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생선 비린내에 대해서 말했지만 나는 비교적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좋아했었다. 정확하게는 비린내보다는 비린 맛이 나는 음식을 좋아했다. 비린맛을 왜 좋아하는지 그건 참 알 수 없지만 대학교 때 자취를 하면서, 군대를 제대하는 시점으로부터 해서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잘 도 찾아서 먹고 다녔다. 자취를 할 때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꽁치통조림을 따서 그대로 밥과 함께 먹거나 통조림 채 팔팔 끓여서 술안주로 먹곤 했다. 그게 햄버거처럼 가장 간단하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생각해보면 꽁치통조림도 맛과 통조림 모양이 변치 않은 채 라면처럼 굳건하게 오래가는 것 같다.


일주일에 두 번씩 먹고 나면 당연하지만 그다음 날까지 온 집 안에 꽁치 비린내가 영화 속 안개처럼 들어차 있어서 누구도 오지 않았고 왔다가는 그대로 방을 나가 버렸다. 특히 여자들은 도대체가 이런 냄새를 맡으며 인간이 생활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표정을 짓고는 가버리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지들도 그 전날 술을 같이 마셨으면서 다음 날 꼭 모른 척한다. 남중 남고만 나왔는데 대학교에 가면서 여자에 대한 상상이 깡그리 무너졌다. 아침에 눈썹이 반쯤 날아간 얼굴을 보는 건 보통이었다.


어떻든 내가 사는 곳은 고래로 유명하고 어린 시절에는 종종 고래고기가 시장에 수육으로 나와 있어서 부모님이 자주 사 와서 먹곤 했다. 덕분에 고래고기에 대한 비린내에 적응이 되었다고 할까. 요즘은 예전처럼 고래를 잡는 것이 불법이라 고래고기를 잘 팔지 않는다. 아주 가끔 마트에 돌고래 수육을 파는 경우가 있는데 밍크고래나 다른 고래에 비해 돌고래 수육은 비린내가 60배는 더 강하다. 거기에 잘 삶아내지 못하면 비린내는 집을 폭파시켜 버릴 것만 같다. 물론 제대로 된 전문점에서 제대로 삶으면 비린내가 좀 덜하지만 기름으로 둘러싸인 고래고기가 가지고 있는 아주 막강한 비린내를 잡아내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고등어를 구워서 바로 먹으면 아주 맛있지만 고등어구이도 이틀 정도 지나서 먹게 되면 비린맛이 많이 나는 게 아주 좋다. 그러니까 이 비린 맛이라는 것에 한 번 빠져버리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마라탕에 빠지거나 평양냉면에 빠지는 것과 삭힌 홍어를 찾아서 먹는 습성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시점을 지나고부터는 비린맛을 찾아서 먹지 않게 되더니 예전처럼 비린맛이 그렇게 썩 맛있지도 않게 되었다. 불과 얼마 전 겨울까지만 해도 과메기철이면 과메기를 먹었는데, 과메기만 된장에 조금 찍어서 그대로 먹곤 했다. 김이라든가, 미역이라든가, 쌈에 싸서 초장에 잔뜩 찍어서 먹으면 과메기의 비린맛을 느낄 수 없어서 과메기의 맛 그대로를 찾아서 먹곤 했는데 이제는 과메기 철이 되어도 시큰둥해졌다.


오히려 20대에 쳐다보지도 않았던 햄버거나 편의점 음식을 찾아서 먹고 있다. 그러고 보면 주식은 대체로 마트에서 구입하는 식재료와 편의점 음식이다. 그것 참 신기하다. 그래도 가끔 비린 맛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생선을 구우면 어김없이 하루 이틀 정도를 둔다. 숙성을 해 놓은 다음에 먹으면 좋은 비린맛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가끔 와사비에 찍어 먹기도 하고 고추장과 마요네즈를 섞어서 소스를 만들어 찍어 먹기도 하지만 백후추를 뿌려서 먹는다. 하루 이틀 정도 지난 생선구이의 비린 맛에 백후추가 달라붙어 묘한 맛을 끄집어낸다. 비린맛이기는 한데 살짝 비켜간 비린맛이 난다. 백후추는 그냥 후추처럼 강하지는 않은데 생선의 비린 맛과 뭐랄까 기묘하게 어울린다. 절대적으로 맛없고 치약 맛만 날 것 같은 민초 빵이 의외로 술과 어울리는 것처럼.


백후추는 그냥 후추보다 맛은 떨어진다. 그런데 또 어울리는 곳이 있다. 생선구이에 그냥 후추는 어울리지 않지만 백후추는 또 어울린다. 그리고 분무기 형식으로 칙칙 뿌리는 싸구려 트러플 오일 향이 나는 소스가 있는데 그것과 같이 먹으면 비린내가 꽤나 고급진 맛으로 바뀐다. 그저 비린내만으로 먹던 음식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그렇지만 백후추가 있으니 괜찮다. 그렇게 바뀌는 관계들로 삶은 이루어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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