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의 코미디는 사람을 잡아 끄는 매력을 잔뜩 가지고 있었다. 길쭉길쭉한 피지컬에서 뿜어 나오는 시원시원함의 사나이가 내뱉는 걸쭉한 사투리와 주위 배역들과 어우러지는 차승원식 코미디는 꼭 몸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배우 중 최고였다. 확실하게 임창정의 코미디와는 달랐다. 그리하여 신라의 달밤은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지금 봐도 또 볼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 이후로 김봉두와 라이터를 켜라 등 차승원식 코미디를 죽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차승원은 코미디를 버렸다

 

차승원의 코미디가 돌아왔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필두로 문을 연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코미디로 범벅인 영화는 아니었다. 제목만 보면 도대체 무슨 영화지? 하게 된다. 이 영화는 과거를 잊고 싶어 하는, 과거를 잊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영화라 생각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기저에 깔린 건 대구지하철 참사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엉망진창인 사건이었다. 참사가 일어나고 일 년 뒤 현종문 감독은 다큐멘터리 ‘메모리즈’를 만들었다. 후에 메모리즈 2편도 나왔다. 그때 그 다큐를 구하기 위해 방송국에 전화를 하고 필름을 받아서 볼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녔던 기억이 있다

 

현종문 감독은 당시 중앙대 연출부인지, 재학생으로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다큐를 촬영하기 시작했는데 촬영하면서 점점 분노와 억울함이 올라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쉽게 불에 타버리는 재질로 지하철 소파를 허가해준 KS 공인허가서, 방화문은 불이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내려와 버려서 사람들이 탈출하지 못해 방화문을 긁어대느라 손톱이 다 빠져나가면서 질식해서 죽었다. 대구시는 참사를 지워버리기 위해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집중을 하느라 심지어 현장 보존이라는 법칙을 모두 무시하고 새벽에 용역 업체를 이용해 깨끗하게 치워버기도 했다

 

최초 범인이 자신의 몸에 불이 붙고 바닥에 휘발유를 뿌렸을 때 불이 삽시간에 쉽게 번졌다. 그때 제대로 된 공인 마크로 납품이 된 제품으로 소파를 만들고 내장재를 만들었다면, 그랬다면 사망자만 193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참사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일 년간 촬영한 다큐는 국가가 공인한 곳이나 검찰이나 경찰이 전부 부패했고 대구시는 사건을 덮기에 급급하기만 했다. 그곳에서 소방관만이 당시에 죽음을 불사하고 시커먼 연기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당시 동성로의 큰 빌딩들은 사건을 알리려고 검은 천을 대형 빌딩에 덮어 씌우고 뉴스에 나오기를 바랐다. 요즘 같았으면 sns를 타고 급속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졌겠지만 대구시는 철저하게 사건을 막았고 전국의 사람들은 빌딩에 검은 천을 씌우고 참사의 진실을 알리려 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때 6명을 모아 놓고 다큐를 틀어줬던 기억이 있다

 

영화는 그 참사를 관통하고 있다. 철수는 죽음을 감수하고 검은 연기 속으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나온 후 바보가 되었다. 정신이 없는 아내를 들춰 업고 굳게 내려온 방화벽을 두드리는 장면은 방화벽에 손톱이 빠져가면서 질식해서 죽은 당시의 처참을 잘 나타내주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참사 현장에서 자욱한 연기 속에서 타들어간 불꽃이 떨어지는 장면도 소파의 나일론 같은 것들이 불에 붙어서 녹아내리는 모습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극 중의 철수처럼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실제로 대체로 살이 많이 쪘다. 당분의 유혹을 떨쳐버리는 의지가 없다. 하지만 극 중의 철수는 밀가루는 몸에 좋지 않다는 생각이 각인되어 있어서 그런 피지컬을 유지하고 있는 건 괜찮은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참사 속에서 살아난 사람은 철수뿐만이 아니라 백혈병을 앓고 있는 샛별이도 있다

 

샛별이는 이 하루를 어떻든 버티는 것이다. 버텨야 한다. 어떻게든 버티면 내년에도 생일을 맞이할 수 있다. 샛별과 환우들은 언제 죽을지 몰라서 매일매일 버티는 것, 버티면 개 맛있는 것을 먹고, 돌아오는 생일에 개 좋은 선물을 친구들에게 받을 수 있다. 영화는 온통 신파지만 철수와 샛별이 때문에 눈물이 흐를 것이다

 

밤길에 술 취한 아저씨가 튀어나와 놀라게 되면 그 트라우마 때문에 그 골목으로 가지 못하고 빙 둘러 가게 된다. 참사를 당한 사람들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들은 이제 그만 잊으라 하지만 그건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철수와 샛별은 우리 모두의 과거이고 우리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이다

 

아빠만 있으면 그저 좋은 샛별이. 바보 같은 아빠 없이 이제 살아 갈 수 없는 샛별이. 골수를 이식받지 못하면 다음 생일을 맞이할 수 없는 샛별은 철수의 골수도 맞지 않아 이식받을 수 없고,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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