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안에 있는 오래된 국밥집에는 대체로 어르신들이 늘 앉아서 자리를 채우고 있거나 밤이면 아버지들이 혼자서 머리를 숙여 소주와 함께 국밥을 먹는다. 요즘은 여자 먹방 유튜버 덕분에 프랜차이즈 국밥집이나 24시간 하는 국밥 잡에는 간간이 여성이 혼자 국밥을 먹기도 하지만 시장통 안에 있는 국밥집의 꼬릿 한 냄새가 나는 국밥 집에는 대체로 남자들, 나이가 있는 남자들 뿐이다.


시장이라는 곳이 정겹기도 한 곳이지만 동시에 모두가 철수한 밤이면 무서운 곳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이 드문, 장사하는 곳도 몇 집 밖에 없고 컴컴한 전통시장의 깊숙한 곳은 적막에서 오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모두 다 같이 밝다가 한꺼번에 어두워지는 마트에서의 적막에서는 알 수 없는 느낌이다.


내가 있는 바닷가에도 전통시장이 몇 군데 있는데 모두 오래되었다. 전통시장의 국밥집에는 젊은 남자 손님도 없다. 주로 아버지들이다. 주인은 거의 할머니에 가까운 여성이다. 관광지의 사람이 많이 몰리는 위치한 국밥집의 주인이 남자인 경우는 있지만 전통시장 안의 돼지국밥집의 주인은 보통 할머니들이다. 오랫동안 해 온 세월의 흔적을 손가락 끝에 훈장처럼 달고 있다.

돼지국밥은 (비빔밥처럼) 먹는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맛이 다 다르다. 순대를 넣는 곳도 있고, 새우젓이나 깍두기 국물, 밥을 말아먹는 사람, 국수사리를 곁들이는 사람, 술안주로 먹는 사람, 마늘 다진 양념을 넣는 사람, 맑은 국물을 그대로 먹는 사람, 다 다르기 때문에 국밥을 단지 국물을 우려내는 스타일로 맛을 가늠할 수는 없다.


전통시장의 구석진 곳에 위치한 국밥집은 밤으로 가는 시간의 길목에 아버님들이 가장 많다. 저녁시간에는 숨차게 보낸 하루의 시름을 달래는 시간이다. 술잔이 오고 가고 국밥을 퍼 먹는 소리가 훈훈하게 들린다. 그런 정경 속에 끼여 국밥을 먹는 재미가 있다. 그때 문이 열리고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들어왔다. 국밥을 먹고 있는 어르신들이 일제히 문쪽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국밥을 먹고 소주를 붓는다. 작은 공간의 테이블은 꽉 찼는데 나는 혼자 먹고 있으니 주인 할머니가 합석을 하라고 한다.


여자는 맞은편에 앉아서 물을 마신다. 눈이 마주치니 고개를 살짝 까닥인다. 여자는 레인코트 같은 옷을 입었다. 허리를 묶을 수 있는. 그래서 잘록한 허리가 돋보였다. 높지 않은 힐을 신고 있었고 색이 들어간 안경을 썼는데 들어오니 벗었다. 머리는 진한 갈색에 어깨 밑으로 내려간 긴 머리에 앞머리가 이마를 비켰고 물컵을 집어 드는 손가락에는 살이 없다. 전혀 시장의 국밥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에, 어울리지 않는 여자 같다.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백도 없다. 그저 코트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오다가 손을 빼서 문을 열었을 모양이었다.


여자는 태연하게 국밥과 소주를 주문한다. 자연스러운데 말투가 여기 말투가 아니다. 지방 사람이 아니다. 그때부터 나는 생각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가방도 없이 이 저무는 시간에, 거기에다가 시장통 안에 있는 이런 허름한 국밥집에, 그리고 꼬릿 한 냄새가 나는 국밥까지, 여기 사람도 아닌 것 같고, 가출을 할 나이는 더더욱 아니고.


무엇보다 앞에 여자가 가만히 앉아 있는데 국밥을 후루룩 먹을 수가 없었다. 소주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으로 털어 넣었다. 여자는 휴대전화도 보지 않고 약간 비스듬히 의자에 앉아 어딘가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큰 쟁반에 소주와 함께 국밥이 나오고, 여자는 소주병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봤다. 지역 소주라서 여자가 마시던 것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국밥이 나오니 숟가락으로 국물을 살짝 떠먹어 보고는 새우젓과 마늘 양념장으로 간을 한 다음 다시 숟가락을 몇 번 국물을 떠먹는다. 음, 맛있네요.라고 했다.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일까. 혼잣말일까. 고개를 들고 말했다면 모를까 고개를 숙이고 국물을 떠먹고는 “맛있네요”라고 내뱉은 말은 도무지 혼잣말인지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이 허공을 떠다니기만 했다.


그러더니 국밥 안에 있는 밥도 한 숟가락 떠먹고 소주를 따라서 한 잔 마셨다. 이 국밥 집은 토렴 형식이라 국에 밥이 말아져 나온다. 제가 사는 곳에는 이런 맛의 국밥이 없거든요. 라며 확실하게 나에게 말을 했다.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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