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
일하는 건물에 뷰가 좋은 카페가 들어서서 오전에는 이 곳에서 흐르는 강을 보며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이렇게 앉아있으면 비현실적이며 논리에서 조금은 멀어진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아주 짧다. 강물과 하늘은 늘 그 자리에 있다. 구름은
하늘에서 잠시 보였다가 사라진다. 같은 구름은 없다. 그런 풍경에 절대적인 철학적 사고가 있지는 않다. 그저 자연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자연은 늘 ‘음, 그래’같은 표정으로 말이 없다. 시선을 향하고 있는 곳은 가을에 성큼 접어든 아프게 물든 야외의 모습이지만 어쩌면 나는 내
마음 속, 내면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늘 그런 훈련을 해왔다.
올해도 두 달 남짓 남는 동안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올해 이전의 해보다 조금은 덜 달렸다. 10일
정도를 쉬었다. 재작년에는 이틀을 빼고 몽땅 달린 걸 보면 확실히 올해는 여러 날을 빼먹었다. 300여일 중에 10일 달리지 못한 게
대수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도 매일 조금씩 달리는 사람은 그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가 오면 달리지 않는 대신 우산을
쓰고 평소에 달리는 거리의 반 정도를 음악을 들으며 평소 걸음걸이 보다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달린다고 해도 하루키처럼 대단한 러너 식의
달리기도 아니고 긴 거리를 달리지도 않는다. 달리다가 힘들면 걷고, 강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고기를 낚아 올리면 잠시 서서 박수를 치기도
하고 예쁜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부부를 구경하기도 한다.
조금씩 달린다고 해도 보통 1시간 30분 정도를 달린다. 딱히 정해 놓은 시간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그런 체제가 신체에 각인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달리는 마지막에는 늘 서서히 오르막이 있는 코스를 집어넣는다. 오르막은 대체로 1킬로미터나
2킬로미터다. 그 구간은 멈추지 않고 달리는데 그때는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온다. 그 고통이 힘들면서 그 고통을 느끼는 것은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매일 달리려면 시간이 날 때 달리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고 어떻든 시간을 내야한다. 그렇다면 매일 달리고 싶은
마음이 달리기 직전에 드는 것인가 한다면 오히려 그 반대다. 매일 달리기 싫은 마음이 달리기 직전까지 유혹한다. 백가지의 달리기 싫은 이유가 옷
끄댕이를 잡아당긴다. 달려야 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 밖에 안 된다. 하루키의 말처럼 몇 가지 안 되는 그 이유가 한 인간이라는 형태를 완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달리는 것도 10년 정도를 넘어서게 되었다. 나는 비극적인 체질을 타고 났다. 한
달을 잘 관리하다가 한 끼만 제대로 먹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신체는 그렇게 나를 배신했다. 비극적인 체질을 타고 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비극적인 내 체질을 타고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나 같은 게으른
인간에게도 일종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매일 일정한 시간이 되면 일정한 거리를 입 닥치고 조금씩, 조금씩 달리기 시작했다.
매일 밥을 먹고 매일 청소를 하고 매일 배설을 하는 것처럼 의지를 가지고 매일 달리는 것이 망가져 가는 신체를 조금이라도 붙잡아 둘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달리면서, 또 달리는 것에 대해서 글을 쓴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며 알게 된 건 의지가 강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에 다가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 의지 이외의 것도 필요하지만 오히려 의지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 의지와 같은 것이 매일 달리는 것을 하면서 상관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더 알게 되었다.
매일 달리는 일이 꼭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달리는 것이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것일 테니. 회사처럼 상사와 할당량이 있어서 그것을 채워야 하는 일이 아닌 것에서 벗어나서 나의 의지로, 수많은 이유를 물리치고
최소한 이유를 가지고 나의 의지를 움직이게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매일 조금씩 할 수 있다면 덜불행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열심히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