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들고 있음. 비가 엄청 오는 날인데 사진에는 표가.

비가 너무 온다. 비가 내린 지 6일째. 6일 동안 비가 신나게 퍼붓고 있다. 지금 이 시간 잠시 소강상태지만 아침에도 비가 왔었고 소강이 곧 끝나고 열심히 비가 쏴아 내릴 것 같다. 6일 내내 그랬으니까. 일기예보도 정확하게 알아맞히지 못한다. 지금은 그런 시대에 접어들었다.


비가 내릴 때에도 우산을 들고 조깅코스를 걷거나 다리 밑에서 근력운동을 조금 하고 들어오니 운동복과 운동화가 젖어서 빨래를 해도 마르질 않는다. 이다지도 비가 매일 쏟아지듯 올 수 있을까. 폭우에 가까운 비가 주룩주룩 지치지 않고 내리고 있다.

잠시 소강상태의 하늘을 담았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음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에도 조깅 코스에는 꽤 사람들이 나와서 우산을 들고 걷거나 우산을 포기하고 그냥 평소처럼 달리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매일 나온다. 매일 나와서 매일 나(교관이)와 지나치며 무언의 연대감 같은 것을 느낀다. 달리는 사람들은 비가 오는 건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렇게 6일 동안이나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도로에 물이 많이 고인다. 어떻게든 고인 물을 피해 끙끙하며 걷지만 꼭 말미에 풍덩 빠지고 만다. 비가 내려 옷이나 팔이나 얼굴이 축축해지는 건 참을만한데 양말이 축축해지는 건 어떡해도 적응이 안 된다. 비가 계속 오니 인도에 물이 많이 찼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도로에는 어김없이 물웅덩이가 생긴다. 그런데 저 앞에서 차가 조금 빠르게 오면 머리를 빨리 굴려야 한다. 물웅덩이에서 어떻게든 떨어져야 한다. 그래야 차가 지나가면서 물이 튀는 걸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다. 차들도 이렇게 비가 쏴아 내리면 운전이 만만치가 않다.


폭우가 쏟아지는데 사진으로 담기지 않아서 안타깝다. 그럼에도 우산을 쓰고 걷는 아저씨.

어제는 우산을 들고 조깅코스에서 벗어나 인도에 접어들었는데 중간에 큰 물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운동화를 신었기에 물웅덩이에서 피하려고 끙끙거리며 뒤꿈치를 들고 가로질러서 천천히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태권도복을 입은 초등학생이 아무렇지 않게 풍덩풍덩 밟고 물웅덩이를 지나갔다. 순간 지는 듯한 이 기분.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도 그랬는데. 용감했을 때가 있었다. 물웅덩이 따위 겁내지 않고 풍덩풍덩 밟으며 재미있게 지나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비가 많이 오면 양말이 젖는 게 너무 싫다. 발이 축축해지는 게 짜증이 난다. 운동화 안으로 물이 예고도 없이 들어와 영역을 넓혀 발이 축축해지는 게 너무 싫어졌다. 이렇게 축축한 발바닥으로 한참을 또 걸어가야 한다는 게 더 싫다.

운동화가 수중화가 되었다. 이 와중에 지렁이 크기 뭔데.

이렇게 보니 나는 싫은 게 너무도 많아진 것이다. 좋아하는 건 간단하고 몇 개 없고 포괄적인데 싫어하는 건 이렇게도 구체적이다. 6일 동안 운동화 두 켤레가 다 젖어서 아직 마르지 않았는데 또 운동화가 홀라당 다 젖었다. 라디오에서도 그러고 아는 동생도 그랬는데 여기, 이곳의 여름 날씨가 점점 동남아 지역의 날씨를 닮아가는 것 같다. 긴긴 여름의 뜨거운 날이 지속되는 게 아니라 여러 날의 우기가 반복이 되면서 비구름이 하늘에 여러 날 동안 머물렀다가 잠깐씩 사라져 해가 뜨는 그런 날. 그러다가 느닷없이 소나기가 콰르르 쏟아져 모든 것을 다 젖게 만든 후 난데없이 해가 불쑥 나타나는 그런 날씨.


2년 전, 그 이전의 여름은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덮치기 전에도 여름이 여름 같지 않아서 한철 장사라고 불리는 해안가의 상점들이 울상이었는데 이제 코로나가 사라지더라도 그 이전의 여름 같은 호화롭고 오래도록 뜨겁고 시원한 해변의 여름은 맞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천오백 원짜리 우산 ㅋㅋ

비가 왔다 안 왔다 하는 레인 시즌이다. 비를 좋아해도 비가 추적추적 계속 내리게 되면 지친다. 빨래가 빨리 마르지 않기 때문에 지치고, 비가 추적추적 오면 방심하고 걷기 때문에 비가 쏴아 올 때 보다 더 젖기 때문에 지치고, 이 굽굽함 때문에 지치고, 뇌에 까지 습기가 꽉 들어차 버린 것 같아서 지친다. 비가 올 때 수동적으로 우산을 쓰고 움직이는 건 정말 너무나 싫다. 또 싫어하는 것의 열거. 좋아하는 걸 적어보자.


비가 오는 날 밖이 훤하게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뜨거운 커피를 홀짝홀짝 거리며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는 건 너무나 좋았다. 그래서 7년 동안 가던 로컬 카페가 있었지만 사라지고 없어졌다. 역시 좋아하는 건 간단하고 빨리 끝난다. 조금 길게 좋아하는 걸 적어보자.


내가 있는 바닷가에는 바다가 훤히 다 보이는 목욕탕이 있었다. 8, 9년 전에는 여름에 바닷가를 뛰고 난 다음 그 목욕탕에 가면 아주 기분이 좋다. 온탕이든, 냉탕이든 앉아서 보면 통유리 전부로 바다가 보인다.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지만 5층인가 그렇고, 건물 바로 밑으로는 바로 바다이기 때문에 유리가 다 보이는 유리라고 해도 뭘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억지로 헬기를 타고 투투투하며 남탕을 훔쳐본다면 모를까. 여탕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남자들은 바다가 보이는 탕에서도 한두 시간 만에 목욕을 하고 나가는데 여자들은 또 그렇지 않다고 한다. 아무튼 바닷가에 있는 목욕탕은 좋았다. 태양이 바짝 태워버린 몸뚱이를 씻고 냉탕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거기에 앉아서 먼바다를 보는 건 사치를 즐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가 오는 날이면 더 운치가 있다. 비가 온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는 건 좋지만 비 속에 있는 건 싫다. 역시 싫은 것으로 마무리.


6일 동안 계속 비가 내리기 전에는 비가 쏴아 오지 않고 추적추적 내리다가 그쳤다가 다시 내렸다가 잠시 해가 떴다가 사라지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런 날에 조깅을 하다가 저녁에 하늘을 봤더니 노을이 노을 같았다. 이제 이 레인 시즌이 끝나면 자연은 그야말로 붉은 노을의 자태를 뽐낼 것이다. 돈이 들지 않기에 우리는 그걸 즐기기만 하면 된다.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너 자체가 먼지 행복해져야 한다. 너만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하지만 행복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돈만 많다고 해서 행복하지는 않다.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해서도 행복해지지는 않다. 인간관계가 원만하다고 해도 행복하지는 않고, 사장이라고 해서 행복하지도 않다. 이 모든 게 다 충족이 되어야 비로소 행복에 도달한다. 그러니 행복하려면 노력을 굉장히 해야 한다. 세상에 아무도 나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가 세상을 보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미칠 듯이 타오르는 붉은 노을을 보려면 노을을 보러 나가야 한다.


다른 계절에는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볼 수 없다. 눈을 보려면 다시 겨울을 기다려야 하듯이 미칠 듯이 타오르는 붉은 노을을 보려면 붉은 노을이 지는 이 계절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이렇게 돌아왔을 때는 실컷 본다. 바다 멍에 이어. 노을 멍도 좋다. 조깅코스에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자신만의 벤치에 앉아서 저 노을을 10분 정도 가만히 보는 것이다. 10분이라는 시간은 아주 상대적인 것으로 유튜브에서 10분은 너무 길지만 노을을 보는 10분은 그렇게 길지 않다. 금방 간다. 인생처럼.

스티븐 킹의 소설이 생각난다. 높은 풀숲에서 처럼 한 번 갇히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곳. 이런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물이다. 물이 된다면 어떤 곳이라도 빠져나올 수 있다. 같은 쓸데없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길거리에 있는 화단에 심어 놓은 풀인데 밤에 찍으니 조명을 받아서 이렇게 보인다. 이렇게 보여도 비 때문에 촉촉하게 젖은 풀이다. 이렇게 6일 동안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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