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스나이더의 4시간짜리 ‘저스티스 리그’를 보며 영화에 대한 B급 리뷰를 TMI 해본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면 누구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들 한다. 영화를 알뜰히 챙겨 보는 시기는 아무래도 2, 30대다. 연애를 해야 하고 극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연애의 재미있는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키우다 보면 극장에 가는 것이 점점 멀어지고 영화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하루가 빠듯하게 돌아가는데 2시간 이상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는 어쩌다 보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젊은 층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노인이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면 외면받는다. 그리하여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에서는 초인과 초능력자들이 나오는 영화지만 뭐랄까 생각을 하면서 보거나 논리에 맞춰서 제작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려면 엄청난 자본이 드니까 그 외의 나라에서는 또 두 손을 들고 포기하렵니다, 하고 만다. 특히 일본 쪽으로 가면 현재 박스권 안에 들어있는 영화는 실사영화뿐이다. 온통 만화를 실사화시켜서 과한 액션과 대사로 이루어져 도저히 어른들이 볼 만한 영화가 못된다. 그럼에도 돈이 되기 때문에 영화계와 극장계를 꽉 잡고 있는 한 줄기의 제작사는 그렇게만 영화를 만든다. 돈이 되는 이유는 그런 영화를 바라는 수요가 아직 많다는 말이다.     


애초에 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3일에 두 편 정도의 영화를 꼭 보고 있다. 게 중에서 마음에 드는 영화는 리뷰를 올리는데 전문 리뷰어처럼 디테일하게 리뷰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 리뷰를 해서 올린다. 영화를 리뷰해서 올리는 플랫폼이 인스타그램이다 보니까 길게 적으면 사람들이 보지 않기 때문에 축약해서 올리다 보니 그저 간단하게 올리고 있다. 그런데 영화 리뷰를 올리다 보니 영화에 관계된 사람들이 와서 댓글을 다는 경우가 있다.      



2018년에 나온 한국영화 ‘박화영’을 아주 재미있게 봤다. 재미있게 봤다는 말은 불편한데 깊이 있게 빠져서 봤다는 말이다. 영화는 온통 불편함 투성이었다. 영화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폭력 때문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이런 영화보다 더 한 현실이 도처에 있다는 말이다. 이 영화는 김영하의 ‘비상구’라는 소설을 읽을 때도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 자기들만의 언어를 내뱉고 자기들만의 질서를 만들어 작은방에서 솜뭉치처럼 말도 안 되게 생존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주위, 동네 어른들이 보고서도 모른척한다. 바로 침묵하는 것이다. 세상의 가장 잘못된 점은 ‘거짓말’과 ‘침묵’인데 거짓말은 그것대로 해야 할 때가 있지만 침묵은 범죄이기도 하다. 박화영이라는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서 올렸더니 감독이 와서 댓글을 달았다.



그다음 한국 공포영화 ‘휴게소’를 보고 대충 리뷰를 올렸다. 공포 중에서 오컬트에 속한다. 영화는 극장 상영을 염두하지 않고 만들었다. 자본이 없어서 아예 상영관 상영을 생각지 않고 만들었는데 상업영화인 ‘속닥속닥’보다 훨씬 잘 만들었다. 그 이유를 꼽자면 등장인물들의 열연이다. 자본이 없기 때문에 귀신과 악마와 괴물은 온통 연기자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설득이 된다. 이 영화는 모호하지 않았다. 전달하려는 바가 확실했다. 온갖 악이 영화에 등장하지만 그 악보다 더 크고, 더 한 악이 바로 인간이라는 말이다. 영화 속에 우리가 알만한 배우는 재희가 전부다. 나머지는 신인들이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서 뼈가 부서져라 연기를 한다.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영화는 몰입을 끝까지 몰고 가려는 노력을 했다. 이 리뷰에 대해서 제작사가 댓글을 달았다. 제작사는 정말 고마워하는 마음이 댓글로 드러났다.


그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에 대해서 리뷰를 한 번 한 적이 있다. 나는 배우 최병모의 연기를 좋아한다. 주로 극에서 극렬하거나 비열하거나, 또는 지질하거나 죽이고 싶은 장관이나 국회의원이나 비서 같은 역할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쓸모없는 정치인, 관료, 인사과장, 정부 관계자로 늘 나온다. 아주 밉게, 아니 가장 흡사하게 연기를 한다. 보고 있으면 저런 인간이 인간사회에 정말 있단 말이야? 벌레 같은 놈, 같은 욕을 하게 만든다. 그러니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가. 그래서 영화에 최병모가 나온다고 하면 주연이 아님에도 나는 대체로 그 영화를 보는 편이다. 최병모 배우에 대해서 적은 리뷰에는 최병모 배우가 직접 댓글을 달았다. 역시 재미있는 일이었다.


어떻든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면 전문 리뷰어들의 영화 리뷰를 읽게 된다. 전문 리뷰어들은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영화 그 너머의 모든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 이건 좀 그런데? 하는 글도 있다. 이번 4시간짜리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이전의 저스티스 리그보다 훨씬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듯했다. 그만큼 재미있게 봤다. DC의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잭 스나이더 컷의 저스티스 리그가 딱일 것이다.      

         

자살한 딸 때문에 하차했던 잭 스나이더가 이를 갈고 재편집을 해서인지, 욕을 입에 달고 봤던 17년도 버전보다 월등히 재미있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딸을 위해서라는 자막도 넣었다.       

        

새로운 편집 버전이 언제부터 재미있고 몰두되냐 하면 원더우먼이 나타나서 테러 집단을 해치울 때부터다. 그러니까 거의 초반부터다. 원더우먼이 총알세례를 막아내는 장면부터 17년도의 버전과는 딴판인 것이다. 그때부터 신난다. 그래 바로 이거야! 하게 된다. 그 뒤부터 아마존의 전투씬도 정말 멋지다. 재편집으로 탄생된 스테판 울프 역시 김상호를 닮은 얼굴로 다시 나타났는데 정말 모두를 씹어 먹을 듯한 빌런의 모습이었다.   

            

노래도 그렇지만 영화 역시 어레인지다.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하늘과 땅 차이다.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촬영과 편집의 모든 것을 통솔하는 것이 감독이다. 감독이 괜찮았다면 아마 우리나라 영화 ‘귀곡성’ 역시 괜찮지 않았을까. 손나은의 연기로 밟혔지만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카메라에 적응되어 있다.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또한 연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카메라에 대한 부담감과 무서움이 없는 아이돌을 데리고 영화를 찍는데 감독의 연기 지시가 제대로였다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영화 전문 리뷰어들이 호평보다는 혹평을 내놓았는데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말이 배트맨은 나머지 멤버들을 감시하려고만 한다는 글이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게 보였다면 배트맨은 그래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배트맨만 온전한 인간의 몸이고 나머지는 신 이거나 신의 후예이거나 사이보그나 에스퍼맨이다. 배트맨이 슈퍼맨에게 거부감을 더러 낸 게 슈퍼맨이 조드 장군과 싸우면서 도시를 초토화시킨 것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달랑 그 슈퍼능력자 두 명 때문에 대 혼란이 왔다. 그러면서 슈퍼맨은 지구인들을 향해 나는 지구인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친구입니다.라고 했을 때 배트맨은 슈퍼맨에게 거부감을 극렬히 느끼게 된다.               


신이라면 인간처럼 감정의 동요가 없기 때문에 별 걱정 없이 같은 편이라는 걸 받아들이겠지만 인간의 감정을 가진 신이라면 말이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의 감정은 제 멋대로라 언제 어떻게 변할지, 어떤 식으로 폭발할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은 대부분 기분이 태도가 된다. 나와 마음이 통하지 않거나 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기분이 그대로 태도로 나오게 된다. 신이 인간과 같은 감정을 지녔다면, 생각만으로도 무섭다. 지구의 무기로 슈퍼맨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없으니 악당들은 슈퍼맨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힘으로 슈퍼맨의 동요를 끌어낸다.                


당연하게도 배트맨은 그걸 알기에 저스티스 리그의 나머지 멤버들을 감시할 수밖에 없는 인간형 히어로이지 않을까. 아쿠아맨이 화가 났다고 해보자. 바닷가 도시는 초토화다. 원더우먼이 열 챘다고 해보자. 이번 재편집 원더우먼은 그야말로 슈퍼맨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소유자다. 게다가 원더우먼은 5천 살이다. 초인들이 인간들처럼 날뛰게 된다면, 그렇게 되면 배트맨은 이 더상 손을 쓸 수 없다.        

       

원더우먼을 보면서 늘 드는 생각은 원더우먼의 어머니는 보이는 그 정도의 나이로 몇 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원더우먼은 원래 어린이인데 성장해서 지금의 나이가로 몇 세기를 살아가고 있는데 그건 어떻게 정하는 걸까. 나는 어린이로 계속 몇 세기로 살아가고 싶어요,라고 하면 그렇게 되는 걸까. 그러니까 이런 거다, 배트맨은 인간이니까 늙어갈 것인데 원더우먼은 계속 그 나이로 살아간다. 원더우먼이 있는,,, 여기까지 하고 이번 재편집에서는 배트맨이 에즈라 밀러를 찾아갔을 때 블핑이 들의 노래는 사라졌다. 그게 좀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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