린다. 낮동안 아마도 아빠와 삼촌들이 놀아주고 챙겨 줄텐데 명절 연휴에는 혼자 보내야 해서 이렇게도 다가가면 놀아달라고 난리다. 저 멀리서 보면 백구 혼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돌아올 때는 전통시장으로 온다. ‘상자 옆의 고양이‘가 세상사를 초월한 듯 초연한 자세로 앉아 있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나를 쓱 쳐다본다. 그 모습이 마치 느린 화면처럼 움직였다. 아마 명절 연휴라 시장에서 던져주는 고등어 머리 같은 것들이 없어서 조금 당황하지 않았을까. 이제 명절이 끝났으니 많이 얻어먹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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