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옥이모로 불리는 카일리 미노그의 특징이라면 토란잎에 맺힌 물방울 같은 투명한 목소리에 있다. 배우로도 인기가 있었던 카일리 미노그는 88년에 같은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제이슨 도노반과 부른 듀엣 곡 ‘이스페셜리 포 유’를 불러 더 많은 인기를 얻었다. 두 사람은 그 덕분에 사랑에 빠지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제이슨 도노반은 잘 생긴 얼굴로 노래도 잘 불렀고 카일리 미노그 역시 또랑 한 목소리로 인기가 좋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2018년에 두 사람은 다시 한 무대에 만나 '이스페셜리 포 유'를 부른다. 이제 중년의 아저씨가 된 제이슨 도노반은 예전만큼 멋지거나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두 사람의 장면은 팬들에게 감동적이었다.


이 노래는 일본의 여성 듀엣 윙크가 리메이크해서 아시아 쪽에서는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카일리 미노그의 첫 앨범 ‘카일리’ 앨범을 구입했을 때가 생각난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서울의 고모댁에 갔던 적이 있었다. 아직은 어린 나이였는데 어째서 혼자 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없다. 그러고 보면 학창 시절(중학생, 고등학생)의 겨울 방학에는 늘 서울에 올라갔다. 가서 노인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런 짓은 군대에 갔다 와서도 이어졌다. 대학교 때 한 번은 동해를 따라 여행을 다니디가 거지 같은 몰골로 마지막에는 서울에 떨어져서 갤러리아 백화점에 들어갔었는데 그때 신고 있던 신발이 고무신이었다.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여차여차해서 그렇게 되었다. 친구가 입대하기 전에 신림동 순대타운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가서 좀 도와주고 주인에게 순대와 고기를 이만큼 얻어서 놀이터에서 밤새도록 술과 함께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잠은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학병원의 대합실에서 쪽잠을 자기도 했다. 


중고등학생 때 서울에 갈 때는 밤새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고요한 기차 칸에서 카세트 플레이어로 듣고 싶은 음악을 잔뜩 들으며 밤을 꼬박 지새웠다. 이문동의 고모 댁에는 사촌 형이 있었는데 당시 대학생이었다. 인하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현재는 미국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옆으로 스쳐 지나가도 서로 못 알아볼 것이다. 친척이라는 게 연락이 끊어지면 그렇게 된다. 고모들 중에 유난히 나를 좋아해 준 이문동의 고모는 아들들이 많이 있음에도 내가 올라가면 얼굴이 짜브라질 정도로 꽉 안아 주었다. 그랬던 고모도 몇 해 전에 죽고 말았다. 이문동의 고모댁은 오래된 한옥이었는데 마치 티브이 속에 나오는 대가족이 모여사는 그런 집의 모습이다. 마당이 있고 ㄷ자형의 기와집이 있는 그런 형태의 집이었다. 막내 사촌 형이 대학생이었는데 나에게 중학생이 된 기념으로 선물을 하나 사줄게 뭐 갖고 싶어?라고 물어서 대뜸 카일리 미노그요. 해서 레코드 가게에 가서 집어 온 기억이 있다.


사촌 형은 청바지에 가죽재킷을 입고 운동화도 세련되었다. 웨이브 진 머리칼에 잘생긴 얼굴에 무엇보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유덕화의 젊은 시절 모습이었다. 사촌 형은 음악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다. 당시 서울음반의 앨범을 구입하는 게 좋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서울음반에서 녹음한 음악이나 수입한 음악이 음악 적으로 풍부한 음을 낸다고 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나고 나서 다른 회사의 앨범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아직도 음이 깨지지 않고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어디를 가고 싶냐고 하기에 나는 아주 큰 레코드 샵과 극장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사촌 형은 나를 데리고 테크노 마트 같은 아주 큰 대형 레코드 샵과 대한극장에서 영화를 한 편 보여주었다. 자칫 서먹서먹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음악에 대해서 서로 주절주절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나이차와 지역차 내지는 어떤 수준 차이를 조금은 좁힐 수 있었다. 영화는 무슨 영화를 봤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오래전 대한극장에서 벤허가 상영했을 때 중간에 쉬는 시간을 두었고, 그 시간에 관객들에게 빵과 우유를 제공한 일화를 알고 있어서 대한극장에서 영화를 한 번 보고 싶었다. 극장보다 대형 레코드 샵에서 엄청난 음반을 구경하고 음악을 들어본 기억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사촌 형은 음반과 음악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 이야기는 티브이나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중학교에 올라가게 되면서 슬슬 음악감상실의 출입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 카일리 미노그를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자주 음악감상실에 들락거리게 되었고 시끄럽고 강한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 유리창을 박살 낼 것 같은 시끄럽고 고출력의 강력한 메탈을 듣는 가운데에서도 그 중심을 잡아준 몇 개의 음악이 있다.


카펜터즈가 그랬고 아바가 그랬고 카일리 미노그가 그랬다. 이렇게 신나게 노래를 부를 수가 있나, 할 정도로 카일리 미노그의 노래는 그 투명하고 맑은 목소리로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카일리 미노그가 로코 모션을 부르면 온 세계가 들썩일 것만 같다. 음악감상실에 들락거리게 되면서 소설책보다는 음악 잡지책을 더 들춰보게 되었다. 지금의 임진모의 칼럼도 그렇지만 박은석 음악평론가의 칼럼을 자주 읽었다. 음악감상실의 디제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팝 가수들의 이야기는 늘 나의 일 순위였다. 그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카일리 미노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카세트테이프 앨범 속지를 펼치면 앞면에는 가사와 함께 뒷면에는 카일리 미노그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다. 빼곡한 그 글을 유심히 읽고 학교에 가서 거짓말을 보태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으면(나는 아마 그때부터 거짓말이 늘었나 보다) 소위 음악을 하는 아이들과 음악에 빠져 있는 아이들이 모여들어서 그래서? 그런데? 같은 말을 했다. 학교에서 사진부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또 음악을 하는 아이들과도, 문학부 아이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그건 나에게 있어 몹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당시에는 강렬한 음악을 제외하고는 흥!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팝 가수나 팝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좋아했다.


카일리 미노그는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를 지치지 않고 열정을 더 가지게 만드는 건 아무래도 암을 이겨내고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뀐 삶 때문일 것이다. 이후 반짝이고 예쁘기만 했던 카일리 미노그는 암 투병 환자들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Crystallize라는 곡을 만들어 암 투병 환자를 위해 수익금 모두를 기부하기도 한다. 한국에 있는 카일이 미노그 팬들은 모두가 그녀를 민옥 이모라 부르며 응원을 하고 있다.


이 먼 곳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노래를 들어가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걸 그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인간의 어떤 알 수 없는, 설명 불가능한 텔레파시 같은 것들이 모여서 그녀를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쓰러지더라도 주저앉지 않고 죽 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https://youtu.be/yalM-2ih7RU 제이슨 도노반과 부른 이스페셜리 포 유


https://youtu.be/u2RdlY-X9UU 시간이 흘러 2018년에 다시 만난 두 사람


https://youtu.be/POWsFzSFLCE 최고일 때의 로코 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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