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오기 전 어느 봄날, 축구와 농구 경기를 쫓아다니며 보는데 우리는 참 이상한 경기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축구는 골대가 굉장히 큰데 점수가 쉽게 나지 않는다. 농구골대는 아주 작은데 점수가 많이 난다.


우리 인간의 몸에 달린 손과 발의 차이가 이런 경기를 만들어 냈다. 만약 발이 손처럼 진화를 하여 같아진다면 어떤 경기가 나올까. 그렇게 되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생활은 또 어떻게 변할까. 진화가 된 발은 손처럼 더 이상 신발 속에 들어가 있기를 거부할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던 예전 어느 날이 있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결정적인 한 장면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구구는 고양이다 1’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한 장면이 있었다. 우미네코가 되고픈 꼬마 아이는 손과 발의 경계를 허물었다. 아마도 꼬마 녀석은 바다고양이가 되어 인간에게서 자유로워져서 날아가고 싶은 것이 아닐까.


구구는 고양이다, 에는 손과 발의 경계가 모호한 고양이가 잔뜩 나오고 그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도 가득 나온다. 코지마를 비롯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어쩐지 고양이를 닮았고, 이 세상 어디에서 진흙투성이가 되더라도 마음껏 세상을 즐겨도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생활이 시간을 타고 흘러간다.


구구는 코지마에게 두 번째의 고양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사랑받는다. 첫 번째에게 성실하지 못한 자신을 떠올리며 두 번째에게는 더 많은 사랑을 붓는다. 그래서 어쩌면 인간이란 실패한 사랑을 만회하려고 다시 시작하는 사랑에서는 앞서 못한 사랑을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불혹을 넘겨 더 나이가 들어 불륜에서 가장 타오르는 무서운 사랑을 하는 것일까.


손과 발의 경계가 모호한 고양이는 앞발과 뒷발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우리고 손과 발이 두 번째가 되면 더 사랑을 받을까. 손이 중요할까 발이 더 중요할까. 닭이 먼저일까 알아 먼저일까. 하지만 우리는 손과 발의 중요성을 까맣게 잊고 살아가고 있다.


봄날의 날처럼 부옇고 코가 간질거리는 날이다. 고양이 털 속에 숨어 들어가 고양이를 괴롭히며 졸음에 겨워 하루를 비비는 벼룩이 되고픈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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