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도 잘 때 에어컨을 켜고 자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여름에도 잠을 잘 때에는 에어컨을 켜고 잠들어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몇 가지가 있다. 보통 6월이 되면 바닷가도 여름의 옷을 입는다. (참고로, 처음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저의 집 앞은 바닷가입니다) 그럼 그때부터 거의 매일,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 여름이 끝날 무렵까지 바닷가에 나가 홀라당 벗고 오전에 잠시 책을 읽으며 살을 태운다. 그러다 보면 무더위에 몸이 적응이 되는 것 같다.
매일매일 조금씩 이글거리는 해에 몸을 내주고 살갗을 태운다. 살이 그러데이션으로 검게 물들어 갈수록 땡볕에 있어도 못 견딜 지경은 아니다. 아 덥군, 하는 정도지, 아아 미치겠다,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살갗이 진열장의 나무색과 흡사해지면 어지간한 더위는 그다지 덥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에어컨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그래서 코로나 이전, 카페에 앉아 있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실내온도가 26도 밑이면 좀 추운 것이다. 요즘도 내가 일하는 곳의 실내 온도는 26, 27도 정도에 늘 맞춰져 있다. 거기에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꽤 시원하다.
생각해보면 해외 휴양지의 현지인들은 그렇게 더위를 타지 않는다. 에어컨이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도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그 정도로 폭염이나 무더위에 몸이 적응을 한 것이다. 요 며칠 사람들이 더위 때문에 허덕이며 죽으려고 하는데 바닷가도 가까우니 가서 썬텐이 더위를 이기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음은 매일 하는 조깅이다. 폭염이면 운동을 하지 마라, 심한 조깅은 큰일이 난다, 같은 뉴스가 있지만 매년 여름이면 늘 폭염이었고 늘 더웠다. 더운 날일수록 밖으로 나가 달렸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의 오후 3시에 조깅을 하러 나가면 나처럼 미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전부 땀을 있는 대로 흘리며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움직이며 저기서 여기를 지나 저기로 신나게 달려간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복장을 잘 갖춰 입고 열심히,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다부진 표정으로(사실 마스크와 고글 같은 것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페달을 밟는다.
요즘 같은 날 조깅을 하면 엄청난 땀이 흐른다. 무릎에서도 땀이 비어져 나오기 때문에 정말 엄청난 땀이다. 일 년 중에 이렇게 엄청난 땀을 흘릴 수 있는 날도 여름뿐이니 여름을 즐기면 된다. 그렇게 지정해 놓은 코스까지 달려가면 땀이 온몸을 급습하는데 그때부터 되돌아올 때 걸어오다 보면 덥덥한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다.
시원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시원하다.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덥덥한 바람에 불쾌지수가 오를지 몰라도 조깅을 해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여름에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에어컨 바람만 맞다가 야외로 나가면 부는 바람이 당연히 덥게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조깅을 하면서 심장에 건강한 무리를 잔뜩 주어 땀을 죽 빼고 맞이하는 바람은 시원하다. 그러니 집으로 들어와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앉아 있으면 아파트 베란다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시원할 수밖에 없다. 집은 10층이라 바닷가의 바람이 여름에도 늘 분다.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시원하다. 그냥 이대로 잠들기 때문에 에어컨을 틀고 잠들지 않는다.
다음은 조깅 후에 마시는 물이다. 대부분 더우면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음료를 마시지만 나는 시원한 물을 보온이 되지 않는 텀블러에 미리 채워두고 조깅을 하고 돌아와서 그 물을 마신다. 그 물은 내가 조깅하는 동안 미지근해져 있다. 시원한 물이 갈증을 해갈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조깅을 해서 땀을 이만큼 흘리면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캬 하는 소리가 나오며 좋을 것 같지만 그건 순전히 그저 미화된 광고 영상의 영향이다.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자주 홀짝이면서 물을 체내에 채워준다. 그러면 물이 몸에 잘 퍼져 들어간다.
과학적으로 또 의학적으로 잘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그저 기도 부분에 자극만 줄 뿐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더 갈증을 부축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잘 모르니 설명하기가 힘듦(웃음). 그리고 내가 나를 봤을 때 태생적으로 추위는 견디질 못하는데 더위는 그냥저냥 참고 잘 견디는 것 같다.
여름이 되면 늘 더웠고 늘 폭염이었고 늘 불쾌지수 같은 말이 따라붙었고 매미소리가 들렸다. 올해 여름이 지난여름들보다 특별할 것은 없다. 단지 작년과 올해는 이 더운 여름에 마스크까지 써야 한다는 것이다. 덥다고, 폭염이라고 유난 떨 것 없다. 그건 전부 미디어나 언론에서 늘 하는 말이다. 랑종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최강 공포 영화라며 유난 떨며 불 켜고 상영하는 극장까지 생기고 하지만 막상 보면 그게 무서운 건지 그저 잔인하고 징그러운 건지 알 수 있다.
유튜브의 옛날 티브이 영상을 보면 90년대 에어컨이 없는 여름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지금 생각으로 에어컨이 없이 이런 무더위에 어떻게 생활을 할까 싶지만 영상을 보면 더위에 허덕이면서도 다 견뎌낸다. 그렇게 여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낸다. 댓글들 중에 이런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와 저렇게 더워 보여도 마스크 안 쓰고 있는 게 너무 부럽다’. 지금은 덥고 또 마스크까지 써야 한다. 언젠가 분명 오늘도 재미있게 이야기할 날이 오겠지. 방탄이들의 퍼미션 투 댄스를 보면 희망은 절망 끝에 있고 곧 모두가 마스크를 벗게 될 거라는 기분 좋은 말을 한다. 게다가 감동적이기까지 한 노래의 힘을 보여준다.
여름에 날이 시원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더우니까 여름이고 우리는 이런 여름이 오면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고 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설사 문제가 있다 손 치더라도 답이 있으니까. 중요한 건 아직 본격적인 더위는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한반도는 장마기간이라 진정한 폭염은 다음 주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