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에 판타지를 입히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된다. 마츠코의 일생을 만든 감독은 분명 ‘영자의 전성시대’를 보고 공부하고 또 공부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자의 전성시대 각본을 보고 마츠코의 일생 감독은 감탄하고 감동받아 마츠코의 일생을 영상으로 아름답지만 안타깝게 그렸을지도 모른다.
영자는 여자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과 경험을 당했고 뾰족하고 온갖 거친 삶을 돌처럼 살아간다. 시골에서 동생들을 네 명이나 둔 장녀로 상경하여 부잣집 식모로 일하다가 몹쓸 아들놈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영자는 밥을 먹다가 부잣집 아들놈에게 끌려 나와 성폭행을 당하는데. 성폭행을 당하고 난 후 영자는 턱밑에 붙은 밥풀을 떼어먹는 것을 잊지 않는다. 서럽고 서글픈 단어 가난은 성폭행을 당했다는 수치심보다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싶은 영자의 마음이 그대로 화면을 통해서 나온다. 굶주려 죽을 것 같았던 사람, 가난해서 비참하고 불편했던 사람들은 영자의 모습에 그만 가슴이 터질지도 모른다.
영자는 그 집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또 당하고 계속 당하다 그 집주인에게 걸려 쫓겨나 하루 종일 먼지로 가득한 방직 공작 같은 곳에서 일한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방식 공장의 일. 먼지가 눈처럼 쌓이는 곳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 얹혀사는 아는 언니네 집에 가면 언니는 남자와 있고, 갈 곳이 없는 영자는 눈을 감고 보이는 그곳이 미래라는 것에 힘겹기만 하다. 일은 너무나 고되고 월급을 받아도 외상값을 갚고 나면 동전 몇 개만 남는 인생이다. 버스 안내양을 하지만 생명이 보장되지도 않았다. 사람들을 밀어 넣고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일을 하는 영자. 버스 앞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끼어들고 급브레이크에 영자는 버스에서 튕겨 나가 교통사고로 그만 한쪽 팔을 잃고 외팔이로 몸을 파는 인생으로 전락하는 영자.
그런 영자를 평생 자신의 여자로 알고 식모를 할 때 첫눈에 반해 끝까지 책임지려는 창수. 월남 전 3년 내내 창수는 영자만을 바라보며 제대를 하고 돌아왔다. 창수는 목욕탕 보일러 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손님들의 때를 밀며 번 돈으로 영자의 성병도 고쳐주고 매일매일 데리고 병원에 간다. 그럼에도 한 번 굴절된 영자는 삐딱하게만 창수를 대하고 마음을 열지 않는다. 다른 남자의 품에서 돈을 버는 자신의 사랑을 바라보는 창수는 그럴수록 돈을 벌어 영자와 함께 살기를 바란다.
영자의 인생, 외팔이라 재수가 없어 찾는 남자 손님도 드물고 팔을 한쪽 잃었을 때 보험금으로 받은 삼십만 원은 집에 있는 동생들을 위해 다 보내고 자살을 하기 위해 기찻길에 뛰어들지만 죽지도 못하는 인생.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힘겹고 버거운 영자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런 영자를 꽉 붙들고 있는 창수. 창수는 열심히 보일러실에서 의수를 만들어 영자에게 끼워주고, “영자 거울을 봐, 이제 옷이 헐렁이지 않을 거야, 내가 돈을 더 벌어서 스테인리스로 된 팔을 사줄게.” 일편단심 창수에게 그만 안겨 울어 버리는 영자.
창수는 목욕탕 문을 닫고 주인 몰래 자신만의 세계에 영자를 부른다. 아무도 없는 목욕탕에 영자를 위해 뜨거운 물을 받아서 초대한 영자의 등을 밀어준다. 이 장면은 너무 아름답게 나온다. 목욕탕의 뜨거운 수증기가 따뜻한 빗물처럼 그들에게 쏟아진다. 창수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영자의 등을 밀어준다. 가만있어 봐, 때가 나오잖아. 천하의 영자는 창수를 보면 자꾸 부끄러워지고 자꾸 남들의 눈치를 보며 여자 같아진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여기에서 그만, 제발 여기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했을 때 끝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는 사건에 휘말리고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영자는 자신이 창수의 앞길을 막는 것 같다. 창수에게서 떠나는 게 창수를 도와주는 길이다. 결국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창수는 바람대로 양복 기술을 배워 양복점을 연다. 친구가 찾아와서 영자의 소식을 알려주고, 영자의 소식을 듣고 찾아간 곳은 허름한 곳의 거지촌. 거기서 창수는 예쁜 딸을 안고 있는 영자를 본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한쪽 다리를 잃은 남편이 있다. 하지만 영자는 행복해 보인다. 그래, 영자가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영화는 끝난다. 소설을 원작으로 소설은 결말이 비극이지만 그래도 영화는 완전한 비극은 아니다.
영화는 교차편집 형식으로 나온다. 처음 등장하는 영자는 세상 다 산 듯한 모습의 집창촌의 여성이다. 거칠고 무서울 게 없는 영자는 경찰서에서 우연히 창수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영화는 과거로 돌아간다. 창수와 영자가 처음 만나게 된 시절로. 아주 잠깐이지만 두 사람은 풋풋한 모습으로 만두를 먹는다.
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를 꼽자면 각본이 무척 좋다. 김승옥이 각본을 썼다. 그리고 영자의 연기다. 얼마 전에 죽은 송재호의 청춘 어린 모습을 볼 수 있다. 보일러실의 창수와 함께 같이 나오는 늙은이가 최불암인데 두 사람은 실제로 한 살 차이다. 한 살 차인데 한 명은 20대 청춘으로, 한 명은 노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영자의 다리 한쪽이 없는 젊은 남편은 이순재다. 원작에서 각색이 되었지만 김승옥은 정말 이야기를 잘 만들어낸다. 시대에 맞게 캐릭터에 맞게 정말 생명을 확실하게 불어넣어 준다. 분명 영화인데 소설을 읽은 것 같은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였다.
우리가 사랑한 여자, 우리가 버린 여자 영자라는 문구가 인상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