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앉아서 책을 좀
읽다보니 축축하고 뿌연 게, 고개를 들어보니 해무가 인간이 있는 곳까지 쑥 들어와 있었다. 숨을 쉬면 습 한 기운이 느껴지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해무가 가득했다. 아, 몇 해 전 해무가 가득 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땐 그 사람이 살아있었다. 늘 비슷하고 평화롭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해무가 들어차 앞이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은 확 맑았다가 어느새 비가 내려 바다를 적시려고 한다. 하루는 긴데 한 달은 참 짧고 일 년은 더
짧다. 삶이 영화 일일시호일과 닮았다.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가장 무서운 건 적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했는데 일일시호일을 보면 그 무서운 시간을
천천히 빗질을 한다. 짧게 만 느껴지는 10년이, 길고 천천히 빗어준 한올한올의 소중한 추억으로 모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무가 들어찬
바다를 조용필의 노래처럼 걸어보자.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는다. 너와 걷고 싶다고 소리 내 부르면 봄이 되어 달려오는 너의 보드라운
손을 품에 넣고서 시간을 들여 걸어보자. 이렇게 시간을 빗질하는 것이다, 천천히, 길게. 인생이란 일일시호일의 차에서 나는 향처럼 깊고 은은하게
퍼지는 여운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진다