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


일단 발음부터 통닭이 마음에 든다. 누군가는 흥, 하겠지만 치킨보다는 통닭. 귀에 쏙 들어와 박힌다. 냄새도 치킨보다 통닭이다. 치킨배달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다음 뒤를 난타하는 경우보다 통닭을 들고 탄 아버지들이 내린 다음 후려갈기는 냄새가 더 좋다. 정말 그 냄새는 마력적이다. 특히 배고플 때 맞이하는 짜파게티 냄새만큼 유혹적이다. 냄새로 이토록 사람을 아름답게 미치게 하는 건 음식 냄새가 유일할 것이다.

통닭이 치킨보다 나은 건 학습 때문인지 튀긴 닭의 모습이 너무나 먹음직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치킨은, 특히 순살 치킨은 닭고기와 고등어를 같이 갈아서 만들어도 모를 것이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것도 통닭에게 한 표를 주고 싶다.


통닭은 치킨과 후라이드와 각종 맛있는 닭요리 덕분에 자취를 감춰야 함이 마땅한데 곳곳에서 통닭은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게다가 기이하게도 치킨과 후라이드에 비해 저렴하기까지 하다. 치킨 프랜차이즈 전문점에서도 이제 통닭을 팔기도 한다.


통. 닭.이라는 요리가 마요와 땡초로 버무려진 양념치킨과 후라이드가 점령한 요즘에도 계속 나오는 이유는 통닭에 사람들은 각각 하나씩의 추억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식업이 발전하면서 그간 닭요리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통닭의 모양과 맛을 비교적 유지하면서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 통닭을 파는 전문점들이 늘어나서 프랜차이즈가 되었고 비슷한 통닭이지만 맛도 조금씩 다르다. 약간 매콤한 맛이 통닭에서 나는 경우도 있다.


통닭이나 치킨이나 역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먹으니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니라 맛이 어떻네 저러네 따질 수는 없지만 통닭이나 치킨이나 다 맛있다. 양념치킨의 맛은 양념이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통닭의 맛도 튀길 때 입히는 튀김가루에 밑간을 하는 것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그런데 닭 뭐 먹을래? 하면 나는 통닭이 입에서 나온다. 치킨도 후라이드도 좋지만 통닭이 먼저다.


통닭을 주로 사 먹는 사람들은 통닭에 대한 기억이 많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들고 온 통닭을 밥상 위에 펼쳐 놓고 가족이 둘러앉아 다 같이 먹었던 기억이 통닭의 튀김옷에 고스란히 스며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가족은 행복하다. 그저 튀긴 닭에 사이다 한 잔일뿐인데 뭐가 좋은지 온통 행복만이 기억을 점령하고 있다.


나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중에 초등학생 아들 둘과 산자락에서 생활하시는 분의 피드는 늘 활기차고 행복하다. 거기의 행복은 가공되지 않았다. 팔로워도 만 명이 넘는다.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은 그 음식을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같이 두런두런 앉아서 먹을 때 종알종알 행복이 쏟아진다. 내 기억 속 통닭이 그렇다.


통닭은 분명 한 마리로 가족 네 명이서 먹었다. 요즘에는 두 마리나 세 마리를 포장해서 먹었을 텐데 내 기억 속의 통닭은 딱 한 마리였다. 한 마리를 펼쳐 놓고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먹었는데 누가 닭다리를 먹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무리 기억을 재생산해봐도 닭다리를 누가 먹었을까 같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그저 즐거워하는 모습이 기억이 난다. 게다가 사진까지 있어서 행복이 꿀 떨어지듯 떨어지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집에서 회사까지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한다. 집 근처에는 맛있는 통닭집이 없어서 월급이나 보너스를 받는 날이면 아버지는 회사 근처의 인기 많고 맛있는 통닭집에서 닭을 한 마리 튀겨왔다. 얼마나 냄새가 심하게 났을까. 모두가 허기질 시간 저녁 7시에 아버지는 당당하게 통닭 봉지를 들고 버스에 올라 여봐란듯이 들고 왔다. 아마 요즘 같았으면 누군가 한 소리를 하고도 남았겠지만 그때에는 아마도 사람들이 버스에 마술처럼 퍼지는 그 통닭 냄새를 맡으며 맛있는 저녁을 먹는 상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 통닭에 밥을 먹는 것을 좋아했다. 갓 지은 밥 위에 엄마가 뜯어 주는 닭을 올려서 야무지게 씹어 먹었다. 냠냠 먹고 있으면 고소하면서 뜨거운 밥과 함께 후후 입을 불어가며 먹는 그 맛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통닭을 포장해서 집에서 먹을 경우에는 밥과 함께 먹는다. 기름에 들어갔다가 나온 통닭을 밥과 함께 오물오물 먹고 있으면 옛날의 어렸던 내가 소환되기도 한다.


언제 처음 통닭을 먹었을까. 기름에 제대로 빠진 닭의 맛을 알게 된 건 몇 살이었을까.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시장에 가면 통닭골목이 있어서 거기서 기다려서 한 마리를 포장해오곤 했던 기억도 있다. 요즘은 튀긴 닭에 똥집은 떼어 버리는데 그때는 똥집도 같이 튀겼다. 그게 살이 가장 많이 찐다는데 나는 또 똥집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 닭을 튀겨왔던 통닭 골목은 아직도 시장에 남아 있어서 닭을 튀겨서 판다. 하지만 통닭은 없고 대부분 치킨과 후라이드를 판다.


어렸을 때 기억은 현실과 좀 다른 구석이 많다. 다녔던 학교를 가면 초등학교가 이렇게나 작았다니 하는 것처럼 그때 먹었던 기억만으로 요즘 통닭을 먹게 되면 양이 적어서 뭐지? 이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한 마리이긴 한데 한 마리가 아닌 것 같다. 한 마리를 먹고 나면 닭이 남아야 하는데 요즘은 절대 그럴 일이 없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치킨의 맛을 알고 난 후 통닭은 나의 문화권에서 멀어졌다. 대학교 때 닭을 엄청 먹었는데 다 후라이드나 치킨이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몇 번씩 가는 단골 닭집이 있어서 늘 모임을 거기서 했다. 먹은 닭만 해도 뼈 무덤이 일반적인 담벼락만큼이지 않을까.


몇 해 전에 집 근처에 통닭집에 생겼기에 한 마리 튀겨 가려고 들어갔다. 그 아련한 통닭 튀기는 냄새가 확 풍겼다. 주인장은 젊은 사람으로 수건을 동여매고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니 전자시계의 시간을 맞추었다. 기다리면서 안을 둘러보니 근처 제조회사 작업복을 입은 한 아버님이 앉아서 홀로 통닭을 뜯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국밥집에서 아버지들이 등을 굽혀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후루룩 국밥을 먹는 모습과 닮았다. 통닭을 혼자서 뜯는 아버님은 통닭이 정말 좋아서 혼자 왔거나 아니면 그 아버님도 어떤 추억에 끌려 통닭을 뜯으러 왔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어떤 집에서는 통닭을 듣으며 온 가족이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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