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은 쌉싸름한 맛이 날수록 맛있다. 쌉싸름한 맛은 쓴맛에 가깝다. 그러니까 도토리묵은 쓴맛이 나면 좋다. 쓴맛이라 하면 어린 시절 가루약을 먹고 나서 느꼈던 쓴맛이 강해서 쓴맛을 일정기간 거부하게 되는데 도토리묵에서 쌉싸름한 쓴맛이 빠지면 이상하게 맹숭맹숭하다. 도토리 묵을 만드는 방법을 보면 복잡하다. 도토리묵에서 쌉싸름한 맛이 많이 나려면 도토리가 들어가는 비중이 높고 많아야 한다.


도토리묵은 양념장에 찍어 먹어서 쌉싸름한 맛과 간장의 맛이 어우러진다. 만약 도토리묵만 야금야금 먹게 되면 쓴맛이 많이 나는데 이대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많이 먹을 수는 없다.


신맛이 좋아서 뜨겁고 맑은 국에는 식초를 타서 먹게 된다. 국물을 넘기고 나면 따라오는 식초의 그 신맛이 좋다. 김치도 신김치가 더 좋다는 사람이 있다. 신김치의 그 신맛이 사람을 사로잡는 것이다.


라면을 끓일 때 방울토마토를 넣어서 끓이면 국물에서 신맛이 난다. 토마토에서 나오는 그 신맛이 라면에 스며든다. 라면이 맛이 한층 오른다. 짬뽕에도 토마토를 넣어서 먹으면 그렇다. 컵라면을 끓여서 넣어서 먹어도 마찬가지다.


아 미치겠다. 어쩌다가 쓴맛, 신맛에 빠져버린 걸까. 이 두 가지를 빼고도 단맛, 매운맛, 짠맛이 있는데 어째서 단맛 같은 것에 빠지지 않고 쓴맛이라니. 도대체 쓴맛에 길들여져서 도토리묵은 쌉싸름한 맛이 많이 나는 것을 찾아서 먹고 있다.


단맛을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너무 달면 머리가 아프다. 달다 앞에 ‘너무'가 붙으면 늘 그렇게 된다. 이전에는 ‘너무'가 부정적으로 쓰인 부사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좋아'라고 쓰게 되면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너무 밝고, 너무 깊고, 너무 크고, 너무 높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정적이다. 너무 아름다운 것도 그렇다. 지금 이전의 세기를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너무 아름다운 미질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아름답다는 이유로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한 여자들도 있다.


세상을 알면(내가 알면 얼마나 알겠냐마는) 알수록 기이하고 알 수 없다. 도대체 쓴맛과 신맛에 길들여져 라면을 끓일 때 토마토를 집어넣고 있는 나를 보면 이게 뭔가 하면서도 다 끓이고 나면 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식초를 넣고 있다.


쓴맛과 신맛에 길들여지면 좋은 것이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생기면 집안의 생활구조가 아이들 위주가 된다. 그러면 반찬이나 밥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위주로 식탁이 차려지는 경우가 많다.


하루는 돈가스, 하루는 파스타, 하루는 뭐뭐. 그럴 때 도토리묵을 사 와서 딱 꺼내놓으면, 그것도 도토리가 아주 많이 가미된 도토리묵을 식탁 위에 놓으면 아무도 먹지 않는다. 그럴 때 냠냠하며 맛있게 먹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 위주로 식탁이 차려진다고 불평하지 않아도 되고 나도 좋고 누이도 좋다. 도토리묵에 밥을 비벼 먹어보자.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구석에서 먹고 싶은 묵 비빔밥을 야금야금 먹어도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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