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눈을 떴는데 뭔가 이상하다. 아주 이상한 곳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왼쪽 다리는 접혀있고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몸을 조금만 움직이려 하면 몸은 밑으로 떨어지려 한다

겨우 밑을 보니 밑은 캄캄하고 보이지도 않는 천 길 낭떠러지고 주위는 아주 위험한 장소라는 것을 감지한다. 가파르게 경사가 져 있고 발밑으로는 칠흙 같은 어둠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들리는 아주 소름 돋는 정체불명의 소리. 여자는 공포를 느낀다. 여자는 이 장소를 벗어나려고 생각했지만 기이하게 깎아지른 경사면의 미끈거리는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이 곳에서 자세를 바꾸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손을 조금만 움직여서 몸을 살짝 들기만 해도 밑으로 쓸려 내려갔다

여자는 자신의 오른손에 심한 고통을 느끼고 오른손을 보니 살점이 떨어져 나가있고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여자는 고통을 참아내며 피가 흐르는 점막의 오른손바닥으로 미끈거리며 까칠까칠한 벽을 짚고 천천히 일어나려고 한다

몸에 있는 힘을 주고 그 힘을 전부 오른손과 구겨진 왼쪽 다리에 나누어 몸을 아주 조금 위로 밀어본다.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 짜내 겨우 몸을 조금 위로 올린다. 그리고 오른손은 더 살점이 찢겨져 나가고 아픈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여자는 조금 몸을 올리면 밑으로 다시 쓱 미끄러지고 그럴 때마다 손바닥은 고통스럽고, 그리고 여자가 계속 몸을 위로 밀어올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계속 추락하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기괴한 구조물의 벽에는 손바닥의 피 묻은 자국이 보인다

여자는 정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전부 쥐어짠다. 그래야 몸을 아주 조금, 아주 조금 위로 밀어 올릴 수 있다. 기괴하고 기묘한 구조물에 몸을 기댄 채 비를 맞으며 생각에 잠긴다. 여자는 어떻게 될까

이 영화는 11분짜리 단편 영화 ‘커브’다. 대사가 없다. 하지만 영화는 몰입도가 굉장하다. 아마도 한 번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본 사람이라면 이 절망을 넘어 멸망에 가까운 짧은 영상에 깊게 빠져들 것이다. 근래에 본 단편영화 중에서는 가장 강렬하고 충격적이었다. 결말은 보는 이들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는 열린 결말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를 보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친구는 감독에게 ‘내 발밑에 지구가 입을 벌리고 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어. 하루 종일 추락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야하는 긴장의 연속이었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밑으로 떨어지는 건 쉽다. 아주 칠흙 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건 너무나 쉽지만 그곳을 나오기 위해 너무나 어렵게 발버둥을 쳐야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이 이입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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