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없는 나는 어렸을 때 누나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친구들은 신기하게도 몽땅 누나가 있었다. 대신 여동생이 있는 나를 여동생이 없는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친구들의 누나는 두 살 터울이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친구 녀석도 집으로 놀러 오면 나의 여동생과 함께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곤 했다. 여동생은 늘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았고 친구들이 놀러 오면 동생 옆에 앉아서 같이 종이 인형을 들고 옷을 입히고 동생의 장난을 맞추어주었다. 거참.

친구들은 4명이 있었고 그 친구들에게는 두 살 터울의 누나가 있었다. 누나들과는 다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 친구의 누나와는 친했다. 고작 두 살인데 나를 마치 아기 대하듯 대하는 누나였다. 우리는 어느덧 자라서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어도 요즘처럼 중2병 같은 것은 없었다. 친구는 키가 중학생이 되면서 커져갔다. 늘 붙어 다니고 자주 붙어있었지만 친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며 놀았는지. 뭘 하면서 놀았는지 대체로 기억이 없다. 

하지만 그 친구의 집에 놀러 가면 누나가 있었고 누나는 누나답게 우리를 앉혀 놓고 무서운 영화를 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요컨대 나이트 메어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영화가 1시간 30분 짜리라면 이야기는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친구는 지겨워서 거의 체념 상태에 돌입해서 일종의 zilch 상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기에 누나가 해주는 영화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었다. 게다가 영화를 본 것보다 더 세세하고 무섭게 이야기를 리뷰 해 주었다. 웍 하면서 점프 스퀘어 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공포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의 묘미는 웍! 하며 놀라게 하는 것이다. 그에 맞게 나는 반응도 잘했다.

보통 누나의 이야기를 들었던 때가 여름이거나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나날이었다. 오랜 시간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허기가 졌다. 그러면 누나는 그 작은 손으로 부침개를 해준다며 프라이팬이며 불판을 꺼냈다. 친구는 그냥 라면을 끓여 먹기를 바랐지만 밀사의 눈초리를 만들어 노려보는 누나의 시선에 친구는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누나는 마치 어제 배운 것을 오늘 실전해보는 것처럼 밀가루를 물에 풀어서 정구지를 씻고 깻잎을 씻어서 밀가루 옷을 입혔다. 

하지만 엄마들이 하는 것만큼의 모습이 아니었다. 깻잎은 두 번 정도 접혀있고 밀가루 옷은 여름옷처럼 아주 얇게 겨우 붙어있었다. 밀가루에 소금이라든가 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맛에서는 완전히 멀어졌다. 간장을 찾지 못해서 소금에 찍어 먹었다. 자칫 많이 찍으면 크 하면서 짠맛에 얼굴이 일그러지기도 했다. 그래도 누나는 꿋꿋하게 앉아서 모양과 맛에서 멀어진 깻잎전과 부추전을 계속 구웠고 나는 굽는 족족 집어 먹었다. 친구는 나에 비해 덩치가 두 배는 컸지만 누나가 만든 부침개는 잘 먹지 않았다. 나를 보며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먹으면 탈 난다는 말인가? 친구는 잘 먹는 나를 희한하게 쳐다보았다.

그때 왜 누나가 깻잎전이랍시고 중학생 때 우리한테 만들어 줬잖아?

내가? 그럴 리가?

아이 둘의 학부모가 된 누나는 가끔 일 때문에 근처에 왔다가 들린다. 그러면 그때 이야기를 하면 내가 그랬나? 같은 표정이다. 

아이들 모아 놓고 왜 영화 이야기 많이 들려줬잖아. 그때 누군가 한 명이 일어나면 누나가 이렇게 막 쏘아보고(웃음).

그때 누나는 깻잎 전을 한 번 해봐야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우리에게 허기를 잊게 해 주려고 그랬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기억에는 부침개의 추억으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날이 덥고 에어컨이 없어서 누나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가면서 동생들에게 직접 구운 부침개를 먹이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으니 그런 마음이 가득할 때였을 것이다. 직장을 나간 엄마와 아빠가 돌아오시기 전에 이 모든 것을 원래의 모습처럼 되돌려 놔야 하기에 더 마음이 급해서 악착같이 붙 앞에서 땀을 흘리며 부침개를 구웠다. 

나는 그때 누나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고조에 달했다. 여동생은 어떻든 이렇게 나를 위해서 뭔가를 만들어 주지는 못했을 때니까. 아주 작고 연약해서 늘 울거나 종이인형 놀이를 같이 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친구의 집에 가면 언제나 누나가 있었고 영화 이야기를 해주었고 새우깡 하나도 접시에 담아서 사이다를 컵에 부어서 내주곤 했다. 부침개를 먹다 보면 그런 일들이 휙휙 지나가는 것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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