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끊었던 라디오를 듣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저녁에는 배철수의 음캠도 듣고 있다. 배철수 음캠을 거의 십 년 넘게 매일 들었는데, 그래서 배철수 음캠에 참여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선물이 없는 배캠에서 선물이 오기도 했다.


 라디오를 다시 들으니 그 세계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변화는 있으나 변함없었다, 참 신기하게도. 4년 만에 다시 라디오를 듣게 되었는데 라디오 속의 오전과 저녁은 세상의 혼잡과 환란과 무관하게 편안하고 평안했다. 그게 마음에 든다. 오전과 저녁의 디제이의 멘트는 꼭 새끼 고양이의 털과 발바닥처럼 부드럽고 헤어지기 싫은 기분이다.


그런데 실시간으로 반응을 받고 커피세트 같은 걸 선물로 바로바로 날려주니까 뭔가 듣기 오그라드는 댓글도 많다. 가령 어떤 노래를 디제이가 틀면 '어머 그 노래 대박 사건, 우리 사무실 전부 떼창으로 따라 불렀답니다, 모두가 하나 같이 대박이라고 외쳤어요, 다 미쳤어요'라는 멘트를 읽어주고 커피 선물을 쏜다. 듣고 있으면 오글거리기도 하고 거짓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택을 받을 수 없으니 튀거나 오버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된 요즘이다. 작금의 시대에는 모든 부분이 그렇다는 사실이 재미있으면서 좀 씁쓸하긴 하다.


나는 실시간으로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를 듣지 못했는데 요즘 유튜브로 그걸 들을 수 있어서 왕왕 듣게 된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는 밤 11시에 했기에 시끄럽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다. 그리고 이종환이 어디서 누구의 엽서입니다, 라며 '엽서'를 읽어준다. 엽서는 사연과 이동거리가 길며 기다리는 동안의 두근거림이 있다. 그리고 신청하는 노래 역시 주로 사람의 마음과 온도,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의 이야기를 한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를 실시간으로는 감상하지 못했지만 유튜브를 통해 듣고 있으면 보브 딜런과 제네시 조플린과 지미 핸드릭스의 연주를 들으며 음악이 던지는 세계에 몸이 희석되는 기분과 흡사하다. 사연을 들어보면 요즘과는 달리 문학적인 표현이 많고 그에 따른 문학을 소개하기도 한다. 릴케가 죽고 못 살았던 루 살로메의 글 한 구절을 엽서에 써 보내고 이종환이 읽어주기도 하고, 클래식도 들려준다. 이종환의 목소리는 그 영역에서 헤리티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종환은 좀 독불장군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방송을 많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뭐라 하지 못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음주로 방송을 하는 건 금지되지만 이종환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엇이 있었던지 술을 마시고 디제이를 했다. 그렇다고 해서 횡설수설하지는 않았지만 보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방송이라는 게 빵구가 나면 아주 큰일로 확산하기 때문이다.


이종환 하면 판피린 물약 같은 판콜에이와도 뗄 수 없다. 항상 손을 뻗는 곳에 한 박스씩 구비를 해두고 한 병씩 꺼내 마셨다고 한다. 판콜에이는 달달하면서 뒷 맛이 주는 기묘함 때문에 한 번 중독이 되면 계속 찾아 마시게 되는 무엇이 있다. 바카스와 다르지만 비슷한, 그래서 한 병을 마시면 초기 감기를 잡고 좋지만 두 병 이상은 무리가 올 수 있다. 이종환은 디제이 맨트가  하나 끝나면 누구야,라고 불러서 판콜에이를 가져오라고 해서 자주 마셨다고 한다.


이종환은 청취자에게 폭언을 해서 '지금은 라디오 시대'를 하차하기도 했고 후에 '이종환의 음악살롱'을 했지만 결국 음주방송으로 하차해야 했다. 이종환은 73년에 종로에 음악 감상실 '쉘부르'를 열어서 가수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출신 가수들이 어니언스, 이수만, 허참, 주병진, 남궁옥분, 변진섭 등이다. 실시간이 없었던 그 오래전, 오직 엽서로 청취자들과 소통을 했던 라디오에서 이종환의 목소리는 김중식 시인의 시에서 궤도를 이탈한 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https://youtu.be/s0MokpD2b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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