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태풍이 몰아쳐 초토화가 되었다. 엄청난 바람과 폭우에 문명이
속수무책으로 망가지고 부서지고 날아가고 사람들의 목숨이 끊어지거나 생사를 알 길이 없어졌다. 재난 앞에서 인간은 하찮은 먼지 같은 존재 밖에 안
된다
이 영화는 허리케인이 몰아쳐 재난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등장인물에게
잔인하게 군다. 인간이 지구에서 겪을 수 있는 극한의 재난 상황을 주인공 앞에 동시에 떨어트려 놓았다. 우주에서의 속수무책의 재난이었던 영화가
그래비티라면 지구에서의 재난에 재난의 재난으로 마지막 구석까지 몰리는 상황이 이 영화가 아닌가 싶다
허리케인이 북상하여 지상의 것들은 모두 날려버리고 지상 밑에서 부터는 점점
물이 차오른다. 제목인 ‘크롤’은 수영할 때 얼굴이 반은 물 밖, 반은 물 안으로 들어가 있는, 숨을 쉬는 상태를 말하는데 대형 태풍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들을 크롤 상태로 만든다. 정보 없이 본다면 많은 태풍 재난의 영화 중에 하나의 영화라고 생각하겠지만 영화는 이 속에 또
다른 재난, 또 다른 주인공인 악어를 풀어놨다
주인공에게 어드벤티지를 준다면 수영선수라는 점. 수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감과 용기 같은 것을 숨을 쉬며 흡수할 수 있다는 점 정도가 된다. 주인공 헤일리는 사이가 좋지 않은 아빠가 태풍이 북상 중인데도 집 안에서
나오지 않아 경찰의 만류를 뚫고 아빠를 찾아 집으로 가게 되고 지하실에 쓰러져 있는 아빠를 발견한다
집은 아빠인 데이브가 팔려고 했다가 추억이 많아서 그대로 두었고 헤일리는
수영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좌절해 버린 자괴감이 자신을 괴롭힌다. 자신 때문에 아빠가 이혼을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온 헤일리는 아빠를 구해
주면서 용기를 낸다
정신을 잃은 아빠를 끌고 지하에서 올라오려는데 난데없이 악어가 아가리를
벌리고 다가온다. 출구를 가로막고 있는 대형 악어를 피해 다른 길로 가려는 헤일리 앞에 또 다른 악어가 등장하면서 악어가 한 마리가 아님을 알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 헤일리와 데이브를 아주 혹독하고 혹독하게 구석 끝으로 내
몬다. 인간은 사실 절망 앞에 쉽게 무너질 것 같지만 절망과 일 대 일로 마주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하나의 절망이 아니라
여러 개의 절망이 한꺼번에 닥치면 강인한 인간이라도 무릎을 꿇고 주저앉게 된다
허리케인 때문에 지하는 점점 물이 차오르고 집 밖에는 폭우와 거센 바람이
눈앞을 못 보게 만들고 물이 차오를수록 악어들은 유유히 인간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다가온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 악어가 사냥을 할때
머리를 물고 물 안으로 끌고가 빙빙 돌린다는데 그런 악어의 습성을 잘 표현했다
마지막에 캡처한 저 장면에서는 어어!! 하는 소리가 나올법하다. 저 장면에
긴장이 된다. 이 영화가 3시간 가까운 ‘그것 2’보다는 훨씬 심장이 오그라든다. 그것 2가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와 초현실적 공포라면 이
영화는 온통 긴장, 그것이다. 재난에서 빠져나가야 하는 헤일리와 데이브를 그리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 헤일리는 미국 재난 영화의 다른 주인공처럼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엑시트’처럼 재난에서 생존을 위해 빠져나가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집 안 지하에는 악어 두세 마리가, 집 밖에는 악어떼가
우글거린다. 어떤 이들이 슈퍼를 털다가 악어에게 무참히 물어 뜯기는 장면은 잘 만들었다고 본다
하지만 영화는 구멍이 많다. 아빠의 팔도 단번에 물어뜯어 버리고, 경찰의
몸은 능지처참 해버리는 악어가 헤일리의 팔과 다리와 몸통을 물었지만 앙 다물었다가 다시 뱉어내는, 악어들 세계에서는 해서는 안 될 대참사를
일으키고 만다. 그래서 헤일리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수영선수답게 헤엄을 치고 아빠를 구하고 마지막에 조명탄을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