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인가, 4학년인가. 초봄의 어느 날. 부는 바람에 아직 쌀쌀함이 깃들어 있어서 기분 좋은 날,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오는데 하늘이 하늘처럼 보이지 않았다.


 한유주의 말처럼 햇살이 바삭바삭했고, 하늘은 사랑의 열병을 앓던 미술가가 아픔 끝에 그려놓은 하늘처럼 보이던 날, 처음으로 독감에 걸렸다.


 입안이 이내 마르기 시작했고 독감에 몸이 점점 침잠되어 갔다. 뜨거운 물에 푹 삶긴 시금치처럼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러다간 몸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약 기운에 세상인지 아닌지 구분도 가지 않고 눈을 잠시 떴다가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반복.


 엄마는 나를 안고 죽을 쑤어 숟가락으로 떠 입안에 넣어 주었다. 입안에 퍼지는 간장 맛의 부드러운 죽의 느낌. 음식을 넘기는 쾌락이라든가 맛은 느낄 수 없었다. 본능의 기운도 발휘되지 않았다. 그저 인후를 통해 연하게 죽이 내려가는 느낌 그것뿐이었다.


 보드라운 엄마의 품.

 엄마의 희미한 냄새.


 어린 동생에게 늘 엄마를 빼앗겼는데 모처럼 엄마를 오롯이 독차지했다. 독감이 계속 이어졌으면, 나는 마냥 아이가 되어 눈을 반쯤 뜨고 나직이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엄마.


 주사 맞았으니까 죽 먹고 약 먹고 나면 나을 거야.


 나는 배태한 것처럼 엄마의 품에 안겨 소록소록 잠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파랗게 질린 하늘 밑에서 코로나 예방 접종 후 어머니는 근육통과 소화불량으로 마냥 아이가 되었다. 이틀 만에 조금 나아진 어머니는 소화가 안 되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며 나에게 죽을 끓여달라고 했다. 닭죽만큼 쉬운 죽도 없으니 오늘 저녁은 닭을 맛있게 먹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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