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는 계란찜과 비슷하다. 너무 해 먹어서 질릴 법도 한데 또 하면 맛있다. 이렇게 부드럽고 맛있는 계란찜을 매일 먹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괜찮은 삶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라디오는 매일 나오지만 라디오보다 더 나은 플랫폼이 많아서 이제 사람들은 라디오를 잘 듣지 않는다. 그래도 라디오를 매일 들을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라디오 따위 듣는 사람들이 없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듣고 있다. 왜냐하면 라디오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러니까 너와 나, 우리의 사연을 나누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하면서, 운전하며 라디오를 듣고 웃고 눈물을 흘린다.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상에서 신나는 일 중에 하나는 라디오에 사연이 소개되는 일이다. 라디오에 사연이 소개가 되는 일을 나는 몇 번 겪었다. 일단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선물이 전혀 없는 배캠(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선물도 날아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 정희에서도 사연이 소개가 되어 선물을 받은 적이 있는데 파우치 세트가 온 적도 있었다. 라디오는 MBC FM포유를 죽 듣는다. 오전 7시부터 저녁까지는 라디오를 틀어 놓고 있다. 라디오는 집중해서 리스닝하기보다 그저 히어링 하는 것이다. 디제이들이 오전 시간에는 차근차근 새록새록,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톤으로 사연들을 소개하고 음악을 들려준다. 오히려 규디가 하는 오전 7시의 굿모닝 FM이 무척 소란스럽다. 아무래도 사람들을 깨우고 출근과 등교를 돕기 위해서 시끄럽다.


9시부터 11시까지 지디가 하는 라디오를 지나 현디(김현철 디제이)가 하는 골든 디스크는 책장을 천천히 넘기듯 조용하고 고요하게 흘러간다. 그러다가 정오를 넘어가면 으랏차차, 우당탕탕, 하며 열심히 라디오를 진행한다. 정말 들어보면 마치 오늘만 사는 것처럼 에너지를 쏟는다. 회사원처럼 하루에 5시간, 6시간씩 디제이를 했다면 아마도 바로 병원행일 것이다. 음악과 소개에 이렇게 진심일 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후 4시에 하는 샵디(이지혜)가 하는 ‘오후의 발견 이지혜입니다’는 임신 6개월의 몸으로 점심 먹고 노곤해지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서 난리난리 대환장이다. 그때가 가장 나른하고 잠이 오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샵디는 자신의 골수까지 뽑아낼 정도로 혼신을 다하는 것처럼 들린다. 내가 오버해서 말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한 번 들어보시길.


그래서 요즘 라디오 디제이들은 전문 디제이들은 없다. 김기덕이나, “안녕하쉽니꽈, 이 종 환입니돠”라며 젊잖게 시작을 하며 전문 음악 소개 방송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의 방송은 새벽으로 가거나 거의 없어졌다. 자정을 지나면서 음악평론가라고 해야 할까, 아직은 좀 웃긴 부분을 맡고 있는 배순탁, 음악 작가 신혜림, 영화평론가 김세윤이 각각 시간별로 해서 새벽 3시까지 한다.


이제는 라디오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방송으로 바뀌어서 전문 디제이보다는 가수나, 코미디언이 하는 경우가 다분해졌다. 컬투의 생명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 역시 이상하다거나 별로야,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근래에는 라디오에 참여하는 빈도가 줄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사연을 보내는데 여름이 오기 바로 직전에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는데 소개가 되었다.


지디(정지영 디제이)가 하는 오전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냈다. 노래 세 곡을 들려주는 코너에 사연을 보내면 소개가 되면서 신청곡이 세 곡이나 나온다. 내가 보낸 사연은 대충 위에서 말한 것처럼 라디오 디제이들에 대한 생각을 적었다. 디제이들도 사람이라 일상에서 힘들거나 아픈 일들이 있을 텐데, 라디오 부스에만 앉으면 사연을 읽어주고 진심으로 매일 웃고 기뻐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디제이들은 프로이기 때문에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청취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디제이들도 청취자가 힘든 사연을 보내듯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라디오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청취자들이 고민을 듣고 위로를 해주고 방법을 같이 찾으면 배철수처럼 긴긴 시간 같이 나이 들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내용의 사연이었다.


지디가 사연을 소개하면서 이런 사연은 처음이었다. 디제이들을 생각해줘서 고맙다는 뉘앙스로 말을 했다. 그리고 댓글창에서도 사연이 좋다는 글들이 계속 올라왔다. 그리고 내가 신청한 노래 세 곡이 나왔다.


정오가 되면 나는 지역 방송국의 정희(정오의 희망곡)를 유튜브로 듣는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과 방송에 참여를 한다. 지역 방송 정희에는 늘 조촐한 멤버들이 시간만 되면 온다. 그래서 뭐랄까 대체로 친구들 같다. 그리고 사연을 보낸 사람이 식당을 하면 그곳으로 가서 우연을 가장하여 서로 만나기도 한다. 이 조촐한 지방의 정희에 참여를 하면 사연이 매일 소개가 된다. 사연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지만 한 줄의 댓글과 교관님은 이런 노래를 신청했습니다. 같은 말을 하루에 두 번도 소개가 된다.


이게 좀 재미있고 웃긴 건 매일 이렇게 두 시간씩 조촐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방송에 참여를 하니까 실제로 만나도 마치 꼭 늘 만나던 사람들처럼 여겨진다. 무엇보다 라디오에 이름이 매일 나온다. 메이저 방송은 사연 소개의 경쟁이 치열하지만, 지역 방송은 경쟁에서 덜 치열해서 그런지 꽤나 가족적인 분위기다. 또 그 나름대로의 소소한 재미가 있다.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 동안은 세상의 불행에서 잠시 벗어나게 된다. 쉬는 날 오전에 창을 미미하게 투과하는 빛 때문에 잠에서 깨다 다시 잠들고, 그런 반복이 주는 안정감 속에 라디오의 소리가 그 사이를 조용하게 파고든다. 잠에서 깨고 싶지 않은 나와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픈 내가 부딪히는 그 사이를 라디오는 아무런 의심 없이 평온하게 이어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태어나는 순간 노래를 만든 이의 것이 아니라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것이라, 빛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색채처럼 만든 이의 고통으로 이루어진 노래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로해준다. 그리고 라디오가 있다. 라디오는 계란찜처럼 부드럽다.


예전에는 참 많이도 사연을 보내고 글을 올렸는데 언젠가부터 하지 않게 된 라디오 사연. 그러다가 문득 며칠 전에 사연을 한 번 보냈는데 그 사연이 아침의 평온한 공기 틈을 가르고 나왔다. 위로와 공감, 그 흔한 말도 디제이의 입을 빌려 스피커를 통해서 듣게 되면 또 조금은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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