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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내용과 무관함 ㅋㅋ
사진관에 자주 오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풍채가 좋고 키도 180이 넘고 목소리도 걸걸한 할아버지였다. 나이는 80은 넘은 것 같은데 워낙 건강하게 보여서 또 80대로 보이지 않았다. 외모는 마치 일본의 60년대 레슬링 선수 같은데, 일본 영화 ‘내 이야기!!'에 나오는 타케오의 늙은 모습이 딱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딱 그렇게 생겼다. 눈썹과 머리 모양이나 눈매나. 단지 머리가 하얗고 술 때문에 얼굴이 좀 붉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케오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로 한다.
타케오 할아버지가 사진관에 자주 오는 이유는 주말마다 산악회에서 등산을 가는데 거기서 찍은 사진을 출력하려고 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사진관에서는 일반 사진은 출력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케오 할아버지의 사진은 출력소에 맡겨서 사진을 인화를 해주었다. 그렇지만 또 일반 사진은 증명사진처럼 수정을 할 수 없는데 늘 타케오 할아버지는 자기 위주로 수정을 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사진에 날짜를 꼭 넣어달라는 것이다. 몇십 장이 되는 사진에 일일이 날짜를 넣어주고 타케오 할아버지의 얼굴은 전부 다 수정을 해주고 한 장에 이백 원이다. 엉망진창인 것이다. 아무튼 날짜를 넣어주고 난 다음에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에 세팅을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항상 날짜는 사진에 없고 꼭 나에게 넣어달라고 했다.
타케오 할아버지는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아서 그런지 술을 드시고 올 때면 그 큰 몸을 잘 지탱하지 못해서 조금 비틀비틀거리며 들어온다. 그리고 그 걸걸한 목소리로 보자마자 여차저차 다른 말 없이 걸걸한 목소리로 “여어”하며 들어온다, 여어, 할 때 억양이 올라가면 그 날 기분이 좀 좋은 날이고, 여어, 가 짧고 억양이 없으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말이다. 기분이 좋은 이유는 막걸리를 한 잔 거하게 와서 기분이 좋은 것이고, 기분이 별로인 건 기분이 별로인데 막걸리를 마셔서 기분이 더 별로라 그런 것이다. 아무튼 그런 할아버지가 타케오 할아버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타케오 할아버지가 뽑은 일반 사진은 동네에 있는 사진관이나 출력소를 가서 출력을 해야 한다. 내가 있는 사진관에서는 일반 사진은 취급하지 않지만 어쩌다 처음에 타케오 할아버지의 길을 그렇게 닦아 놓은 것 같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처음에는 처음 한 번 해주면 다시는 안 올 거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처음에 왔을 때 그렇게 설명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등산을 하고 와서는 카메라를 던지며 걸걸한 소리로, 알제?라고 하고 가버린다.
그런데 이 풍채 좋은 타케오 할아버지가 죽 오다가 한 일 년쯤 뒤에는 할머니의 사진도 뽑아 달라며 카메라를 던졌는데 할머니의 발가벗은 사진, 누드 사진을 타케오 할아버지 식으로 찍은 사진들이었다. 게 중에는 할머니의 버자이너가 드러나는 사진도 있었다. 참 난감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좋아해서 그래,라고 걸걸하게 말했다. 그냥 좀 뽑아줘. 마치 오래되고 빛바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사진들이었다.
예전에는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서 욕조에서 같이 목욕을 하며 와인 잔을 들고 찍은 사진들이 있는데 어떻게 출력을 해야 하냐며 들고 온 친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발가벗고 찍은 사진을 사진관에서 출력을 하려면 출력소의 사람들이 보게 된다. 그리고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라면 몇 장 더 인화를 할 수도 있으니 4-6 사이즈만 출력할 수 있는 작은 프린트기를 하나 구비해서 집에서 출력을 하는 방법이 제일 좋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사진을 수백 장씩 사진을 찍게 되니 그때 가서도 꽤 프린트가 유용하니 하나 구입해두고 신혼부부 둘이서 발가벗고 찍든, 서로를 찍어주던 둘만의 사진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다.
타케오 할아버지는 그 뒤로도 몇 번은 할머니 나체 사진을 찍어 와서 출력해갔다. 다행인 것은 보통 사진을 출력해서 들고 가기 전에 여기에 앉아서 하나씩 보면서 하하하 웃으며 사진에 대해서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 산은 무슨 산이고, 여기는 산의 어디이며, 이 녀석은 나 보다 몇 살이 적은데, 같은 설명을 했는데 할머니 나체 사진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이제 안 온 지 몇 년 정도 되었다. 아마도 돌아가신 모양이다. 풍채가 아무리 좋고 키가 커도 나이가 많고 술을 이만큼, 매일 마시니까 몸이 버텨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타케오 할아버지가 이제 더 이상 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을 때 가장 많이 든 생각은, 할머니 나체 사진은 어떻게 되었을까 였다.
집집마다 사진은 어떤 식으로든 남아있게 된다. 예전 사진이든, 아주 오래된 사진이든 집집마다 앨범이며 액자며 오래된 집의 벽이나 천장에 붙어서 남아있다. 할머니의 나체 사진도 불태워 버리지 않은 이상 어딘가에 남아있게 되는데 많이도 뽑아간 할머니의 사진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할머니는 아직 살아있어서 할머니 본인이 처분을 하면 되는데. 타케오 할아버지 참 재미있었던 분이셨는데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섭섭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