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나오는데 엘리베이터 안까지 계란 프라이의 냄새가 확 번진다. 그 맛을 알고 있기에 계란 프라이 냄새는 위장을 양손으로 쥐어짜게 만든다. 일요일 오전이라면 어느 정도 방어적인 자세로 계란 프라이 냄새를 견뎌낼 수 있지만 평일의 아침에 느긋하게 번지는 계란 프라이 냄새는 안달 나게 만든다.


달걀을 몹시 좋아하는 박찬일 요리사는 자신의 책에서 ‘인간사 수많은 음식들이 관통하는 하나의 대명제, 왜 몸에 좋은 건 맛이 없나. 다시 말해서 몸에 나쁜 건 맛이 좋다는 뜻이다. 담배를 떠올려보라, 한 대의 여유, 일상의 도피, 도파민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는 만족감, 특히 에스프레소 커피와의 절묘한 궁합'라고 했다.


박찬일도 주치의에게 달걀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달걀에 대한 아쉬움을 토해냈다. 달걀은 삶은 계란으로 먹는 것도 좋다. 양적으로 포만감을 준다. 보통 계란 요리라고 하면 어딘가에 곁들여 먹는 음식이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삶은 계란은 오롯이 그 자체의 맛으로 즐기는 주인공이다. 어딘가의 옵서버가 아니다. 사람은 계란을 입안에 가득 집어넣고 볼을 볼록하게 만들어서 먹는다. 그리고 목으로 넘기면 버석하고 갑갑함이 목을 메이게 하며 조이는 자극을 준다. 이 기분이 미묘하게 삶은 계란의 맛을 더 살린다. 역시 사이다도 필요하다.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 견문록을 읽어보면 서문에서도 ‘아버지가 삶은 달걀 껍질을 까주신다. 내가 하나를 먹으면 또 하나를 까주신다. 아, 얼마나 행복한지. 그 달걀도 홀랑 입속으로 넣는다.' 달랑 두 줄이지만 요네하라의 글 속에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위트와 추억이 있다.


인간이 언제부터 달걀을 먹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달걀이 인간계에 들어옴으로 해서 요리의 신기원이 열렸다고 박찬일은 말했다. 과자, 아이스크림에는 반드시 들어간다. 노른자와 흰자로 분리되는 두 가지 다른 성질 덕분에 인간의 화려한 미식의 세계가 바다처럼 펼쳐진 것이다.


크램브륄레나 슈크림, 커스터드를 넣은 샌드가 노른자의 마력이라면, 한없이 부풀어 올라 미식의 허영을 충족시켜주는 수플레, 중독성 강한 마카롱 같은 과자는 흰자의 무한 변신으로 가능해졌다고 한다.


아쉬운 건 요즘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주문하면 예전처럼 맛있는 계란 프라이를 보기 힘들다. 웍이라는 거대 무쇠솥에 기름을 두르고 튀기듯 프라이를 만들었던 예전에 비한다면 요즘 프랜차이즈 중국집에서 스크램블이 올라온다.


박찬일 요리사의 말처럼 놀란 듯 튀겨진, 흰자의 겉은 바삭하지만 질기지 않고, 노른자는 밑면으로부터 윗면까지 익힌 정도가 그러데이션으로 퍼진, 웰던에서 레어까지 노른자의 층위가 만들어진 프라이를 오늘 같은 날 먹고 싶다. 거기에 시원한 칼스버그를 곁들이면 엄청난 위로를 받는다. 우리를 위로해주는 건 주위에서 늘 볼 수 있는 아주 흔하디 흔한 하찮은 것들일지도 모른다. 내 모습이 하찮고 별 볼 일 없다고 자책하지 말자, 나 역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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